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 즐기는 미쉐린 가이드 위주 식도락 투어

안녕, 에디터B다. 부산에 다녀왔다. 부산국제영화제 기간에 맞춰 내려간 이번 여행의 목적은 처음엔 ‘영화 감상’이었다. 하지만 한끼 한끼 먹을수록 목적이 변했다. 결국 3일째부터는 예매했던 영화를 모두 취소하고 식당만 다녔다. 그정도로 부산 미식 투어가 즐거웠다. 미쉐린 가이드 부산에 등재된 곳 위주로 방문하긴 했지만 아닌 곳도 섞여 있다. 3, 4, 5, 6번을 강력 추천한다.


1. 피리피리

부산 여행 첫 끼는 미쉐린 가이드 빕구르망에 등재된 피리피리로 정했다. 한 시간 뒤 <고독한 미식가: 더 무비>를 봐야 하는 일정이어서 일부러 웨이팅이 길지 않은 곳으로 골랐다. 피리피리의 장점은 태국 현지(태국 안 가봄) 느낌이 나는 인테리어와 가성비 좋은 메뉴. 나는 메뉴판에 랭쌥이 있으면 무조건 시켜야 하는 병에 걸린 사람이라 피리피리에서도 랭쌥을 주문했다. 그런데 가격이 2만 7,000원? 이렇게 착한 가격의 랭쌥이라니 놀랍다. 랭쌥은 태국식 갈비찜 같은 건데 달콤함, 신맛, 살짝의 매콤함이 섞여 입안에서 여러가지 맛이 소용돌이 치는 중독성이 강한 음식이다. 괜찮은 맛이었지만 고기는 기대만큼 부드럽지 않았다. 젓가락으로 툭 건드리는 것만으로도 해체가 되는 유약함이 랭쎕의 매력인데,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다. 그래도 2만 7,000원이라는 걸 감안하면 불만 가지긴 힘들긴 하고. 푸팟퐁커리도 주문했다. 가격은 2만 9,000원. 이렇게 2개를 주문하니 직원이 묻는다. “포장 안되는데 괜찮으시겠어요?” 괜찮고 말고. 푸팟퐁커리는 랭쌥보다 훨씬 좋았다. 가성비가 좋은 편인데, 맛도 밸런스가 잘 잡혀 있어서 흠 잡을 만한 게 없었다. 공기밥은 무조건 추가하도록 하자.

  • 부산 수영구 무학로33번길 54 1층 피리피리

2. 러브얼스

러브얼스, 지구를 사랑하자는 뜻이다. 여기도 빕구르망이다. 퓨전 음식점이며 비건 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곳이다. 사실 비건 식당인줄 모르고 찾아갔다. 비건을 비선호하는 건 아니다. 잘 조리한 채소는 고기보다도 큰 감동을 준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일이 일어나기란 좀처럼 쉽지 않기 때문이다. 안성재 셰프가 채소의 식힘 정도를 괜히 따지는 게 아니다. 채소는 익힘 정도에 따라 맛이 다르고, 그 정도라는 건 채소마다 다르기 때문에 채소를 잘 조리한다는 건 쉽지 않은 스킬이다. 러브얼스는 시즌마다 메뉴를 바꾸는 성실한 식당이고, 나는 요리하는 사람들의 성실함을 존경한다. 가을 커리 뇨끼와 토마토스튜, 들깨쌀국수 세 가지를 시켰다. 혼자 다 먹은 건 아니고, 디에디트 필자 중 한 분인 김철홍 영화평론가와 함께 먹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들깨 쌀국수. 들깨소스, 쌀국수, 두부튀김이 올라가는데 상큼한 맛과 고소한 맛이 동시에 느껴지고 채소의 아삭감 덕분에 입맛을 돋우는 데 효과적이었다. 문제는 내가 밥을 많이 먹는 사람이다보니 배를 가득 채울 수 있는 메뉴가 없었다는 것. 커리 뇨끼도 독특하고 무엇보다 방울양배추가 킥이었는데, 배는 부르지 않았다(치킨 한 마리를 혼자 먹는 사람이라는 건 감안해주길 바란다). 광안초등학교 바로 옆에 있어서 초등학생들의 하굣길을 보는 게 정겹고 좋았으며, 동네 분위기를 즐기며 커피 한 잔하면 좋은 코스다. 김철홍 평론가 역시 이것으로는 배가 차지 않는다며 아무래도 돼지국밥을 먹어야겠다고 말했다.

  • 부산 수영구 광안로49번길 32-1 1층 러브얼스

3. 톤쇼우

이 곳은 미쉐린 가이드에는 등재되지 않았으나 추천하고 싶어서 넣었다. 나보다 훨씬 미식씬에서 오래 활동하신 분이 이렇게 말해줬다. “부산에서 해산물을 먹는다고요? 그냥 톤쇼우만 먹고 오면 돼요.” 그때부터 톤쇼우라는 단어가 측두엽에 자리잡았다. 몇 개월 전 부산 출장에서도 톤쇼우에 가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이곳의 웨이팅은 난도가 높기로 유명하다. 서울의 몽탄, 금돼지식당만큼이나 살벌하다. 톤쇼우는 부산대역 부근에 본점이 있고, 광안점 그리고 최근에 생긴 남포점까지 포함해 세 군데를 운영하고 있다. 다행히 남포점은 아직 웨이팅이 길지 않아서 남포점으로 갔다. 단점이 있다면 히레가츠(안심)만 판매한다는 것. 나는 히레가츠만 먹어도 안심이 될 것 같아서 망설이지 않고 주문했다. 한 입 먹어보니 왜 톤쇼우 톤쇼우하는지 단번에 알 것 같았다. 지금까지 먹어본 안심 중에 가장 부드러운데, 튀김옷의 두께가 봄옷에서 여름옷으로 넘어가는 느낌으로 적당히 얇고, 두툼한 고기의 두께를 생각하면 많이 얇다고도 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바삭거리는 식감은 잘만 살아 있다. 마블링이 훌륭한 고기를 먹을 때 흔히 “녹는다”, “입안에서 사라진다”라고 말하는데, 지방 없이 살코기만으로도 이렇게 녹는다는 느낌을 받는 건 차원이 다른 쾌감이다. 행복하고, 즐겁고, 이 맛있는 걸 다른 이들도 알며 살기를 바라는 이타적인 마음이 생기고, 벤담의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따르기 위한 필수조건은 어쩌면 톤쇼우가 아닐까 싶은 생각마저든다. 어떤 식당은 유명세에 비해 부족한 실력을 가졌으나, 톤쇼우는 절대 그렇지 않다. 무조건 가보자.

  • 부산 중구 광복중앙로24번길 9 1층 톤쇼우 남포

4. 아르프

부산에서 왠 파스타냐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국밥도 한두 번이지. 20대때는 나도 부산에 가면 무조건 돼지국밥과 밀면이었다. 지금은 아니고. 맛있는 파스타는 서울에도 있다고 하지만, 그건 미식의 범위를 좁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사고 방식이 아닐까. 내가 생각하는 미식 활동이란 그 식당까지 찾아가는 과정, 식당의 음식, 식당의 서비스, 식당을 나오는 순간까지 포함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맛있는 파스타를 서울에서 먹는 것과 부산에서 먹는 건 다를 수밖에 없다. 아르프는 영도에 있다. 나는 아르프에 가기 위해 바람을 맞으며 영도대교를 건넜다. 아르프의 서버는 굉장히 친절하고, 분위기는 아늑했다. 혼자 방문한 사람이 어색하지 않도록 자리 배치를 배려해줬다(나는 혼자 방법은 상황을 신경 쓰지 않지만 다정한 배려는 달콤한 애피타이저처럼 메인 디쉬를 기대하게 만드니 좋았다). 독특하게 파스타와 전통주를 함께 페어링할 수 있는데, 파스타를 먹어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참나물 파스타, 고사리 파스타가 시그니처 요리다. 참나물 파스타는 전통 파스타와 비교해 더 뜨거운 편이다. 서버도 “뜨거우니 조심해서 드시라”고 안내를 해주는데, 과연 뜨겁다! 마치 돼지국밥처럼 후후 불어가며 식혀야 한다. 확실히 이 정도의 온도, 그리고 참나물 향이 듬뿍나는 파스타라면 전통주와 잘 어울릴 법하다. 전통주를 꽤 먹어본 사람인데도 처음보는 전통주가 보였다. 썬샤인 오브 유, 레떼, 레모멍, 마주향해, 모두 처음 들어보는 술이다. 찾아보니 40계단 발효소라고 하는 부산 소재의 전통주 양조장에서 만든 술이었다. 부산스러운 로맨틱함을 기대한다면 아르프를 추천한다.

  • 부산 영도구 태종로99번길 35 1층

5. 음주양식당 오스테리아 어부

미쉐린 가이드 부산 2024 셀렉티드에 오른 곳이다. 부산의 이탈리안 푸드씬을 대표하는 정용욱 셰프가 오너 셰프로 있다. 이곳에서는 세 가지 요리를 먹었다. 식전 음식으로 부드럽게 익힌 국내산 문어와 감자 퓨레를 쓴 ‘Polpo e Patate’, 메인으로는 문어리조또 ‘Risotto al Poppo con Nero di Seppia’. 감자 퓨레 요리는 거의 미친 맛이었는데, 감자의 향이 이렇게 풍부하게 느껴지는 요리는 처음이었다. 내가 먹었던 감자는 이렇지 않았다. 보통 감자를 쓸 땐 다른 소스가 시너지를 내도록 돕는 역할로 선택한다고 생각했다. 내 착각이었다. 최소한이 이 요리에서는 결코 아니다. 문어와 함께 있으면서도 문어가 오히려 식감을 담당하고, 감자가 향을 맡는다. 부드러움이라는 단어로도 부족한 부드러움과 감자의 향기로움이 매력적이었다. ‘감자의 향이 이렇게 좋았었나!’ 리조또의 쌀은 이탈리아의 프리미엄 쌀 아퀘렐로를 사용한다. 리조또용 고급쌀이다. 쌀을 숙성하면 크랙이 생겨 소스가 잘 스며드는데 이 쌀은 1년 동안 숙성했다. 감자 퓨레 요리를 강력 추천하며, 먹물 리조또를 함께 먹으면 좋다.

  • 부산 부산진구 동천로 58 1층 오스테리아 어부

6. 아웃트로바이비토

오늘의 주인공이다. 4박 5일 여행 중 가장 만족스러웠던 곳. 놀랍게도 미쉐린가이드 셀렉티드이며, 빕구르망이 아니다. 입장하면 드라마 <더 베어 시즌3>에 나올 것 같은 아늑하면서도 세련된 고급스러운 공간이 펼쳐진다. 테이블 간격이 적당히 넓어서 옆 테이블 소리에 방해받지 않으며 부엌 상황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다. 식당이 아니라 바이기 때문에 스타터와 메인 디시를 따로 구분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단품으로 여러개 한꺼번에 시키면 되는데, 나는 호박꽃튀김(로마에서 많이 먹는다), 에스카르고를 스타터로 시킨 후 파스타를 추가로 3개 더 시켰다. 생면 탈리아텔레를 쓴 오리지널 라구, 비스크 소스를 버무린 생면 트리네테, 포르치니 버섯 뒥셀과 세이지 버터 소스를 쓴 생면 타야린 등 3가지를 주문했다. 처음 먹는 맛이아닌데 달랐다. 내공이 느껴졌다. ‘뭔가 다른데? 뭐가 다르지?’ 맛이 직관적이고 솔직한 느낌이랄까. 애매하지 않았다. “나는 갑각류 껍질 맛이 날 수도 있는데, 살짝만 나요” 이런 태도를 취하지 않고, “내가 바로 비스크 소스인데 어쩔거야?” 이런 느낌. 라구나 다른 요리도 마찬가지인데 향이 훨씬 복합적이었다. 셰프에게 물어보니 맛의 레이어를 많이 쌓는다고 한다. 육수를 내는 방식과 소스를 만들면서 셰프만의 특별한 비법이 들어갔겠지? 그걸 맞출 수 있을 정도로 슈퍼 테이스터는 아니여서 대체 뭘 넣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와인 가격도 비싸지 않았고 파스타도 아주 훌륭했다. 마무리는 도미 파피요트를 추천한다. 각종 채소와 문어를 넣은 밥을 종이로 싸서 익힌 요리인데, 한식으로 치면 마무리 볶음밥 같은 포지션이다. 뜨거운 열을 견디며 모든 재료의 맛이 하나로 뒤섞여 이것 역시 레이어가 쌓여 있다.

아웃트로바이비토는 부산에서 최초로 생면 파스타를 시작한 김상진 오너셰프의 식당이다. 부산의 파스타를 말할 때 ‘비토’는 빼놓을 수 없는 곳인데, 연산동 그린스푼의 헤드셰프부터 시작해 가내수공업 양식당 비토의 오너셰프 그리고 이제는 아웃트로바이비토까지 왔다. 화려한 이탈리안보다는 소박한 가정식 파스타, 하지만 단순해보이는 비주얼 속에 내공을 가득 쌓아놓은 이 식당을 부산에서 반드시 들러야 하는 이유는 정말 맛있기 때문이다.

  • 부산 수영구 민락본동로19번길 18 1층

7. 거대돼지국밥

중앙역 부근에 있는 주목할 만한 카페 ‘에어리 커피’ 바리스타가 추천해준 곳이다. 돼지국밥 하면 노포를 떠올리기 쉽지만 이곳은 넓고 쾌적한 돼지국밥집이다. 거대갈비를 운영하고 있는 믿을 만한 F&B 브랜드에서 새롭게 선보인 곳으로 국물이 진하고, 돼지곰탕에서 기대할 수 있는 쿰쿰함도 느껴진다. 돼지국밥, 내장국밥, 섞어국밥 등을 고를 수 있고, 국물 역시 맑은 국말과 뽀얀 국물에서 선택 가능하다. 부산에서 돼지국밥을 아주 여러번 먹어본 것은 아니지만 여행 갈 때마다 먹어본 것중에서 순위를 매기면 거대돼지국밥 혹은 남천동 안목이 가장 내 입맛에 맞다. 녹진한 국물을 좋아한다면 두 곳을 추천한다. 참고로 남천동 안목도 미쉐린 가이드 빕구르망이다.

  • 부산 해운대구 달맞이길 16-2

8. 잔둔가

나는 맛집 유무를 판단할 때 메뉴 구성을 유심히 본다. 만약 본인이 파스타를 정말 사랑해서 식당을 차렸다고 생각해보자. 다른 곳에서 다 파는 평범한 메뉴만 팔고 싶을까? 아니면 쉽게 구경 못하는 낯선 메뉴 하나 넣고 싶을까? 당연히 후자다. 그렇기 때문에 메뉴 구성을 보면 자신이 파는 음식을 사랑하는 셰프인지 짐작할 수 있다. 알게 되면 더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면 더 잘하고 싶어지는 법이니까. 잔둔가는 치킨 타코, 피쉬 타고, 소고기 타코 세 가지 종류의 타코를 판매하고, 참치 토스타다, 홍새우 플라우타스, 양고기 바바코아까지 있다. 개인적으로는 가자미를 튀긴 피쉬 타코가 한입에 털어넣었을 때 밸런스가 좋아서 만족스러웠고, 참치 토스타다도 추천하고 싶다. 대부분의 후기에서 콘립을 추천하길래 ‘콘립은 당연히 뻔하고 맛있겠지’ 생각해서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과연 맛있었다. 콘립도 같이 시키자.

  • 부산 부산진구 동천로108번길 41 1층 잔둔가

9. 해운대암소갈비집

드디어 꿈을 이뤘다. 10년 전부터 이곳에 오고 싶었지만 몇 시간씩 기다릴 자신이 없어서 포기했었다. 각설하고 핵심만 적는다. 해운대암소갈비집은 비싸다. 비싸도 맛있는 고기를 먹고 싶다면 추천한다. 해운대암소갈비를 먹어보는 게 소원이었다면? 그런 분도 추천한다. 하지만 살면서 맛있는 소고기를 많이 먹어봤고, 해운대암소갈비집은 뭔가 차원이 다를 거라고 생각한다면 추천하지 않는다. 해운대암소갈비에 뭔가 특별한 게 있지는 않은 듯하다. 고기는 무척 좋은 고기를 쓰는 것 같다. 그러니 굽기만 해도 맛이 없을 수는 없겠지. 그렇다면 이때는 굽는 스킬과 식단 위에서 사이드와 조합하는 방식이 중요해지는데 그게 아쉽다. 서버의 수가 부족해서인지 가끔 방치되는 경우가 있다. 그러다보면 레어로 먹고 싶은 내 마음도 모른 채 웰던이 되어가는데 결국 내가 직접 굽게 된다. 고춧가루와 참기름에 빠르게 볶은 소금이 특별하긴 하지만 막상 찍어먹어 보면 임팩트는 크지 않다. 서울의 유명한 줄서는 고깃집 금돼지식당도 돼지고기의 맛을 따지만 독보적인 원탑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전문가가 고기를 최적의 상태로 구워주며, 바질을 구워먹는다는 독특한 방식 때문에 지금의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해운대암소갈비는 조금 아쉬웠다.

  • 부산 해운대구 해운대해변로 3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