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주에게 들어가는 돈은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내 자식 키울 때 못 해 준 것까지 얹어 주고 싶은 것이 할머니, 할아버지의 마음입니다. 그러나 그 마음이 자식 내외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는지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알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전북 전주에 사는 강순자 씨는 올해 예순여덟입니다. 남편을 10년 전에 먼저 보내고, 남부시장 한쪽에서 25년 동안 반찬가게를 하며 외아들 민석이를 키워 냈습니다. 새벽 네 시면 일어나 콩나물을 다듬고 깻잎을 절였고, 장사가 끝나면 손등이 갈라져 피가 나도록 그릇을 씻었습니다.
가게라고 해 봐야 두 평 남짓한 좁은 자리였지만, 순자 씨의 고들빼기김치와 깻잎장아찌는 동네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명절이면 줄이 골목 끝까지 늘어섰고, 그렇게 번 돈으로 아들 학비를 대고 작은 아파트 한 채를 장만했습니다. 순자 씨에게 반찬가게는 생계이자 자존심이었습니다.
민석이는 대학을 졸업하고 전주 시내에서 작은 인테리어 사무실을 차렸습니다. 며느리 은영이는 조용하고 말수가 적은 사람이었습니다. 시어머니에게 살갑게 굴지도, 그렇다고 함부로 하지도 않았습니다. 순자 씨는 그런 며느리가 늘 조금은 어렵고, 조금은 서운했습니다.
은영이는 결혼하고 나서도 직장을 다니며 아이를 키웠습니다. 시댁에 오면 인사를 하고 부엌으로 들어가 설거지를 했지만, 시어머니 곁에 앉아 수다를 떠는 일은 좀처럼 없었습니다. 순자 씨가 "우리 며느리는 참 조용해" 하고 웃으면 은영이도 따라 웃을 뿐이었습니다. 동네 친구들이 며느리가 해 준 안마기며 효도 여행 이야기를 늘어놓을 때면, 순자 씨는 괜히 말끝을 흐리곤 했습니다.

5년 전, 민석이의 사무실이 큰 공사 대금을 떼이면서 크게 휘청였습니다. 직원 월급을 맞추느라 집 대출까지 늘렸다는 소식을 듣고 순자 씨는 며칠 밤을 뜬눈으로 지새웠습니다.
그 무렵 중학교 3학년이던 손자 지훈이가 수학 학원을 그만둬야 할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공부를 곧잘 하던 아이였습니다. 순자 씨는 다음 날 바로 아들 집을 찾아갔습니다.
지훈이는 순자 씨가 업어 키우다시피 한 첫 손자였습니다. 아장아장 걸을 때부터 할머니 가게에 와서 콩나물 꼬리를 따겠다고 고사리 같은 손을 내밀던 아이였습니다. 그런 손자가 학원을 그만두고 혼자 문제집을 붙잡고 있다는 말을 듣자, 순자 씨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지훈이 학원비는 내가 대마. 한 달에 얼마냐?"
"어머니, 괜찮아요. 저희가 어떻게든 할게요." 민석이가 손사래를 쳤지만, 순자 씨는 이미 마음을 정한 뒤였습니다. "애 공부는 때가 있다. 너희 형편 풀릴 때까지만 내가 하마."
그렇게 시작된 학원비는 매달 60만 원이었습니다. 고등학교에 올라가면서 영어 학원까지 더해졌고, 순자 씨는 반찬가게 수입에서 한 푼도 빼놓지 않고 매달 25일이면 아들 통장으로 돈을 보냈습니다. 3년 동안 보낸 돈을 모두 합치면 2천만 원이 훌쩍 넘었습니다.
돈을 보내는 날이면 순자 씨는 은행 창구에서 일부러 손자 이름을 적어 넣었습니다. '지훈 학원비'라는 네 글자가 통장에 찍힐 때마다 묘하게 마음이 든든했습니다. 장사가 안되는 달에는 자신의 보험료를 미루고 반찬 재료를 조금 덜 사더라도, 학원비만큼은 하루도 늦게 보낸 적이 없었습니다.

돈을 보내는 것은 아깝지 않았지만, 마음 한구석이 쓸쓸할 때가 있었습니다. 며느리 은영이에게서 고맙다는 말을 제대로 들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명절에 모여도 은영이는 부엌일만 묵묵히 할 뿐, 학원비 이야기는 한 번도 꺼내지 않았습니다. 순자 씨가 "지훈이 공부는 잘하고 있냐"고 물으면 "네, 어머니" 하고 짧게 대답할 뿐이었습니다.
어느 날은 시장 단골손님이 지나가는 말처럼 물었습니다. "순자 언니, 며느리가 그렇게 고마워하지? 학원비를 3년이나 대 줬는데." 순자 씨는 웃으며 "그럼, 고마워하지" 하고 대답했지만, 그날 밤 가게 셔터를 내리며 괜히 한숨이 나왔습니다.
'내가 돈만 대 주는 사람인가. 저 애는 내가 해 주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는 건 아닐까.'
그 뒤로 순자 씨는 며느리를 볼 때마다 괜히 마음이 굳어졌습니다. 은영이가 명절에 사 온 내복 선물도 시큰둥하게 받았고, 전화가 오면 짧게 끊었습니다. 그렇게 고부 사이에는 말로 하지 못한 서운함이 얇은 살얼음처럼 쌓여 갔습니다.

그러던 중 순자 씨의 몸에 탈이 났습니다. 오랜 세월 쪼그려 앉아 일한 탓에 무릎 연골이 다 닳았다는 진단을 받은 것입니다. 의사는 수술을 권했지만 순자 씨는 지훈이 고3 학원비가 걸려 수술을 미뤘습니다. 진통제를 먹어 가며 가게 문을 열었습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민석이가 펄쩍 뛰었습니다. "어머니, 이제 학원비 그만 보내세요. 제가 할게요." 하지만 순자 씨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1년만 더 하면 된다. 지훈이 대학 가는 것까지는 내가 보고 싶다."
그날 이후 은영이가 몇 번 가게를 찾아왔습니다. 말없이 반찬 통을 정리해 주고, 순자 씨가 무릎을 주무르는 모습을 한참 바라보다 돌아가곤 했습니다. 순자 씨는 며느리가 왜 저러나 싶으면서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그저 "바쁜데 뭐 하러 왔냐"는 말만 되풀이했습니다.
그 겨울, 지훈이는 수능을 치렀고 서울의 한 공과대학에 합격했습니다. 합격 소식을 들은 날, 순자 씨는 가게 앞에서 혼자 박수를 치며 울었습니다. 3년 동안 아픈 무릎을 붙잡고 버틴 시간이 한순간에 보상받는 것 같았습니다.

2월 고등학교 졸업식 날, 순자 씨는 새로 산 코트를 입고 지팡이를 짚은 채 학교 강당에 들어섰습니다. 꽃다발을 든 지훈이가 할머니를 보자마자 달려와 안겼습니다. "할머니, 오셨어요? 다리 아프신데 오지 마시라니까."
졸업식이 끝나고 강당 밖으로 나오자, 며느리 은영이가 조심스럽게 다가왔습니다. 손에는 하얀 봉투 하나가 들려 있었습니다.
"어머니, 이거 받으세요. 집에 가서 보시라고 하고 싶었는데, 오늘 꼭 드리고 싶어서요."
순자 씨는 얼떨떨한 얼굴로 봉투를 받았습니다. 생각보다 두툼했습니다. 봉투를 열자 통장 한 권과 접힌 편지가 나왔습니다. 통장 첫 장에는 '지훈이 할머니 무릎 수술비'라고 또박또박 적혀 있었습니다.

통장을 넘겨 보던 순자 씨의 손이 떨리기 시작했습니다. 3년 전부터 매달 꼬박꼬박 돈이 들어와 있었습니다. 40만 원, 55만 원, 어떤 달은 35만 원. 들쭉날쭉한 금액이 빼곡하게 찍혀 있었고, 마지막 잔액은 1,800만 원을 넘기고 있었습니다.
편지에는 며느리의 단정한 글씨가 적혀 있었습니다.
[어머니, 말주변이 없어서 그동안 고맙다는 말씀을 제대로 못 드렸어요. 어머니가 학원비를 보내 주신 첫 달부터 저도 마트 야간 계산 일을 시작했어요. 어머니가 주신 돈을 그냥 받기만 하면 평생 마음의 빚으로 남을 것 같아서요. 갚을 수는 없어도 언젠가 어머니가 아프실 때 꼭 쓰고 싶었어요. 이제 무릎 수술 받으세요. 지훈이가 할머니 손 잡고 대학 입학식에 가고 싶대요.]

순자 씨는 그 자리에 선 채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3년 동안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다고 서운해했던 며느리는, 그 시간 내내 밤마다 마트 계산대에 서서 시어머니의 무릎을 걱정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얘야, 이걸 어떻게... 너 그 몸으로 밤일을..." 순자 씨가 겨우 입을 떼자 은영이가 시어머니의 손을 꼭 잡았습니다. "어머니가 새벽마다 반찬 만드신 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에요. 저는 어머니가 저를 서운하게 생각하셔도 괜찮았어요. 이 통장 드리는 날만 기다렸거든요."
옆에서 지켜보던 민석이도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아내가 밤일을 하는 줄은 알았지만, 그 돈을 어머니 몫으로 따로 모으고 있었다는 사실은 그날 처음 안 것이었습니다.

졸업식이 끝나고 네 식구는 학교 앞 중국집에 들어갔습니다. 지훈이가 졸업 기념으로 짜장면을 먹고 싶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짜장면 네 그릇과 탕수육 한 접시가 상에 올랐습니다.
순자 씨는 며느리의 그릇에 탕수육을 듬뿍 덜어 주며 말했습니다. "은영아, 그동안 내가 너를 너무 몰랐다. 미안하다." 은영이는 고개를 저으며 웃었습니다. "어머니, 저 짜장면 진짜 오랜만에 먹어요. 오늘 제일 맛있어요."
그해 봄, 순자 씨는 며느리가 모아 준 돈으로 무릎 수술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남은 돈은 다시 며느리 이름으로 된 적금에 넣었습니다. "이건 네 노후 자금이다. 이번엔 내가 너한테 빚 갚는 거다."

미국 작가 진 웹스터의 책 제목 『키다리 아저씨』처럼, 세상에는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묵묵히 누군가를 돕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순자 씨가 손자의 키다리 아저씨였다면, 며느리 은영이는 시어머니의 키다리 아저씨였던 셈입니다.
고맙다는 말이 없다고 마음까지 없는 것은 아닙니다. 표현이 서툰 사람일수록 말 대신 행동으로 마음을 쌓아 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서운함이 들 때 한 번만 더 그 사람의 속을 헤아려 보면, 생각지도 못한 진심을 만나게 될지 모릅니다.
수술을 마친 순자 씨는 지난봄, 며느리와 함께 천천히 전주천 둑길을 걸었습니다. 버드나무 가지마다 연둣빛 새순이 돋아 있었고, 저녁노을이 물 위에 길게 번지고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나란히 서서 오래도록 그 노을을 바라보았습니다.
출처 : '키다리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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