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청라 전기차 화재' 벤츠 EQE, CATL 아닌 中 '패러시스' 배터리 탑재

인천 청라지역 한 아파트에서 480여가구에 피해를 입힌 메르세데스-벤츠 전기차가 중국의 '푸넝커지'(孚能科技·패러시스) 배터리를 장착한 것으로 확인됐다. 당초 중국의 닝더스다이(CATL)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국토교통부 사고 조사 과정에서 이와 같이 밝혀졌다.

5일 국토부 등 정부 부처에 따르면 지난 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화재가 발생한 벤츠의 전기차 'EQE 350'은 패러시스의 88.8㎾h 용량의 NCM(니켈·코발트·망간) 배터리를 탑재했다. 앞서 이번 화재 차량에 탑재했던 것으로 알려졌던 CATL의 NCM배터리는 벤츠의 EQS 모델에 탑재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대해 벤츠코리아 관계자는 "아직까지 화재 사고 조사가 진행 중이기 때문에 어떤 업체의 배터리가 탑재된 것인지 확인해주기 곤란하다"고 답변을 피했다.

패러시스는 중국의 배터리 업체들 중 독특하게 NCM 배터리를 주력으로 한다. 배터리 폼팩터도 파우치가 주력이다. 이는 CATL, BYD, EVE, CALB 대부분의 중국 배터리 업체들이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주력으로 하는 것과 대조되는 모습이다.

벤츠가 EQE에 패러시스 NCM 배터리를 장착한 것은 2020년 7월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으면서 시작됐다. 당시 벤츠는 패러시스에 4억 유로(약 6000억원)를 투자, 지분 3%를 획득했다. 이를 통해 EQE를 포함한 전기차 라인업에 패러시스 배터리를 순차적으로 탑재하기로 결정했다.

벤츠와 패러시스의 협력은 시작부터 순탄치 않았다. 패러시스의 NCM배터리가 잇따라 품질 결함으로 문제가 됐기 떄문이다. 실제 벤츠는 EQ 라인업에 탑재할 첫 번째 배터리 셀 샘플을 받고서 품질 문제를 지적하며 파트너십 존속에 대해 고민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전기차 라인업 출시 계획을 지키기 위해 벤츠와 패러시스는 품질 문제를 함께 해결하며 결국 2021년 EQE를 출시했다.

하지만 EQE는 출시 이후 전세계적으로 화재로 인한 고초를 겪었다. 지난해에는 미국 플로리다 주택 차고에 주차돼있던 EQE 350에서 화재가 발생, 차량이 전소하고 차고와 집이 크게 파손됐다. 미국 플로리다 세인트 존스 카운티 소방청에 따르면 당시 차량은 충전 중도 아니었고, 22시간 동안 차고에 주차돼 있다가 불이났다. 해당 차량은 두 달 전 미국에서 고전압 배터리와 소프트웨어 관련 리콜 조치를 받은 차량이었다. 당시에도 패러시스 배터리의 품질 결함은 미국 내에서도 큰 문제로 떠올랐다.

패러시스는 중국 내에서도 품질 결함으로 유명하다. 2021년 중국 베이징의 국유 자동차 기업인 '베이징기차'(BAIC)는 패러시스 배터리를 장착한 전기차 EX360, EU400 등 3만1963대를 리콜했다. 리콜 원인은 배터리 시스템 밀도 차이로 특정 환경에서 화재 발생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발견됐기 때문이다. 당시 리콜 비용 5000만 위안(약 90억원)을 모두 부담했다. 이후에도 각종 배터리 품질 문제를 겪으면서 적자폭이 커졌고, 지난해 12월엔 중국 광저우의 국영회사 '광저우공공관리그룹'에 경영권이 넘어갔다.

전문가들은 이번 EQE 화재도 패러시스의 배터리 결함 가능성을 높게 점치고 있다. 실제 이번 인천 청라지역에서 화재가 발생한 차량도 미국 화재 사고와 비슷한 모습이다. 지난 7월 29일 오후 7시 16분께 주차했고, 8월 1일 오전 6시 15분 쯤 불이 났다. 59시간 가량 운행 없이 주차만 돼 있던 차량에서 배터리 열폭주가 원인으로 의심되는 화재가 발생한 것이다. 또 이번 화재 차량은 지난해 12월, 올 7월 두 차례 배터리 관련 결함으로 리콜을 진행한 바 있다.

배터리 산업 컨설팅 업체인 배터리다이브의 임성균 이사는 "중국의 모든 배터리가 패러시스와 같은 문제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규모가 어느 정도 크게 확보되지 않을 경우 품질 문제가 발생할 잠재적인 가능성은 높을 수 밖에 없다"며 "이런 점을 간과하고 파트너십을 맺은 벤츠가 협력관계를 지속하는 것은 잠재적 위협이 될 수 있고, 중국 기업들도 이런 문제가 반복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기업간 결합을 통해 회사를 키우고, 글로벌 규격에 맞는 품질 기술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배터리 실명제 도입에 대한 필요성도 제기했다. 수년 간 현대차 '코나 일렉트릭', 한국GM '쉐보레 볼트EV' 등 대규모 전기차 화재가 연달아 발생하면서 배터리 제조사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하지만 완성차 업체들은 배터리 제조사를 밝히지 않고 있다. 이로 인해 소비자들의 안전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상관 없는 기업에서 예기치 못한 피해를 입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다.

최영석 한라대 미래모빌리티공학과 객원교수는 "여러 차례 전기차 대형 화재 사고가 발생하면서 각각의 전기차에 탑재되는 배터리에 대한 소비자 관심도가 높아지고 있지만, 제조사들은 숨기기 급급한 상황"이라며 "화재의 주요원인이 될 수 있는 배터리 제조사를 공개해 소비자들의 안전과 알권리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 ‘배터리 실명제’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진행 중이다. 합동감식은 당초 8일부터 진행할 예정이었지만, 문제 원인을 조기에 파악하기 위해 3일 앞당겼다. 지난 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벤츠 전기차로 추정되는 차량이 폭발하며 발생한 화재가 8시간여 만에 완진됐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당국은 인력 323명과 펌프 차량 등 장비 80대를 동원, 8시간20분만인 같은 날 오후 2시35분 불을 완전히 껐다.

화재 당시 주차장에서 발생한 검은 연기가 아파트 단지 전체를 뒤덮으면서 주민 103명이 옥상 등으로 대피했고, 135명이 소방대원에 구조됐다. 또 영유아를 포함한 입주민 22명이 연기를 흡입했으나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상태다. 이밖에 차량 72대가 불에 탔고, 70여대가 그을림 등의 피해를 본 것으로 파악됐다.

류종은 기자 rje312@3protv.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