훅 벌어진 예대금리차…은행만 배 채운다고?
(시사저널=정윤성 기자)
5대 은행의 예대금리차가 벌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예대금리차는 하향 안정화되는 추세였지만 지난 8월부터 크게 확대됐다. 가계부채 규제가 본격화된 시점이다. 정부의 정책으로 은행들 배만 불린다는 지적이 나온다. 계속된 가계부채 관리로 대출금리가 하락할 여지도 적어 이자 장사는 이어질 전망이다.
24일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지난 8월 기준 가계 예대금리차는 0.57%포인트(p)를 기록했다. 0.43%p를 기록했던 7월보다 0.14%p 확대됐다.
예대금리차는 대출금리와 수신금리의 격차를 뜻한다. 예대금리차가 크다는 건 은행이 예적금 이자는 적게 주고 대출 이자는 많이 걷어 큰 이익을 얻고 있다는 의미다. 은행연합회가 2022년부터 예대금리차를 공시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예대금리차를 투명하게 공개해 지나친 이자 장사를 막고 은행들 간의 경쟁을 유도한다는 취지다.
그간 은행들도 이자 장사라는 비판을 피하기 위해 예대금리차를 관리하는 흐름이었다. 실제 올해 1월 0.85%p였던 예대금리차는 7월 0.43%p로 절반 가까이 줄었다. 4월에 0.5%p 소폭 확대된 것을 제외하면 매달 격차를 좁히는 흐름이었다. 금리 인하 기대감으로 시장금리가 하락한 영향도 있다. 일반적으로 예금금리는 대출금리에 비해 변동 폭이 적다. 대출금리는 준거 금리인 은행채 금리 변동이 민감하게 반영되는 반면 예금금리의 경우 이자가 거의 없는 입출식 예금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하지만 취지가 무색하게도 8월을 기점으로 예대금리차가 다시 확대되고 있다. 금융당국의 은행권 가계대출 관리가 본격화하면서 은행들이 대출금리를 올린 영향이다. 금융당국의 가계대출 억제 기조에 따라 은행들은 8월부터 가산금리를 올리거나 우대금리를 낮추는 방식으로 대출금리를 줄줄이 올렸다. 8월 은행권 가계대출 금리 역시 4.08%로 7월보다 0.02%p 높아졌다. 금리 인하기에도 대출금리는 시장금리를 거슬러 올라간 셈이다.
은행들의 수익 역시 당분간 고공행진할 전망이다. 당초 한국은행이 3년 2개월 만에 통화정책 전환에 나서면서 은행들의 수익성도 점점 떨어질 것으로 예상됐다. 금리 하락에 민감한 대출금리가 예금금리보다 먼저 떨어져 예대금리차가 축소되면, 은행들의 순이자마진(NIM)도 하락하기 때문이다. 물론 금리인하기에 건전성이 개선되면 대손상각비 등이 줄어들며 수익성이 일부 개선된다. 다만 예대금리차 축소를 상쇄할 만큼 영향이 크지 않아 수익은 줄어드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대출금리가 시장을 역행함에 따라 상황은 반대가 됐다. 은행들의 대출금리 인상 행렬은 멈추지 않는 가운데 예금금리만 낮아지고 있어 예대금리차는 더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NH농협은행과 우리은행은 전날 일부 적금과 정기예금 금리를 0.2%~0.5%p 낮췄다. 시중은행이 예·적금금리 인하에 나선 첫 사례다. 예금금리는 시장의 흐름을 따라가는 가운데 대출금리는 금융당국의 주문을 따라가고 있다는 점에서 당분간 예대금리차 확대는 불가피할 전망이다.
다만 신규 대출 영업의 총량을 감안하면 예대금리차 확대가 은행의 배만 불리진 않을 가능성도 있다. 5대 은행의 신규 취급된 주택담보대출 총액은 10월 들어 크게 쪼그라들었다. 이달 17일까지 신규 취급 주담대 총액은 3조8743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하루 평균 2035억원 규모로, 9월 하루 평균 신규 취급액(3854억원)과 비교하면 47%가량 취급액이 줄었다. 가계대출 잔액도 7221억원 증가하는 데 그쳤다. 9월 증가폭(5조6029억원)에 비해 급격히 줄었다. 은행들이 인상한 가산 금리는 신규 차주들에게만 영향을 주는 만큼 이자 장사가 확대됐다고 보긴 어렵다는 것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대부분 은행들의 가산금리 인상은 신규 대출을 대상으로 한다. 기존 차주들의 가산금리는 체결 시 정해진 값이 유지된다"며 "가계대출 억제 기조에 따라 높인 가산금리로 신규 대출 취급을 늘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예대금리차가 당장 큰 마진으로 이어진다고 보기 어려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가계부채 관리는 계속…금융소비자는 울상
금융당국 역시 지나친 예대금리차 확대를 경계하고 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11일 금융상황 점검 회의를 열고 "기준금리 인하 효과가 반영될 수 있도록 예대금리 추이를 면밀히 모니터링해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출금리를 조정하는 것 외에 가계부채를 관리할 뚜렷한 방안이 나오지 않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은행들은 자체적으로 대출 규정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이미 규제 카드를 꺼내 쓴 상황이다. 각 은행들은 대출금리 인상 외에도 1주택자 수도권 대출 제한, 대출 최장만기 축소 등 강력한 조치를 시행하고 있는 상태다.
한국은행의 설문조사도 대출 규제 장기화를 뒷받침한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금융기관 대출행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내 은행들은 올해 4분기에도 가계대출 억제 기조가 이어질 것으로 봤다. 조사에 따르면, 은행의 대출태도지수는 –12로 3분기(-17)보다 낮아졌다. 대출태도 지수가 낮아진다는 것은 대출 조건을 강화하려는 은행이 많다는 의미다. 정부의 가계부채 관리 정책에 따른 대출 옥죄기가 계속되면서 대출 금리도 요지부동을 이어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금융 소비자들의 부담은 계속될 전망이다. 예금과 적금 이자는 줄어들고 대출 이자는 늘어나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당국은 풍선효과 차단을 위해 2금융권에도 전방위적인 가계대출 관리책을 조만간 시행할 예정이다. 돈을 빌리려는 소비자들에겐 1·2금융권 할 것 없이 부담이 가중되는 상황인 셈이다.
금융위는 "추가 금리 인하 기대감에 따라 주택 구매 수요가 확산할 수 있다"며 "가계부채 하향 안정화 추세가 확실해질 때까지는 엄격한 관리 기조를 유지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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