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천’과 ‘하와이’의 앞글자를 따서 지은 대학교가 있습니다. 바로 인하대학교 인데요. 갑자기 웬 하와이?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는데, 인하대학교는 1952년 하와이 교포 이주 50주년 기념사업으로 출범하게 된 학교입니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운영했던 한인 기독학원 처분대금과 하와이 이민자들의 모금 등으로 1954년 '재단법인 인하학원’이 설립되어 인하공과대학으로 개교한 것이 지금의 인하대학교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인하’라는 이름은 하와이 이민자들이 보낸 성금을 기념하는 의미로 지어진 것이며, 미국의 MIT와 같은 세계 최고 수준의 공과대학을 목표로 했습니다.
하와이 이민자들과 인하대학교

우리나라 최초의 하와이 이민자는 1902년 12월 22일 인천 제물포항에서 출발한 갤릭호에 탑승한 121명의 한인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당시 국내에서 사회 혼란과 흉년으로 인해 고통받던 농민과 노동자, 독립운동가, 학생, 불참 등 다양한 계층과 배경을 가진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이들은 하와이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위해 떠났지만, 기대와는 달리 매우 힘든 노동과 차별을 겪게 됩니다. 사탕수수 농장에서 하루 10시간 이상의 중노동을 해야 했고, 선임과 지참금으로 받은 150달러의 전대금을 갚기 위해 최소 2년간은 농장을 떠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한인들은 고된 삶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들의 문화와 정체성을 유지하며 하와이에서 한인 사회를 형성했습니다. 이들은 자유를 갈망하여 하와이에 온 사람들인 만큼 조국의 독립과 민주주의에도 관심이 많았습니다.

사탕수수 농장에서 굉장히 힘들게 일하고 돈도 적게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돈을 아껴서 독립자금을 만들어 조국으로 보내기도 했습니다. 한국어 학교와 교회, 신문사 등을 설립하고, 독립운동과 민족운동에도 참여했습니다.
그리고 그 돈이 모여서 인천 하와이 대학교, 즉 인하대학교의 기반이 되었습니다. 1952년 한국의 공업 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해 대학 설립을 제안하였고 인하대학교의 탄생에 큰 역할을 했습니다.

이민자들의 후손들은 하와이에 그대로 남거나 미국 본토로 건너가면서 현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습니다. 현재 하와이에는 약 20만명의 한인계 주민이 살고 있으며, 한국과 하와이의 우호적인 관계에도 기여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하와이 이민자들은 우리 역사의 중요한 일부분이라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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