10월 8일 중국 취저우에서 열린 제3회 란커배 세계바둑오픈 16강전에서 신진서는 중국의 랴오위안허 9단을 272수 끝에 백 불계승으로 제압했습니다. 이로써 그는 대회 2연패를 향한 순항을 이어갔습니다. 같은 날 원성진 9단도 출전했지만, 중국의 왕스이 8단에게 275수 만에 아쉽게 반집패하며 탈락했습니다. 결과적으로 8강 진출자는 신진서 한 명뿐이었고, 나머지 일곱 자리는 모두 중국 기사들이 차지했습니다. 이번 대회 8강은 ‘신진서 대 중국 7명’의 구도입니다.

신진서의 16강 경기는 그야말로 교과서 같은 운영이었습니다. 초반부터 균형 잡힌 포석으로 주도권을 잡았고, 중반에 잠시 형세가 엇비슷해졌지만 실수를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좌상귀에서 벌어진 패싸움이 승부의 갈림길이었습니다. 상대가 중앙에서 실착을 범하자 신진서는 이를 놓치지 않고 곧바로 흐름을 바꿨습니다. 이후 그는 중앙을 장악하며 끝까지 흔들리지 않았고, 272수 만에 깔끔하게 백 불계승을 확정했습니다. 그가 보여준 수읽기와 집중력은 세계 최정상 기사다운 모습이었습니다.
이번 대회는 중국 바둑 규정으로 진행됩니다. 덤은 7집 반, 제한시간은 각자 2시간에 초읽기 1분 5회입니다. 신진서는 이런 조건에서도 강합니다. 시간 관리가 뛰어나고, 초읽기에서도 수읽기의 깊이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큰 대회마다 긴 대국이 이어지지만, 신진서는 체력과 집중력 모두 흔들림이 없습니다.

다른 한편, 원성진 9단은 중국의 왕스이 8단과 팽팽한 접전을 펼쳤습니다. 경기 막판까지 추격했지만 결국 반집 차이로 패하며 8강 진출이 좌절됐습니다. 반집패는 바둑에서 가장 아쉬운 패배입니다. 한 수의 순서, 끝내기 한 번의 선택 차이로 결과가 갈리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원성진의 대국도 치열했습니다. 그러나 이 패배로 이번 대회 8강에는 한국 선수는 신진서 한 명만 남게 됐습니다. 이 한 자리의 책임과 기대가 모두 신진서에게 쏠렸습니다.
8강전에서 신진서는 중국의 퉈자시 9단과 맞붙습니다. 두 사람은 지금까지 다섯 번 만나 신진서가 전승을 거뒀습니다. 퉈자시는 안정적이고 탄탄한 스타일이지만, 신진서는 이런 유형의 기사에게 강합니다. 상대가 두텁게 눌러오면 타개를 통해 국면을 바꾸고, 조용히 집을 쌓으면 전투로 끌어올립니다. 즉, 어떤 스타일로 가도 대응할 수 있는 ‘풀 세트형’ 기사라는 점이 강점입니다. 이번 대국에서도 중반 첫 교환이 승부의 핵심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세력을 유지하며 상대의 약점을 정확히 찌르는 신진서의 장기가 빛날 순간입니다.

이번 8강은 신진서 한 명을 제외하면 모두 중국 기사입니다. 표면적으로는 불리한 구도지만, 신진서에게는 익숙한 상황입니다. 그는 그동안 대부분의 세계대회에서 중국 기사들과 맞붙어왔고, 그런 환경에서 더 강했습니다. 무엇보다 그는 외부 분위기에 휘둘리지 않습니다. 승부가 복잡해질수록 오히려 집중력을 높이고, 감정에 흔들리지 않는 것이 그의 가장 큰 무기입니다.
이런 점에서 이번 8강은 단순한 경기 이상의 의미를 갖습니다. 한국 바둑이 중국의 강세 속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고 있다는 상징이기 때문입니다. 신진서 한 명이지만, 그 존재가 한국 바둑 전체의 무게를 지탱하고 있습니다.

신진서는 이 대회의 디펜딩 챔피언입니다. 1회 대회에서는 준우승, 2회 대회에서는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이번이 세 번째 출전이며, 3년 연속 8강 진출이라는 기록도 세웠습니다. “2연패 도전”이라는 말은 단순한 목표가 아닙니다. 이는 세계 바둑의 중심 무대에서 한국 바둑의 자존심을 지키는 싸움이기도 합니다. 그는 7월 32강에서 중국 천하오 6단을 꺾으며 대회 초반부터 안정적인 흐름을 이어왔고, 이번 16강 승리로 다시 우승을 향한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이번 대회의 상금은 우승 180만 위안(약 3억 4천만 원), 준우승 60만 위안(약 1억 1천만 원)입니다. 금액보다 더 중요한 것은 명예입니다. 중국의 홈 대회에서 한국 기사가 우승한다는 것은 단순히 개인의 성과를 넘어 국가 바둑의 자존심을 세우는 일입니다. 신진서는 그 상징적인 위치에 서 있습니다.
이번 대회 일정은 8강, 하루 휴식, 그리고 4강과 결승 3번기로 이어집니다. 체력과 집중력이 모두 필요한 구조입니다. 중국 기사들은 홈 환경의 이점을 가지고 있지만, 신진서는 국제 대회 경험이 많고 장거리 대국에도 강합니다. 특히 그는 초읽기 상황에서도 수읽기의 정확도를 유지하기 때문에, 장기전일수록 유리하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관전 포인트는 세 가지입니다.
첫째, 초반 포석 싸움에서 얼마나 주도권을 잡느냐입니다. 신진서는 포석 단계에서 변화를 두지 않고 안정된 형태를 선호하지만, 필요할 때는 과감하게 중앙 싸움을 엽니다.
둘째, 중반 패싸움과 타개 능력입니다. 이번 16강에서도 좌상귀 패싸움이 승부를 갈랐듯이, 8강에서도 패의 처리와 중앙 전환이 핵심입니다.
셋째, 종반 끝내기의 정밀함입니다. 중국 룰의 덤 7집 반에서는 끝내기 한 수의 가치가 크기 때문에, 이 부분이 마지막 승부를 결정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지금 신진서는 한국 바둑의 ‘마지막 한 자리’지만, 동시에 세계 바둑의 중심에 서 있는 기사입니다. 그는 단순히 잘 두는 기사로 그치지 않습니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도 늘 겸손한 태도를 보이며, “한 판 한 판 최선을 다하겠다”라는 말로 모든 걸 정리합니다. 하지만 그의 바둑은 냉정하고 계산적이며, 동시에 예술적입니다. 한 수 한 수가 계획 속에서 나옵니다. 그가 두는 바둑은 이미 한 개인의 승부를 넘어 한국 바둑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8강에 남은 한국 기사는 단 한 명, 신진서입니다. 겉보기에는 외롭지만, 그 한 자리에는 지금 한국 바둑의 모든 기대와 응원이 담겨 있습니다. 중국 기사 7명 사이에서 홀로 싸우는 그의 모습은, 마치 다수 속의 고요함 같습니다. 하지만 신진서에게 ‘외로움’은 약점이 아니라 집중의 도구입니다. 그는 이미 수많은 세계대회에서 혼자 남은 적이 있었고, 그럴 때마다 더 강했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숫자가 아니라 한 수입니다. 272수 끝의 백 불계승처럼, 바둑은 언제나 한 수의 차이로 세상이 바뀝니다. 신진서가 다시 한 번 그 한 수를 찾아낼 수 있다면, 우리는 또 하나의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문장을 보게 될 것입니다.
“디펜딩 챔피언 신진서, 란커배 2연패 성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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