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 내는 대북 송금 재판…코너 몰린 이재명
“이화영 유죄” 선고한 재판부, 이재명 대북 송금도 ‘신속 심리’ 강조
(시사저널=김현지 기자)
오는 11월 공직선거법 위반·위증교사 사건의 1심 선고를 앞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불법 정치자금 의혹에도 휩싸였다. '쌍방울그룹의 불법 대북 송금' 의혹으로 함께 기소된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의 녹취록이 공개되면서다.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이 이 대표를 위해 변호사비를 대납하고 법원 로비를 했을 뿐 아니라, 이 대표 관련 조직에도 돈을 댔다는 취지다. 김 전 회장은 이 전 부지사가 자백하지 않으면 이를 폭로한다며 협박했다는 내용이 녹취록에 담겼다. 여권은 이 대표의 불법 정치자금 의혹을 겨냥하며 수사를 의뢰했다.
쌍방울그룹과 얽힌 이 대표에게는 불법 대북 송금 사건도 난관이다. 현재 대북 송금 사건을 맡고 있는 재판부를 바꿔 달라는 이 대표 측 요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이다. 지금의 재판부가 이 전 부지사 사건에서 이미 다뤄진 사안은 이번 재판에서 축소해 다룰 수 있다고 시사한 것은 이 대표로선 특히 불리한 지점이다. 해당 재판부는 지난 6월 이 전 부지사에 대한 1심에서 징역 9년6개월을 선고하면서 대북 송금 사실관계를 모두 인정한 바 있다. 이런 재판부가 이 대표 사건을 신속하게 진행하겠다는 의사까지 내비치면서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한층 짙어진 형국이 됐다.
변호인 의견서로도 작성됐던 이화영 녹취록 내용
이재명 대표의 변호사비 대납 의혹은 이미 지난 대통령선거 과정에서 알려졌다. 쌍방울그룹이 이 대표의 정치적 위기를 가져온 공직선거법 위반 관련 재판 등(2018년)에서 변호사비를 대납했다는 것이 골자다. 쌍방울 측이 이 대표를 대리한 변호인단에 전환사채(CB) 등을 통해 거액의 수임료를 지급했다는 취지다. 2021년 10월 시민단체 '깨어있는 시민연대당'이 "이 대표가 변호사비로 3억원을 썼다고 밝힌 것과 달리 특정 변호사에게 현금·주식 등 20억여원을 준 의혹이 있다"며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고발하며 수사가 개시됐다.
다만 검찰은 2022년 9월 증거불충분으로 이 대표를 무혐의 처분했다. 공직선거법상 공소시효가 6개월인 데다 핵심 인물인 김성태 전 회장의 해외 도피, 당시 경기도청 비서실 직원의 수사기관 불출석 등의 이유에서다. 그러면서도 불기소 결정문을 통해 쌍방울의 전환사채 발행 과정, 이 대표 변호인의 쌍방울 계열사 활동 등을 근거로 변호사비 대납 가능성에 대한 여지를 남겼다.
이런 정황은 최근 '이화영 녹취록'을 통해 재조명됐다. 10월2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가 진행한 박상용 검사에 대한 탄핵 청문회에서다. 주진우 국민의힘 의원은 한 언론보도에서 인용된 녹취록 뒤에 이어지는 이화영 전 부지사와 김형태 변호사 간 대화 내용을 공개했다. 2023년 7월12일 서울구치소에서 둘 사이에 오간 대화로, 당시 김 변호사는 쌍방울 측에서 뇌물을 받고 불법 대북 송금 등에 관여한 혐의로 기소된 이 전 부지사를 대리하고 있었다. 이 전 부지사는 대북 송금 사건에서 이 대표와의 연관성을 부인하다, 2023년 6월 검찰 조사에서 이 대표에게 보고했다며 입장을 바꾼 상황이었다.
공개된 녹취록에 따르면, 이 전 부지사는 김 변호사에게 "김성태가 폭로하겠다는 게 더 커요. 더 휘발성이 크고. 절대 말씀하시면 안 됩니다. 이재명 지사의 재판을 도와줬다는 거예요"라며 "(2018년 친형 정신병원 강제입원 관련 허위 발언 등에 대한) 무죄 나올 때. 변호사비 대납도 있고"라고 설명했다. 이에 김 변호사가 "그럼 최악으로 내가 가정을 해보자. 어떤 팩트가 있었을까"라며 대화를 이어갔고, 이 전 부지사는 "아니, 그거(변호사비 대납) 말고 또 법원 로비"라고 답했다.
김 전 회장이 이 대표 관련 조직을 지원했다는 내용도 있다. 이 전 부지사는 이와 관련해 "그다음에 저를 통해서나 혹은 김용(전 경기도 대변인)을 통해 이 지사 쪽에 후원금을 냈고, 특히 저희가 이 지사 조직을 관리해서 전에 광장이라고 이해찬 대표도 관련돼 있고 조정식 의원, 국회의원도 많이 관련돼 있었는데 거기에 들어가는 비용을 (김성태 전 회장이) 냈다(고 한다)"고 말했다. 이 밖에 이 전 부지사는 자신의 추가 뇌물 의혹을 김 전 회장이 거론하며 협박했다는 취지로 말했다.
與, 이 대표를 뇌물공여 혐의 등으로 고발
녹취록은 2023년 8월8일 법정에 제출된 변호인 증거의견서 내용과도 일치한다. 당시 김형태 변호사가 재판부에 제출한 의견서에는 "(김 전 회장은) '피고인(이화영 전 부지사)이 다 보고했을 것이고 이 대표도 다 알았을 것' '피고인이 이를 인정하지 않으면 뇌물 등 이재명 대표에 관한 부분에 대해 피고인에게 불리한 이야기를 다 하게 될 것이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런 진술을 거부할 경우 '본인(김성태 전 회장)이 과거 이재명의 재판 당시 2심 재판부에 대해 로비를 한 사실, 측근 김용을 통해 이재명에게 후원금을 기부한 사실, 이해찬-조정식 등이 이재명을 도와주고 있는 광장이라는 조직에 비용을 댄 사실 등을 모두 폭로하겠다고 말했다'는 대목도 의견서에 있다.
이는 '이 대표도 대북 송금을 알았다'는 이 전 부지사의 검찰 진술(2023년 6월)을 부인하기 위해 작성됐다. 김 변호사가 이 전 부지사와 접견(2023년 7월12일)한 직후다. 그러나 이 전 부지사는 2023년 8월8일 당시 법정에 불출석한 서아무개 변호사와 함께 재판을 받고 싶다며, 의견서 내용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했었다. 김 변호사와의 접견 당시 자신이 말한 내용이 담긴 의견서를 철회하며 입장을 번복한 것이다.
그러고는 최근에야 이 전 부지사는 녹취록 내용에 대해 '김 전 회장의 거짓말을 변호사에게 전달한 것'이라는 취지로 설명했다. 이 전 부지사는 10월2일 청문회에서 "김 전 회장이 상당히 많은 거짓말을 해서 압박, 협박한다(고 말한 것이다)"라며 "김 전 회장이 구체적으로 허위사실을 날조했는데 예를 들면 우리(경기도)를 위해서 대북 송금, (북한 측에) 대납했다는 이야기를 한다"고 말했다. "변호사에게 검찰과 이런 상황 속에서 딜(거래)을 했느냐는 정황을 말한 것"이라고도 했다.
녹취록은 김 변호사가 직접 녹음해 이 전 부지사 측에 전달하면서 알려졌다. 이에 대해 김 변호사는 10월10일 시사저널에 "이 전 부지사가 이 대표에게 불리한 검찰 진술을 한 이후 먼저 접견을 요청했다"며 "향후 이 전 부지사의 재판에서 해당 조서의 증거 능력과 관련한 동의 여부를 다루는 의견서 작성 등을 위해 녹음한 것으로, 이는 변호사의 당연한 권리"라고 설명했다. "김 전 회장의 주장은 지난해 이미 검사도 동석한 자리에서 나왔던 내용"이라며 평가절하하기도 했다. 이 전 부지사 측은 최근 이 녹취록을 김 변호사에게서 받아 이 전 부지사의 항소심 재판에 증거 자료로 제출했다.
현재로선 변호사비 대납과 불법 정치자금 등 의혹의 실체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녹취록 내용 가운데 뇌물 부분과 관련, 이화영 전 부지사는 6월18일 경기도 내 업체에서 5억3700만원에 달하는 뇌물과 불법 정치자금을 수수한 혐의로 추가 기소된 바 있다. 이재명 대표 등의 불법 정치자금 의혹에 대한 수사는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은 10월7일 이 대표와 이 전 부지사, 김성태 전 회장을 뇌물공여 및 정치자금법·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 상황이다.
이 대표로선 대북 송금 사건도 난관이다. 수원지방법원 형사11부(부장판사 신진우)가 6월7일 이 전 부지사에 대한 1심 선고에서 경기도를 위한 쌍방울의 대북 송금 사실관계를 인정한 상황이다. 재판부는 당시 경기도가 쌍방울의 대북 사업을 지원·보증했고, 그 대가로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이 북한 측에 800만 달러(스마트팜 사업비 500만 달러, 방북 비용 300만 달러)를 대납했다고 판단했다. 이 전 부지사에게 징역 9년6개월을 선고했다. 경기도 평화부지사는 이 대표 재임 시절 신설된 자리로, 북한과의 교류·협력 등을 담당했다.
대북 송금 재판부 변경 불발…'신속 재판' 가능성만 커져
설상가상으로 같은 재판부가 이 대표의 사건도 맡고 있다. 이 대표는 이 전 부지사의 1심 선고 직후인 6월12일 제3자 뇌물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김 전 회장(뇌물공여자)이 북한(제3자)에 대신 건넨 800만 달러가 이 대표(뇌물수수자)에 대한 뇌물이라는 것이 검찰 측 판단이다. 이 대표가 북한에 내야 할 돈을 김 전 회장이 대신 냈다는 취지다. 제3자 뇌물죄는 공무원이 직무에 관한 청탁을 받고 제3자에게 금품을 주도록 한 범죄 행위다.
그래서인지, 이 대표 측은 9월30일 재판부를 바꿔 달라는 취지의 '재판부 재배당 요청' 의견을 제출했다. 현 재판부가 같은 사건을 이미 살펴본 만큼 이 대표의 유죄를 예단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이는 현행법상 무죄추정의 원칙에 반한다는 것이 이 대표 측이 낸 의견서의 골자다. 이 대표 측은 기소 직후인 7월1일 서울에서 열리는 재판과 대북 송금 사건을 병합해 달라고도 요청했다. 다만 대법원은 보름여 만인 7월15일 이를 기각하며, 현 재판부가 그대로 대북 송금 사건을 들여다보게 됐다.
재판부 재배당 요청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신진우 부장판사는 10월8일 두 번째 공판준비기일에서 이와 관련해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대법원 예규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면 이런 경우에 대한 명확한 법률 문헌이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신 부장판사는 다만 "재판부도 종전 판단이 이번 사건에서도 구속될 수 있다는 등(변호인 입장)을 무겁게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이 대표 측의 거듭된 요청에는 '다른 법률적 문헌이 있다면 고려할 수 있다'며 여지를 남겨뒀지만, 현시점에서는 재배당이 불가하다는 뜻을 전했다.
되레 재판을 빠르게 진행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재판부가 대북 송금 사건과 관련한 다른 재판에서 다뤄진 사안은 이번 재판에서 증거조사 등을 축소해 다룰 수 있다는 뜻을 전한 것이다. 재판부는 "관련 사건에서 증거조사가 이뤄지고 있는데 (중복되는 경우) 그 부분에 대해 (증거조사를 또) 할 필요가 있는지, 경과를 봐서 필요한 경우에는 이 재판에선 (증인 신청을 하거나) 다른 형태로 진행하는 것이 어떤가 싶다"고 설명했다. '심리의 효율성'을 강조한 것인데, 재판을 신속하게 진행하겠다는 이야기다.
쌍방울과 얽힌 여러 사건이 이 대표를 조여오는 상황에서 여의도는 올가을 서초동 상황을 주목하고 있다. 이 대표는 현재 대북 송금 사건을 포함해 4건(대장동·백현동·위례, 성남FC 사건, 공직선거법 위반, 위증 교사)의 재판을 받고 있다. 이 가운데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은 11월15일, 위증 교사 사건은 11월25일 1심 판단이 나올 예정이다. 검찰은 각 사건의 결심공판에서 이 대표에게 징역 2년, 징역 3년형을 선고해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공직선거법에 근거해 선거법 위반 사건에서 벌금 100만원 이상, 일반 형사사건(위증 교사 등)에서 금고 이상의 형을 확정받으면 직을 잃는다. 피선거권도 박탈된다. 법조계에선 선거법 위반 사건의 경우 1심 판단 이후 1년 내 3심까지 마무리될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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