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투수 요건은 참 비합리적이다...류현진의 경우

사진 제공 = OSEN

113kg 거구의 전력질주

겨우 두 번째 투구다. 1루로 땅볼이 구른다. 이때부터다. 맹렬한 달리기가 시작된다. 텅 빈 베이스를 향한 경쟁이다. 투수와 타자(박성한)가 전력질주한다.

간발의 차이다. 수비 쪽이 이겼다. 1회 말 첫 아웃이 만들어진다. (28일 인천 랜더스 필드, SSG 랜더스 – 한화 이글스)

잠시 경기가 멈춘다. 투수는 숨을 헐떡인다. ‘아이고 힘들다.’ 그런 표정이다. 멋쩍은 웃음도 살짝 흘린다.

그럴 법하다. 나이가 서른아홉이다. 예전 같으면 40대로 쳐준다.

몸이나 작은가. 프로필 기준으로 190cm, 113kg이다. MLB에서도 꿀릴 게 없던 체구다.

이럴 때 도움이 필요하다. 보통은 고참 내야수가 마운드로 간다. 숨 돌릴 틈을 주기 위해서다.

하지만 요즘은 어렵다. 피치 클락이 엄격한 탓이다. 하지만 이날은 구심(박근영)이 친절을 베푼다. “괜찮냐”라고 묻는다. 덕분에 잠깐의 여유를 얻는다.

아무튼.

그는 최고로 꼽힌다. 이유는 많다. 그중 하나가 필딩(fielding) 덕분이다. 투구 이후의 수비 능력 말이다.

6회에도 반짝인다. 1사 1, 3루의 위기였다. 타석에는 5번 고명준이다. 초구를 건드렸다. 빗맞은 땅볼이 데굴데굴 구른다.

그 틈에 3루 주자가 득점을 노린다. 기예르모 에레디아의 과감한 대시다.

그러나 이것도 막힌다. 투수의 홈 배송이 두 걸음은 빨랐다. ‘꼼짝 마. 어딜 감히.’ 결정적 아웃이 만들어진다.

쉬운 장면이 결코 아니다. 까다로운 타구다. 던지는 자세도 불안정하다. 그런데도 완벽한 스트라이크 존으로 통과한다. 포수 가슴 높이에 깔끔하게 안겨준다.

본래 투구와 송구는 분명히 구별된다. 타자에게는 잘 던져도, 자기 팀 수비수에게는 엉망인 투수들이 많다.

그러나 그는 아니다. 둘 다 완벽하다. 타고 난 정확성, 안정성을 지녔다. 공인된 월드 클래스다.

사진 제공 = OSEN

다승 단독 1위 기회였는데

압도적인 초반이다. 3회까지 출루가 봉쇄된다. 4타자 연속 삼진을 잡아내기도 한다.

4회에만 잠시 코너에 몰렸다. 1, 2루에서 적시타(김재환) 하나가 유일한 흠이다. 이어진 위기를 연속 삼진으로 벗어났다.

일단 6이닝을 책임졌다. 1실점의 호투다. 안타를 6개 맞았지만, 공짜(사사구)는 없었다. 대신 탈삼진 7개를 추가했다. 통산 2500K에 1개만 남겨뒀다.

팀도 웃었다. 6-3 승리로 랜더스전 스윕에 성공했다. 최근 상대 전적 6연승이다. 3연전 두 차례를 싹쓸이했다는 의미다. 지난 시즌 막판의 ‘빚’은 어느 정도 갚은 셈이다.

다만 개인 기록의 아쉬움은 남는다. 정작 자신의 승리는 챙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3-1로 앞선 상태에서 내려갔다. 그런데 불펜이 동점(8회)을 허용했다.

아니라면 9승째다. 다승 단독 선두로 올라갈 숫자다.

감독도 마음이 쓰인다. 승리 후 이런 소감이다.

“경기 후반에 동점이 되면 분위기가 가라앉기 마련인데, 선수들이 끝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고 최선을 다해줬다. 특히 (9회 2사 후) 3점 홈런으로 팀에 승리를 안겨준 (요나단) 페라자를 칭찬하고 싶다.”

아울러 안타까움도 밝힌다.

“고비가 몇 차례 있었지만, 좋은 수비가 나오면서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무엇보다 선발 투수 류현진이 좋은 피칭을 해줬는데, 승리를 가지가지 못해 아쉽다.” (김경문, 경기 후 인터뷰)

사진 제공 = OSEN

야구규칙 9.17

8승까지는 순항했다. 그런데 6월 17일 이후 제자리걸음이다.

3번의 등판이 모두 괜찮았다. 고르게 6회까지 책임진다. 자책점도 낮다. 1점, 2점, 1점으로 퀄리티 스타트를 기록했다. 평균자책점(ERA)을 따져도 2.00 정도다.

하지만 기록은 모두 ‘승패 없음(No Decision)’이다. 타선이 터지지 않았다. 혹은 불펜이 승리를 날렸다.

이 대목에 그런 생각이 든다. 어제(28일) 같은 게임 말이다. ‘승리투수 기록이 과연 합리적인가.’ 하는 반론이다.

상식적으로 봐도 뻔하다. 가장 큰 기여는 선발 투수가 했다. 그런데 동점이 됐다는 이유로, 자격이 사라진다. 그리고 3-3을 허용한 중간 투수(이상규)에게 승리가 돌아간다.

‘어쩔 수 없잖아. 규정이 그런 데 뭐….’ 아무리 그래도 수긍은 어렵다. 납득되지도 않는다.

기록이라는 게 그렇다. 무조건 숫자에 의지하는 것도 아니다. 인간의 판단이 개입될 때도 있다.

구원 투수의 경우다. 이럴 때는 기록원에게 재량이 부여된다. 무조건 역전된 시점을 따지는 게 아니다. 가장 효과적인 투구를 찾기도 한다. (KBO 야구규칙 9.17)

물론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미국, 일본도 다 마찬가지다. 특히나 그에게는 더 그렇다. 소년가장시절부터다. 너무나 익숙한 패턴이다.

게다가 바뀔 일도 없다. 야구는 기록의 스포츠다. 누적과 축적이 생명이다. 그걸 부정하고, 외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냥 그렇다는 말이다. 안타깝고, 안쓰럽다. 아쉽고, 섭섭하다. 오죽하면…. 그런 마음의 표현이다.

사진 제공 = OSEN

WBC 후유증도 아랑곳없이

몇 년 전이다. 그가 누군가를 언급한 적이 있다. ‘구로다 히로키’라는 이름이다.

열악한 시민 구단(지금은 아니지만) 출신이다. NPB 히로시마 카프의 에이스였다. 미국으로 진출했고, 다저스와 양키스에서 활약했다.

그러다가 돌연 귀국한다. MLB 제시액을 모두 뿌리친다. 그리고는 겨우 1/4 정도의 연봉에 복귀했다. “아직 힘이 남아 있을 때, 카프를 위해서 던지겠다”는 것이 이유였다.

99번도 비슷한 말을 했다. 아직 토론토 주민일 때다. 이런 말을 했다. “그냥 나이 먹어서가 아니다. 아직 경쟁력 있을 때 돌아가겠다. 그래서 마지막은 이글스를 위해서 마운드에 서겠다.”

그리고 그 약속을 지키고 있다.

올해가 3년 째다. 어느 시즌보다 반짝인다. 도대체 믿을 수 없을 정도다.

남들은 벌써 은퇴할 나이다. 39세 생일도 지났다. 그럼에도 오히려, 점점 더 좋아진다.

8승 2패(공동 1위), ERA 2.67(3위), 87.2이닝(5위)…. 팀 내는 물론이다. 리그 전체를 따져도 단연 톱클래스다. 그야말로 MVP 페이스다.

로테이션을 거르는 법도 없다. 5~7일을 꼬박꼬박 지켜준다. 심지어 지난주에는 두 번이다. 화요일, 일요일을 모두 등판했다. 6이닝을 너끈히 채운다.

3월부터 따져보자. WBC도 흔쾌히 참가했다. 투수 조장까지 맡았다. 부담스러운 경기도 마다하지 않았다.

후유증? 젊은 선수들도 힘에 부친다. 며칠씩 앓는 소리도 한다. 하지만 그는 결코 내색하지 않는다. 묵묵히 팀에서의 일을 한다.

사진 제공 = OSEN

구로다를 능가하는 모범 사례(?)

구로다의 컴백은 유명하다. 가장 모범적인 사례로도 꼽힌다. 돌아와서 리그 우승까지 시켰다는 사실 덕분이다.

하지만 그가 뛴 것은 2년(40~41세) 뿐이다. 엄밀하게 에이스 역할도 아니었다. 3~4선발 정도의 활약이다(11승 8패, 10승 8패).

후에 밝힌 은퇴 이유도 그렇다.

“한 번 (선발) 등판하려면, 1~2시간은 마사지를 받아야 한다. 매번 그러는 게 너무 힘들었다. (자신의 로테이션을 지켜줘야 하는) 팀에게도 큰 부담을 지운다는 느낌이었다.”

그에 비하면 99번은 다르다. 그야말로 팀을 이끌고 있다. 명실상부한 1선발 역할은 물론이다. 선수단 전체의 구심점이다. 후배 병원 예약까지 알선해 줄 정도다.

이글스의 4~5월은 악재가 연달았다. 그걸 어렵사리 버텨냈다. 5할 승률을 회복했다. 그리고 중위권 경쟁력을 유지한다.

그 원동력은 하나다. 39세의 에이스가 지켜준다. 그가 차지하는 지분이 결정적이다.

사진 제공 = OS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