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페이크 처벌부터 세종지법 설치까지…국회 문턱 넘은 민생법안들
여야, 77건 법안 합의 처리…구하라법 이후 한 달 만
딥페이크 처벌 강화, 육아휴직 확대 법안
양육비 국가 선지급제도 통과
[더팩트ㅣ국회=김세정 기자] 법안 77건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22대 국회 개원 이후 계속되는 극한 대립 속에서도 여야가 합의를 이뤄낸 법안이다. 딥페이크 성범죄 처벌을 강화하는 법안부터 모성보호3법, 양육비 이행법, 세종지방법원 설치법까지 민생과 직결돼 내용이 주목된다.
국회는 26일 본회의를 열고 법률안과 국가인권위원 선출안 등 100건의 안건을 처리했다. 재의결에 부쳐진 방송4법(방송법·방송문화진흥회법·한국교육방송공사법·방송통신위원회법 개정안)과 민생회복지원금법,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안)과 여당이 추천한 한석훈 인권위원 선출안은 부결됐으나 77건의 비쟁점 법안은 여야 이견 없이 통과됐다. 지난달 28일 구하라법, 전세사기특별법, 간호법 등 28건의 법안이 통과된 지 한 달여 만이다.
최근 딥페이크(인공지능을 활용한 합성) 기능을 이용한 성범죄 영상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면서 처벌 강화법이 가장 주목된다. 성폭력범죄 처벌 특례법과 성폭력방지 및 피해자보호법, 아동·청소년 성보호법 등의 개정안인데 딥페이크 영상물을 소지·시청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딥페이크 영상을 제작했을 때 처벌을 기존 최고 5년형에서 7년형으로도 늘렸다.
성 착취물로 아동·청소년에게 협박 또는 강요했을 경우에는 처벌 수위를 높이기도 했다. 딥페이크 영상도 적용 대상에 포함됐다. 현재는 아동·청소년 성 착취물로 피해자를 협박한 경우엔 3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는데 5년 이상으로 상향했다.
딥페이크 등 디지털 성범죄에 긴급 수사가 필요한 경우 경찰관이 상급 경찰관서 수사부서장의 사전 승인을 받지 않더라도 '긴급 신분 비공개 수사'를 할 수 있는 내용도 담겼다. 불법 촬영물 삭제를 지원하는 주체에 지방자치단체를 추가했고, 불법촬영 피해 신고·접수·상담을 비롯해 신상정보 삭제를 지원하는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를 설치·운영할 근거도 명시했다. 피해자의 일상회복을 지원하겠다는 취지다.
육아휴직과 배우자 출산휴가 기간을 늘리는 내용의 모성보호3법(남녀고용평등법·근로기준법·고용보험법 개정안)도 이목을 끄는 법안이다. 배우자의 출산휴가는 기존 10일에서 20일로 확대하고, 출산일로부터 120일 이내에 최대 4회까지 나누어 쓸 수 있도록 했다. 부부의 육아휴직 기간을 기존 합산 2년에서 3년으로 늘리기도 했다.
육아기 근로 시간 단축 대상의 자녀 연령도 현행 8세에서 12세로 확대했다. 난임치료 휴가 기간을 3일에서 6일로 늘리고, 휴가에 따른 중소기업의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국비지원 근거도 마련했다. 임신 36주 이후에야 근로 시간을 단축할 수 있었는데 이를 32주 이후로 완화하기도 했다.
중위소득 150% 이하 한부모 가구에 국가가 양육비를 먼저 지급하는 내용의 양육비이행법 개정안도 통과됐다. 양육비이행관리원이 한부모 가구에 미리 일정 금액의 양육비를 지급하고, 이후 양육비를 부담해야 하는 채무자에게 구상권을 행사해 회수하는 방식이다. 한부모 가정에서 자라는 자녀의 생존권을 보장하고, 안정적 양육환경 지원을 위해서다. 양육비가 선지급됐을 때 여성가족부 장관은 양육비 채무자 본인의 동의 없이도 소득·재산 자료와 금융·신용·보험정보 제공을 요청할 수 있도록 해 지급금 회수를 수월하게 했다.
임금을 상습적으로 체불한 사업주에 대해 임금 최대 3배까지 배상할 수 있도록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하는 내용의 근로기준법 개정안도 국회 문턱을 넘었다. 1년간 3개월분 이상의 임금을 체불하는 등의 상습체불사업주에 대해선 신용제재를 비롯해 보조·지원 사업 참여 제한, 공공영역 계약상 불이익을 부과하도록 했다.
장애인 보조견이 공공장소에 출입 못하는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국가와 지자체가 홍보사업을 하도록 하는 장애인복지법 개정안도 통과됐다. 보조견의 동반 출입 거부의 정당한 사유를 하위법령에서 구체적으로 정하도록 하는 내용도 포함돼 장애인 이동권 보장과 보조견 인식 개선이 기대된다.
청소년이 위조 신분증 등으로 나이를 속이고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를 보거나, 비디오물감상실에 출입한 경우에 사업자에게 행정처분이 부과되는데 이같은 처분을 면제하는 내용의 영화 및 비디오물 진흥법 개정안도 처리됐다. 엔터테인먼트사가 소속 연예인의 요구가 없더라도 회계 내역을 제공하도록 하는 이승기 사태 방지법(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 개정안)도 있다. 불공정행위에 대해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조사할 수 있도록 근거도 신설됐다.
헬스장 등 체육시설 운영자가 회원들에게 휴업·폐업 사실을 미리 통지하는 내용의 체율시설 설치·이용법 개정안도 주목되는 민생 법안이다. 업자는 휴업·폐업 예정일 14일 전까지 회원에게 통지해야 하고 이를 어길 경우 1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마약류 중독자의 사후관리를 지원하는 마약류관리법 개정안도 통과됐다. 치료보호 또는 치료감호가 종료된 이에 대해서도 국가와 지자체가 사회복귀와 재활을 돕도록 체계를 구축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행정중심복합도시인 세종에 지방법원을 설치하는 내용의 법안도 있다. 현재 세종은 대전지법 산하 세종특별자치법원에서 담당하는데 이를 폐지하고 세종지법을 신설하기로 했다. 세종 인구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행정 공공기관 이전도 많아 사법수요가 커지고 있다는 이유다. 법안 통과에 따라 세종지법은 2031년 3월 개청을 목표로 한다. 판사 임용을 위한 법조 최소 경력을 기존 10년에서 5년으로 하향하는 법원조직법 개정안도 함께 통과됐다.
이번 법안은 구하라법과 전세사기특별법, 간호법 등 28건의 법안이 통과된 이후 한 달 만에 여야가 또다시 합의를 이뤄냈다는 점에서 긍정적 평가를 받는다. 22대 국회 개원 이후 극한 대치를 이어가던 여야가 민생 앞에선 손을 잡은 것이다. 다만 윤 대통령의 거부권을 행사했던 방송4법, 노란봉투법, 민생회복지원금법은 여당의 반대로 최종 폐기됐고, 민주당도 여당이 추천해 통과하기로 합의했던 한석호 위원을 부결시켜 소동이 생기기도 했다. 민주당은 가로막힌 법안을 모조리 재추진한다는 입장이고, 국민의힘도 이탈표가 쉽게 나오지 않을 것으로 보여 여야의 신경전은 쉽게 해소되지 않을 전망이다.
sejungkim@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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