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세 류현진은 어떻게 1086이닝을 버텨냈을까?

오늘은 투수의 팔을 이야기하려 합니다.
조금 더 좁혀보면 어린 투수들의 팔에 대한 이야기고, 또 구속 혁명의 시대에서 구단은 투수의 팔을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가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싶은 글입니다.
비교적 최근 한 선수에게 실제로 발생했던 일로 글을 시작하겠습니다.

A구단은 강속구 투수 B를 매우 철저하게 관리했습니다.
B는 데뷔 초창기부터 포크볼을 던지지 않았는데 이는 구단방침이었습니다.
포크볼을 던지지 못하게 했던 이유는 팔꿈치 부상에 대한 우려 때문이었습니다.
체인지업성 구종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있던 B는 서클 체인지업과 스플리터를 놓고 고민을 하고 있었습니다.
포크볼과 비슷하기는 하지만 스플리터는 포크볼보다는 그립을 다소 모아 잡기 때문에 괜찮겠거니 생각을 했고 경기 중 몇 개의 스플리터를 테스트해 봤습니다.
그날 경기 종료 후, B는 구단의 호출을 받았습니다.
구단은 B에게 앞으로 다시는 스플리터도 던지지 말아 달라는 당부를 했다고 합니다.
그는 결국 구종에 서클 체인지업을 추가했습니다.
그렇게 구단이 B를 철저하게 관리했음에도 B는 팔꿈치 부상을 피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B는 토미 존 수술(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흔히 ‘포크볼이 투수들 팔부상의 원인’이라는 이야기를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그 강력한 예시로 보이는 몇몇 불운했던 투수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평생을 포크볼을 던지면서 부상 없이 프로생활을 20년을 지속했던 투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포크볼이 정말 투수들 팔부상의 원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토미 존 수술과 투수의 팔에 대해 면밀하게 분석한 The Arm의 표지 <사진 - 본인>

이전에도 한차례 칼럼에서 언급했던 책이 있습니다.
제프 파산이라는 미국 저널리스트의 ‘The Arm(2016)’이라는 책입니다.
이 책에서 저자 제프 파산은 6년에 걸쳐서 투수들의 팔을 면밀하게 분석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미국 고교야구 투수들의 MLB 쇼케이스가 되어버린 ‘퍼펙트게임 쇼케이스’나 팔 하나를 앞으로 못쓰게 될 각오로 대회에 임하는 일본의 고시엔 등의 각국의 문화적인 부분까지 들여다봅니다.
그런데 과거에 비교해서 투수들의 토미 존 수술이 늘어나게 된 원인을 분석하면 할수록 ‘명확한 원인을 알 수 없다’는 결론으로 다가가게 됩니다.

흔히 부상의 원인으로 언급하는 ‘과사용’의 문제도 쉽게 단정 지을 수 없다고 이 책은 이야기합니다.
그 예는 전 세계에서 투수로서 가장 많이 팔을 사용한 투수로 올드 야구팬들에게는 강속구의 대명사이자 텍사스 레인저스의 최고경영자까지 올랐던 놀란 라이언입니다.
그는 무려 27시즌을 뛰면서 5386이닝을 던졌고, ML 통산 최다 탈삼진(5714)과 최다 볼넷(2795) 허용의 기록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삼진 아니면 볼넷으로 자신이 직접 결정지었던 투구 스타일 상 만일 데뷔 초창기부터 메이저리그에서 투구수가 공식기록이 됐다면 메이저리그에서 역사상 가장 많은 투구수를 기록했을 것이 가장 유력한 선수입니다.
메이저리그는 공식투구수가 1988년부터 기록됐기 때문에 통산 투구수에 대한 정확한 수치를 알 수는 없지만, 그는 만 42세 시즌이었던 1989년에도 경기 평균 투구수 127구로 선발 투구수 1위를 기록했습니다. 그만큼 꾸준하게 많이 던졌다는 말입니다.
이런 그도 금강불괴는 아니었고 1986 시즌이 끝난 후 토미 존 수술에 대한 권유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는 수술을 거부하고 계속 투구했습니다. 이후 무려 일곱 시즌을 메이저리그에서 더 선수생활을 이어갔습니다.
이 7년 동안 그는 1271.2이닝을 투구했고 무려 1437개의 탈삼진을 기록했습니다. 만약 그 7년이 없었다면 그는 통산 탈삼진수에서 랜디 존슨(4875)과 로저 클레멘스(4672)에 이은 통산 탈삼진 3위가 될 수도 있었습니다.
언제나 어깨와 팔을 과사용했던 그는 텍사스 구단의 투수들에게도 훈련 과정에서의 ‘많은 투구’를 강조했다고 합니다. 본인의 경험을 토대로 한 지침이겠지요. 다만 여기서 중요한 점은 많은 투구수를 요구하는 대상에서 어린 투수는 예외로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 점은 매우 중요한 사실과 연결이 됩니다.

현실의 금강불괴, 텍사스 특급 놀란 라이언. <사진 - OSEN>

이 책에서는 통계를 통해서 확실한 사실 두 가지를 제시합니다.
- 빠른 공의 평균구속이 시속 93마일(시속 150km) 이상을 기록한 투수의 21.2%는 이듬해 DL에 올랐습니다. 이는 평균 90마일(시속 145km) 이하의 투수들이 이듬해 11.2% DL로 간 것을 비교하면 거의 두 배에 달하는 수치입니다. 또 평균 96마일(시속 155km) 이상의 공을 던질 경우 이듬해 DL에 오른 비율이 무려 27.7%에 달합니다.
- 1980년 이후 데뷔한 모든 투수들 통틀어 만 24세가 되기 전에 메이저리그에서 600이닝 이상을 투구한 투수는 10명이었습니다. 이 10명의 투수들 중 1000이닝을 넘게 던진 투수는 단 한 명으로 그는 그렉 매덕스입니다. 나머지 아홉 명은 예외가 없이 선수생활을 오래 지속하지 못했습니다.

이를 통해 도출할 수 있는 사실은 이렇습니다.
- 구속이 빠를수록 부상의 위험은 더 커진다.
- 어린 투수가 많은 투구를 하는 것은 선수생명을 위협할 수 있다.
즉, 강속구를 던지는 어린 투수는 매우 강력한 보호가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두 번째 경우에서 만 24세가 되기 전에 메이저리그에서 600이닝 이상을 투구한 10명의 투수 가운데 국내 야구팬에게도 익숙한 한 투수의 예를 들겠습니다.
2000년대 초반 불꽃같은 강속구와 함께 혜성처럼 등장해서 2003년 시카고 컵스의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를 이끌었던 강속구 투수 마크 프라이어입니다. 그와 케리 우드, 카를로스 삼브라노의 강속구 삼각편대는 향후 리그 최고가 될 것이라고 모두가 예상했습니다.
데뷔 당시 그의 투구폼을 일컬어 가장 무리가 가지 않는 투구폼(반면 부상 이후에는 역W 논란도 있었습니다)이라고 했습니다. 불꽃을 던졌던 그는 만 24세까지 메이저리그에서 613.1이닝을 던졌습니다.
그러나 그의 메이저리그 경력은 만 25세, 통산 657이닝으로 끝나게 됩니다.
통산 355승, 4차례의 사이영상 수상, 통산 5008.1이닝을 투구한 역대 최고의 선발투수, 그렉 매덕스라는 거대한 성공의 케이스가 예외였을 뿐입니다. 또 위에 언급한 ‘과사용의 대명사’, 놀란 라이언도 만 24세까지의 투구이닝은 510이닝에 불과했습니다.

LA 다저스 시절의 류현진, 그는 만 24세까지 KBO리그에서 1000이닝을 넘게 투구했습니다. <사진 OSEN>

우리가 너무 잘 알고 있는 예외의 케이스가 한 명이 더 있습니다. 바로 한화 이글스의 류현진 선수입니다.
류현진은 만 19세였던 루키시즌 201.2이닝, 그리고 만 20세였던 2007년 무려 211이닝을 투구했습니다.
그리고 제프 파산이 기준점으로 놓고 있는 만 24세까지 류현진은 KBO리그에서 무려 1086.1이닝을 던졌습니다. 물론 KBO리그에서 1이닝을 던지는 것과 MLB에서 1이닝을 투구하는 것이 같지는 않을 겁니다.
당연히 MLB에서의 투구가 더 많은 정신적, 육체적 소모가 있겠지요. 그래도 KBO에서의 1086.1이닝은 너무나 큰 수치라 MLB의 600이닝과 비슷하거나 더 위에 놓을 수도 있을 듯합니다.
이걸 이겨내고 지금까지 던지고 있는 류현진이라는 투수가 대단하게 느껴집니다.
또 한편으로 그가 2,3년 차부터 보여줬던 특유의 완급조절도 결국 자신이 본능적으로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선택이었다는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메이저리그 생활을 마치고 한화 이글스로 돌아온 류현진 <사진 - OSEN>

그런데 지금까지 말씀드린 내용은 제프 파산이 2016년에 발간했던 책을 기준으로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 이후 MLB에서는 구속혁명이 있었습니다. 또 수많은 투수들이 토미 존 수술을 받았습니다.
MLB사무국은 2024 시즌이 종료되고 지난 1년간 추이를 지켜본 결과 ‘투수들의 구속 증가와 비례해서 투수들의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이 늘고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놨습니다.
2024년 한 해 동안 팔꿈치 인대접합 수술을 받은 선수는 메이저리그에서 41명, 마이너리그에서는 240명으로 파산이 이 책을 출판했던 2016년과 비교하면 메이저(23명), 마이너(149명) 모두 약 2배가량 많은 투수가 팔꿈치 인대접합 수술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인간의 신체가 10년 전과 비교해서 극적으로 강해졌다는 소식을 들은 바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수들의 평균구속은 점점 빨라지고 있습니다.
과거와 같은 신체에서 공이 빨라진다는 점은 신체를 극한까지 몰아붙이면서 구속을 끌어올리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어떤 야구리그건 스카우트들은 강속구투수들을 선호하고, 어린 나이에 최고 구속을 선보여야만 높은 순위의 유망주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학생 선수들이 방학기간에도 휴식을 취하는 대신 구속을 늘리는 사설 프로그램에서 구속향상을 위한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투수들의 첫 토미 존 수술의 나이가 점점 어려지고 있다는 보고도 있습니다.

MLB 사무국의 보고서 내용

토미 존 수술은 투수의 팔꿈치 부상에 대한 유일하면서도 매우 훌륭한 해결책이지만 만능열쇠는 아닙니다.
이 책에 따르면 ‘메이저리거가 토미 존 수술을 받고 다시 메이저리그로 복귀한 비율은 80%’였습니다. 토미 존 수술을 받은 어떤 투수가 어떤 투수가 될지는 수술받을 당시의 연령, 뼈의 상태, 접합하는 인대의 강도에 따라 마치 복불복처럼 결정이 됩니다. 수술 이후 기량 회복이 되지 않는 누군가에 대해 단순하게 ‘재활을 게을리해서’라고 단정 지어 말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20%의 투수는 결국 빅리그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투수라는 포지션만 놓고 보면 모순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선수, 팬, 구단의 입장에서 모두 그렇습니다.
선수는 어린 시절부터 빠른 공을 던지고는 싶은데 부상은 당하고 싶지 않고 오래 선수생활을 하고 싶어 합니다.
팬들은 강속구 투수들을 보고 싶은데 그 투수들이 부상을 당하는 것은 원하지 않습니다.
구단도 많은 강속구 투수들을 보유하고 싶으나 그들이 부상을 당하면 안 됩니다.

100마일을 던지는 선발투수였던 오타니도 토미 존 수술을 피하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2024시즌 타자로만 뛰면서 5050클럽을 개설했습니다. <사진 OSEN>

이런 시대에서 중요한 것은 균형점을 잘 찾아내는 것입니다.
인체는 모두가 다르기 때문에 선수들의 개인별 특성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미국의 드라이브 라인이나 트레드가 각광받고 있는 이유는 단순하게 구속을 늘려주기 때문이 아닙니다.
천편일률적인 방법으로 선수들을 획일화하지 않고 개인별로 몸 관리의 해법을 제시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이영상을 수상한 투수들도 이런 사설 훈련소를 비시즌 때뿐이 아니라 시즌 중에도 활용하고 있습니다.
반면 위에 언급한 두 시설을 포함해서 해외의 투수코칭 시설을 다녀온 우리나라의 젊은 투수들의 상당수가 길지 않은 시간 안에 토미 존 수술로 이어지고 있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는 점도 우리는 생각을 해봐야 합니다.

다저스 시절의 잭 그레인키, 그레인키는 드라이브 라인의 주요 고객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사진 OSEN>

이제 이 길고 결론 없는 글의 결론을 내겠습니다.
투수에게 부상이 찾아오는 부상의 원인은 한 가지로 명확하게 말할 수 없습니다.
특정 구종을 던져서도 아니고, 단순히 많이 던져서도 아닙니다.
하지만 공이 빨라지면 빨라질수록 부상의 위험은 더 높아지고 있고, 피할 수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전 세계적인 추세인 구속 향상을 위한 노력을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결국 명확해지는 점 한 가지는 어린 투수들의 팔을 더 철저하게 관리하고 보호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SBS스포츠 정우영 캐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