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도 눈치 봐야 하나?…숨어서 채상병 참배한 동기들[이정주의 질문하는 기자]
■ 진행 : 이정주 기자
질문하는 기자 CBS 이정주입니다. 오늘은 국군의 날 특집으로 준비했습니다. 1년 전 경북 예천군 내성천에서 실종자 수색 도중 순직했던 채상병도 오늘 국군의 날에 원래 함께 했어야 될 주인공 중에 한 명이죠. 9월 26일은, 채상병이 살아있었다면 해병 1292기 동기들과 함께 전역을 하는 날이었습니다. 포항에서 단체 교육을 받고 1000명 정도 해병들이 26일 전역을 했습니다.
채상병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활동 중인 해병대 예비역 연대가 당일 오전 9시부터 포항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추모 행사를 준비했습니다. 오전 9시 30분 정도에 전역식을 하고 나오는 채상병의 동기들 함께 익명의 편지 쓰기 그리고 추모 행사를 함께 진행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오후에는 채상병이 잠들어 있는 대전 현충원으로 가서 참배 행사를 했습니다. 제가 당일 서울에서 새벽 5시에 기차를 타고 포항으로 내려가 밤 11시까지 함께 했는데요. 그날 현장을 전해드리겠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정말 슬퍼하기도 힘들다' '추모조차 눈치를 보며 해야 하는 엄혹한 시대를 살고 있다' 이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채상병 동기들이 '애도하고 공감하고 추모하는 것조차 숨어서 해야 하는가' 이런 의문이 들었습니다. 전역식이 있던 당일 포항시외버스터미널 현장에서 여러 채상병 동기 해병대원들을 만나서 인터뷰를 해봤거든요. 실명 인터뷰는 하지도 못했고 익명으로도 대원들이 자리를 많이 피했습니다.
왜냐? 누군가가 자신들을 지켜보고 있으니까요. 해병대 쪽에서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는데 해병대 예비역 연대가 추모 행사를 한다는 소식을 사전에 접하고 시외버스터미널에 해병대 주임원사 등 관계자들 그리고 정보 경찰로 보이는 사람들, 이름 모를 군사경찰로 보이는 사람들이 다수 있었어요. 해병대 측은 당연히 전역식날 터미널까지 안전 관리 차원에서 하는 관례라고 말했지만, 기자의 눈으로 보면 다 보이죠. 해병대 원사들과 정보 경찰로 보이는 사람들이 처음에는 떨어져 있다가 나중엔 삼삼오오 모여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장면을 봤습니다. 추모 행사를 감시해서 결국 채상병 동기들이 익명의 추모 편지 행사에 참여하지 못하자, 임무를 완수했다는 뭐 그런 이야기를 나눈 듯한 분위기였어요.
권력의 감시로 인해 추모할 자유조차 잃어버린 채상병의 동기들. 안타깝습니다. 전역한 해병들도 소시민입니다. 정말 안타깝습니다. 우리가 억지로 그들에게 추모 편지를 쓰라고 강요할 수 없어요. 하지만 '억울하게 숨진 동기 채상병에 대한 애도조차도 숨어서 해야 되는가' 정말 개탄스러운 현실을 제가 보고 왔고요. 아무튼 익명으로라도 인터뷰에 응해 주신 1292기 전역 해병 여러분 너무 감사드립니다. 언젠가 시간이 되면 또 공개 석상에서 함께 하길 기대하겠습니다.(중략)
결론적으로 말하면 채상병 동기들은 전역날 당일까진 현역 신분이에요. 오전 9시에 전역식을 하고 군복을 입고 바깥으로 나오지만 이날 자정이죠. 그러니까 26일 23시 59분까지는 현역 신분입니다. 이걸 굳이 해병대 내 관계자가 전역하기 직전에 장병들에게 '너네는 제대하는 날 오늘까지는 현역이다'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딱 이렇게만 던져도 '돌발 행동하지 마라' 이 소리로 들리죠. 한 마디로 '사고 치지 마라' 이 소리인데, 원래는 '그날 술 마시고 어디 가서 사고치지 마라' 이런 거죠.
그렇다면 전역하는 날 음주로 사고 치는 등 불법행위로 군사 재판은 가면 안되고, 민간인 신분에서 경찰서는 가도 됩니까? 어차피 돌발 행동이나 불법 행위는 언제 어느 곳에 있어도 하면 안 되는 거예요. 제가 서너 명 정도를 익명 인터뷰했는데, 전말이 이랬습니다. 제가 채상병 동기들에게 '해병대 예비역 연대가 행사를 준비했다. 당연히 추모 편지를 쓸 수도 있고, 안 쓸 수도 있는 자유가 있다. 그러나 지금은 아무도 안 쓰는 것 같다. 익명 편지를 안 쓰는 다른 이유가 있냐'라고 물었어요.
그랬더니 저한테 딱 한 마디만 하더라구요. '제가 지금 현역 신분이다. 오늘 아침에 그 현역 신분이라고 강조하는 말을 부대 내에서 듣고 나왔다' 이렇게 하면서 저한테 '죄송합니다' 이러더라고요. 근데 이상하죠. 현역 신분이라는 사실은 그냥 사실인데, 왜 저한테 죄송한가요? 그날까지 법적으로 현역인 건 그냥 사실이잖아요. 죄송할 일이 아니에요. 그런데 저한테 왜 죄송했을까요? 그러니까 양심이 있는 그래도 그나마 눈치는 보면서도 양심이 있는 청년이죠.
이 해병대원은 저한테 행간 의미로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어요. '정말 채상병에 대해 추모 편지를 쓰고 싶은데 여기 지금 해병대 관계자들 등등 다 나와서 지켜보고 있고 정보경찰 같은 사람들이 나와 먼 발치에서 지켜보고 있다. 누가 편지 쓰나, 한번 보자. 이렇게 사실상 채증하고 있다. 사실 이런 분위기에서는 나도 좀 두렵다. 그래서 제가 이걸 못해줘서 너무 죄송하다' 이런 행간의 의미로 저는 읽었습니다.
두 번째 해병대원은 다른 곳에서 제가 따로 익명 인터뷰를 했어요. 이 분은 좀 더 직접적으로 설명을 해줬어요. 해병대 측이 전역식 행사에서 각 잡고 추모행사에 참여하지 말라고 경고를 한 건 아니지만, 해병대 관계자들이 전역 버스를 타기 직전이나 틈을 봐서 슬쩍 전역병들에게 말을 했다고 합니다. '해병대 예비역연대 행사에 협조하지 마라. 편지 쓰기와 언론 인터뷰 등 이런 거 응하지 마라. 너네는 오늘 자정까진 현역이다' 이런 식의 부대 내에서 발언이 있었다고 이렇게 얘기를 해주더라고요.(중략)
포항에서 추모행사가 끝나고, 오후 1시쯤에는 대전 현충원으로 이동했습니다. 저 사진에 계시는 분이 채상병 사고 당시 포7대대장, 이용민 중령입니다. 2023년 7월 경북 예천군 내성천 실종자 수색 도중에 포병인 채상병이 사망했습니다. 그 당시 포7대대장이었던 이용민 중령이 따로 참배하러 왔습니다. 이 중령은 내성천 현장을 실종자 수색할 때 실무 담당자입니다. 1사단의 수장이자 실질적인 총 책임자인 임성근 전 사단장이 채상병 순직 사건의 주범으로 이 중령을 지목하기도 했습니다.
정작 이 중령은 채상병의 순직 이후 '내가 널 지켜줬어야 되는데, 당시 구명조끼 미착용 등 그런 불법적인 지시가 있었을 때 내가 너희들을 좀 더 보호해 줬어야 되는데. 상부의 지시 때문에 내가 너무 나약했구나' 이렇게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우울증 약을 복용하면서 정신과를 다니며 치료를 받고 계십니다.
이날 참배를 오셨길래 어렵게 인터뷰를 한번 했습니다. 채상병을 위해 전역모(전역 기념 모자)도 준비해 오셨더라고요. 이 중령 인터뷰 한번 들어보시죠. "먼저 고 채해병의 명복을 빌며 그 가족분들께 진심 어린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저는 부대의 성패에 책임을 지는 지휘관으로서 책임을 회피하지 않을 것이며 우리 해병대 전우 수근이를 끝까지 잊지 않겠습니다"
전역 당일 오후 3시엔 대전 현충원에서 해병대 예비역 연대가 공식 추모행사를 진행했습니다. 정원철 연대 회장은 "우리는 싸우겠습니다. 반드시 싸워서 채상병의 한을 풀어주겠습니다. 반드시 싸우겠다. 대한민국 해병대 수뇌부들은 반드시 처벌받을 것이고 바뀌어야 합니다. 그들이 해병대를 망치고 있습니다. 여러 선배들이 쌓아올린 해병대 명예가 해병대 일부 장군들로부터 무너지고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중략)
채상병과 같은 부대에서 근무했던 동기들이 원래 예비역 연대가 마련한 오후 3시 행사에 함께하기로 했었어요. 그런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제가 나중에 들어보니 이 분들은 나중에 따로 참배를 했다고 합니다. 앞서 언급한 감시와 견제 이런 것들이 부담스러워서 잠깐 자리를 피한 듯 합니다. 공식 행사가 다 끝나고 모두가 철수한 다음에 따로 비공개로 채상병 묘지에 가서 채상병을 추모했다는 소식이 나중에 전해졌습니다. 우리가 이런 엄혹한 시대를 살고 있어요. 무슨 추모도 자유롭게 못하는 현실, 너무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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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이정주 기자 sagamore@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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