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입 의존에서 기술 독립으로
197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은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자원 빈국으로 분류됐다. 산업화로 에너지 수요는 폭증했지만 탐사와 시추 역량이 전무해 모든 원유와 가스를 수입에 의존했다. 오일쇼크가 외환과 물가를 동시에 흔들던 그 시기, 에너지 확보는 단순 조달 이슈가 아니라 국가 생존의 문제였다. 문제의 핵심은 “자체 기술”의 부재였다. 광구를 찾아도 타국 장비와 선박 없이는 바다 밑에 있는 자원을 꺼낼 방법이 없었다.

국산 해저 탐사선의 출현
전환점은 1996년 독자 기술로 건조한 해저 탐사선 ‘타메이오’였다. 이 선박은 해저 지층을 정밀 탐사해 유망 구조를 식별할 수 있게 하며, 한국이 첫 단추부터 스스로 꿰기 시작했다는 상징이었다. 이어 반잠수식 시추선 운영으로 파도가 높고 기상 변동이 큰 해역에서도 작업 안정성을 확보했다. 시추 심도는 해저 7,500m급으로 확장되어 대륙붕 깊은 곳의 자원까지 겨냥할 수 있게 됐다. “찾고, 뚫고, 평가하는” 탐사·시추의 삼박자가 비로소 자립 궤도에 올랐다.

동해 1가스전으로 증명한 생산력
기술은 생산으로 증명된다. 동해 1가스전은 하루 1,100톤 이상을 퍼 올릴 수 있는 역량으로 울산·경남 약 34만 가구의 전기·난방에 해당하는 에너지 수요를 뒷받침했다. 이는 국제 가격 변동과 운송 리스크에 흔들리지 않는 “국내산 가스”의 전략적 가치를 일상 속에 체감하게 만든 사건이었다. 공급원 다변화는 에너지 안보의 핵심인데, 동해 1가스전은 한국형 모델의 실물 증거가 됐다.

바다 위 200m 생산기지의 경제효과
동해 1 플랫폼은 약 200m 높이의 해상 구조물로, 바다 위에 세운 공장이라 불린다. 이 플랫폼은 연간 약 40만 톤 규모의 가스를 생산하며 수입 대체 효과만 연간 약 12억 달러에 달한다. 단순 환율 절감이 아니라 연료 조달의 예측 가능성을 높여 전력 시장과 산업 원가 안정에 기여했다. 더 나아가 고부가 해양엔지니어링, 해상 운영·정비, 안전·환경 관리 등 연관 산업 생태계를 키워 ‘기술이 돈이 되는’ 선순환을 만들었다.

심해로 확장되는 한국형 해양에너지
탐사·시추·생산이 한데 묶인 경험은 심해로의 확장성을 담보한다. 해상 기상·파랑·해류의 복합 조건을 감내하는 구조 설계, 장주기 운영의 무고장·무사고 운전, 원격·실시간 데이터 기반 유지보수는 심해 개발의 필수 역량이다. 한국은 이 전주기를 직접 운영하며 공학 데이터와 운영 노하우를 축적해 왔다. 이는 해외 광구 프로젝트 참여, 합작 개발, 공정·장비 수출 같은 다양한 사업 모델로 전개될 수 있는 ‘기술 자본’이다.

안전과 효율을 높이며 더 멀리 나가자
앞으로는 더 깊고 더 까다로운 환경이 무대가 된다. 탄탄한 탐사 해석과 친환경 시추, 메탄 누출 최소화, 전동화·디지털 트윈을 결합한 스마트 플랫폼으로 안전과 효율을 동시에 키우자. 동해에서 검증한 한국형 기술로 심해 프로젝트와 CCS(이산화탄소 포집·저장), 해상 풍력 전력·수소 연계까지 확장하면 에너지 안보와 산업 경쟁력을 함께 높일 수 있다. 준비된 기술은 위기의 파도를 기회의 탄력으로 바꾼다. 이번 겨울 바다에서도, 한국은 더 안전하게, 더 멀리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