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권’과 ‘가족’ 덫에 걸린 친족 성폭력 피해자

대한민국 어디에서인가 하루에 한 건 이상 친족 성폭력 사건이 벌어진다. 경찰청이 발표하는 범죄통계에 따르면 친족관계 내 강간 사건은 해마다 평균 약 100건, 강제추행 사건은 300건 정도 발생한다. 마지막으로 업데이트된 2022년 통계에는 친족관계 내 강간 사건이 110건, 강제추행 사건이 283건으로 집계됐다. 친족 성폭력 사건이 신고율이 극히 낮은 범죄라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 피해 규모는 이보다 훨씬 클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 7월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보건복지여성팀 입법조사연구관이 발간한 현장실태조사 보고서 ‘감춰진 피해자들: 미성년 친족 성폭력 피해자 특별지원 보호시설 지원업무 실태 및 개선과제’에는 친족 성폭력 범죄 현황을 보다 구체적으로 가늠할 수 있는 통계가 실렸다. ‘특별지원 보호시설’은 성폭력 피해자 중에서도 친족 성폭력을 당한 미성년자가 머물 수 있는 곳으로, 전국에 네 곳뿐이다.
현재까지 특별지원 보호시설을 거쳐간 피해자 316명을 대상으로 산출한 해당 보고서 통계에 따르면, 친족 성폭력 피해자는 10세 이하가 36.4%로 가장 많고 11세 17.4%, 12세 14.2%, 13세 10.4% 순이다. 즉 13세 이하 연령이 전체의 78.5%에 달한다. 경남 지역에서 특별지원 보호시설을 운영하고 있는 지은진 원장은 “원래 친족 성폭력 사건은 대개 피해자가 어린이 때부터 시작되어 범행 지속 기간이 길다는 특징이 있다. 다만 요즘에는 학교 상담 등을 통해 빨리 피해 사실이 알려지는 경우가 많아 입소 아동의 연령이 낮아지고 있는 추세다”라고 설명했다. 가해자 구성을 살펴보면 친부가 58.0%, 의부나 어머니의 동거남이 12.7%로 ‘아버지의 지위에 있는 사람’이 70.7%에 달한다. 그다음 친오빠 14.5%, 친인척 6.8%, 동거 친족 4.1%다.
가장 기본적 사회안전망인 가정에서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는 사각지대로 밀려난 미성년자가 겪을 수 있는 모든 문제를 겪는다. 전문가들은 친족 성폭력 사건의 경우, 사건이 발생하면 즉시 아동을 시설로 보내 가해 환경과 분리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한다. 아동학대 사건을 주로 맡는 신수경 변호사(법률사무소 율다함)는 “일반적인 아동학대 사건은 나중에라도 원가정이 회복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무조건 아동을 분리해야 한다고 말할 수 없지만, 성폭력 사건이 발생하면 (원가정이 회복될) 가능성은 없다고 봐야 한다. 가해자가 구속되더라도 가해자를 옹호하는 가족 구성원이 있다면 어떻게든 사건을 덮기 위해 아이의 진술을 방해하기 때문에 사건 발생 직후 초기만이라도 시설 입소를 통해 분리시켜야 한다”라고 말했다.
2021년 5월에는 청주시 오창읍에서 두 중학생이 함께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평소 의붓아버지로부터 성학대에 시달렸던 ㄱ양과, ㄱ양의 집에 놀러 갔다가 친구의 의붓아버지로부터 성범죄를 당한 ㄴ양이 피해자였다. 당시 가해자는 구속되지 않은 상태로 조사를 받았고, ㄱ양은 가정으로부터 분리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해자와 피해자는 계속 한 공간에 머물게 됐다. 아동학대처벌법에 따르면 “학대 현장 이외의 장소에서 학대 피해가 확인되고 재학대의 위험이 급박·현저한 경우” 경찰이나 지차제의 아동학대전담공무원이 피해자를 보호시설이나 의료기관으로 인도하는 응급조치를 취해야 한다(제12조 1항). 하지만 같은 조항엔 동시에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피해 아동의 의사를 존중하여야 한다”라는 문구도 있다. 이때 특별한 사정이 어떤 것인지는 명시되어 있지 않다.
성인 된 피해자 위한 지원도 절실

청주 여중생 동반자살 사건의 피해자 유가족을 지원한 충북지방법무사회(회장 김석민)는 2021년, 아동학대 사건 가운데 친족 성폭력의 경우에는 피해자를 보호자로부터 즉각 의무 분리하도록 하는 아동학대처벌법 개정안을 제안했다. 당시 김선교 국민의힘 의원이 이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으나, 임기 만료로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폐기됐다.
피해 아동이 시설에 입소한다고 할지라도 원가정과 완벽하게 단절되지는 않는다. 가해자가 법적 처벌을 받으면 피해자의 어머니 등 비가해 친족이 ‘이제 사건이 끝났으니 아이를 집에 보내달라’는 가정 복귀 신청을 하기도 한다.
특히 가해자가 미성년자 오빠일 경우에는 아이를 집으로 돌려보내 달라는 요구가 더욱 집요해진다. 피해자도 미성년자이고 가해자인 오빠도 미성년자일 경우 ‘아동학대’ 개념 자체가 성립되지 않아 아동학대처벌법 대상이 아니다. 아동학대는 성인이 미성년자를 학대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부모는 ‘(피해) 자녀가 돌아오면 잘 대해주겠다’는 약속을 하고 피해자를 집으로 데려와서 ‘오빠도 어린데 보호처분, 소년원 기록이 남으면 어떡하냐’는 식으로 피해자를 회유 혹은 압박하는 경우가 많다. 피해 아동이 진술을 철회하면 사건은 말 그대로 ‘없던 일’이 된다.
친아버지가 가해자일지라도 친권은 쉽사리 박탈되지 않는다. 원칙적으로 민법과 아동학대처벌법은 “아동의 친권자가 그 친권을 남용하거나 현저한 비행이나 아동학대, 그 밖에 친권을 행사할 수 없는 중대한 사유가 있는 것을 발견한 경우” 지자체장 또는 검사가 법원에 친권 상실을 청구할 수 있게 돼 있다. 하지만 서울가정법원 자료에 따르면 2015~2017년까지 청구된 친권 상실 건수 107건 중 친족 성폭력이 사유인 경우는 4건에 불과했다(법원에서 친족 성폭력을 포함한 아동학대 때문에 친권을 제재한 사건을 따로 집계하지는 않고 있다).
‘감춰진 피해자들’ 보고서를 낸 허민숙 입법조사연구관은 “성폭력까지 일어난 가정이 ‘천륜’에 의해 다시 회복되리라는 건 한마디로 ‘판타지’다. 그럼에도 가해자의 친권을 제한하거나 상실시키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보면, 그 아이를 돌봐야 하는 부담이 고스란히 국가의 몫이 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지난 20대 국회 때 김병관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친권자에 의한 성폭력이 발생했을 경우 친권을 박탈하는 법안을 발의했지만 역시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정부는 2023년 4월 친권자가 없거나 부모가 친권을 행사할 수 없는 보호대상 아동에 대해 공공후견인 제도를 도입하기로 하고 그해 말부터 시범 사업을 도입했다. 자신이 직접 신청하거나 혹은 누군가의 추천을 통해 공공후견인이 된 사람을 아동과 매칭해주는 프로그램이다. 다만 ‘아이 얼굴 한번 보지 않았던 사람이 후견인이 되는 것보다 아이의 사정을 잘 아는 보호시설 시설장이 공인으로서 후견인이 될 수 있도록 절차를 간소화해주는 게 더 실효성 있지 않느냐’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피해자들은 후견인 제도뿐만 아니라 만 18세가 넘어 성인이 된 피해자들에게도 관심이 절실하다고 말한다. 일곱 살부터 열일곱 살까지 친족에게 성폭력을 당했던 이지연씨(가명)는 성폭력피해자통합지원센터인 서울해바라기센터를 통해 꾸준히 자조모임에 나가고 있다. “사건이 진행되는 단계마다 피해자가 느끼는 감정 사이클이 있다. 다 비슷하다. 그걸 서로 이야기하고 ‘나만 이런 게 아니구나’ 위로받으면서 처음으로 안정감을 느꼈다. 센터의 노력과 헌신이 아니었다면 지속할 수 없었던 모임이다. 이런 자리라도 만들어질 수 있도록 장려해주면 숨통이 트일 것 같다.”
신수경 변호사는 중2 때 찾아왔던 친족 성폭력 피해자를 스무 살 넘어서 의뢰인으로 다시 만난 적도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상처가 치유되지 않으면 계속 비슷한 피해를 당하는 경우가 많다. 가장 믿었던 아버지나 오빠에게 성폭력을 당한 트라우마는 열여덟 번째 생일이 지났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게 아니다. 아무리 성인일지라도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전화를 걸 수 있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어야 살아갈 수 있다.”
나경희 기자 did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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