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폴란드의 신형 잠수함 입찰 경쟁이 막바지에 접어들면서 흥미로운 역전 드라마가 펼쳐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독일 TKMS, 스웨덴 SAAB, 이탈리아 핀칸티에리(Fincantieri)의 제안이 가장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고 보도되었는데, 이는 단순히 기술적 우수성 때문만은 아닙니다.
사실 폴란드는 이번 잠수함 도입에 유럽연합(EU)의 자금을 활용하려고 계획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EU는 당연히 유럽 내 잠수함 업체를 선택하라고 강력히 추천하고 있죠.
유럽의 돈으로 아시아 잠수함을 사는 것보다는 유럽 내 산업 생태계를 지원하는 것이 논리적이라는 입장입니다.
이런 배경 때문에 독일, 스웨덴, 이탈리아 업체들이 각각 214급이나 212CD급, A26급, U212NFS급 같은 검증된 잠수함 기술을 앞세워 선두 그룹을 형성할 수 있었던 거죠.
이런 구조적 불리함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것이 바로 한국 기업들의 특징입니다.
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은 별도로 입찰에 참여했다가 이 대형 계약을 따내기 위해 손을 잡았습니다.
업계 관계자들은 "양사의 강점을 결합한 제안이 폴란드 정부로부터 경쟁력 있는 것으로 평가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죠.
폴란드가 새 잠수함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이유
폴란드 해군의 잠수함 현황을 보면 왜 이들이 새로운 잠수함을 간절히 원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현재 폴란드는 구소련제 킬로급 잠수함 '오제우(Orzeł)' 1척과 노르웨이에서 구매한 중고 잠수함 4척을 운용했습니다.
하지만 노르웨이산 코벤급 잠수함들은 2021년까지 모두 퇴역했고, 남은 킬로급 잠수함도 노후화로 인해 능력이 매우 제한적인 상황이죠.

우크라이나 침공이 발발하면서 폴란드의 국방 인식이 크게 바뀌었습니다.
브와스자크 국방장관이 2023년 5월 "신형 잠수함 취득 프로그램인 신오르카 프로젝트를 연내 착수한다"고 발표한 것도 이런 배경 때문입니다.
새로운 잠수함에는 AIP 기관을 통한 장거리 작전 능력, 순항미사일을 이용한 대지 공격 능력, 그리고 잠수함 유지보수에 필수적인 기술이전 등이 요구되었습니다.
막판 뒤집기를 노리는 한국의 독립적 자금조달 전략
한화오션은 지난 27일 바르샤바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신오르카 프로젝트에 대한 새로운 제안'을 발표했습니다.

이번 제안의 핵심은 바로 '잠수함 도입 자금조달에 관한 포괄적인 국가 주도 융자 패키지'입니다.
이는 한국 정부가 지원하는 금융 지원과 상업은행 융자를 결합한 'EU로부터 독립된 경쟁력 있는 자금조달 모델'을 의미하죠.
여기서 'EU로부터 독립된'이라는 표현이 핵심입니다.
지금까지 폴란드가 EU 자금 활용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면, 한국은 아예 EU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있는 독자적인 금융 솔루션을 제시한 셈입니다.
이렇게 되면 폴란드는 EU의 압박 없이 순수하게 성능과 조건만으로 잠수함을 선택할 수 있게 되죠.
단순히 돈 문제만 해결하는 것이 아닙니다.
한국 측은 잠수함 유지보수에 필수적인 3,000개 이상의 기술 이전, 해양산업 발전에 투자하는 1억 달러 규모의 기금 설립, 그리고 OPV(해양경비함), USV(무인수상정), UUV(무인잠수정), 미사일정의 공동 개발까지 제안했습니다.
한화오션은 "이 제안이 폴란드에 유연성과 예측 가능성, 그리고 자국 해양 능력 개발에서의 완전한 주도권을 제공한다"고 설명했습니다.
기술이전부터 NATO 함정 정비까지, 한국의 종합 패키지
한국의 새로운 제안에서 눈에 띄는 것은 단순한 잠수함 공급을 넘어선 종합적인 해양산업 육성 방안입니다.

폴란드 국방매체 Defence24는 "한화오션이 새로운 제안에서 이 협력이 폴란드 경제에 가져다줄 잠재적 이익을 어필했다"고 보도했죠.
특히 잠수함 유지보수 지원에는 "미국을 포함한 NATO 회원국의 수상함정에 대한 정비도 포함된다"고 강조했습니다.
기술이전의 일환으로 폴란드는 OPV, USV, UUV, 미사일정의 공동 설계·제조 기회를 얻게 됩니다.
이런 시스템들은 폴란드 해군뿐만 아니라 수출용으로도 건조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폴란드 입장에서는 매력적인 제안이죠.
잠수함 납기에 대해서도 1번함은 계약 체결 후 6년 이내, 나머지 3척도 8년 이내 인도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성능만으로는 부족한 현대 방산 수출의 현실
이번 폴란드 잠수함 사업은 현대 방산 수출에서 '성능 이외의 부분'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기술적 요구사항을 만족하는 것은 기본이고, 자금조달 방식, 기술이전 범위, 산업협력 방안, 그리고 정부 간 협상까지 모든 것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죠.
폴란드 국방부도 Defense News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로부터 수주를 따내기 위해 많은 국가가 경쟁하고 있지만, 조달청은 독일, 스웨덴, 이탈리아의 제안에 가장 높은 평가를 주었다.
하지만 정부 차원의 협의가 계속되고 있어 다른 제안들이 선택지에서 사라진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즉, 아직 게임은 끝나지 않았다는 뜻이죠.
포기하지 않는 한국 기업의 도전 정신
불리하다는 소식이 전해져도 한국 기업들의 포기하지 않는 도전 정신과 제안력에는 정말 감탄하게 됩니다.
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이 별도 참여에서 연합으로 전략을 바꾸고, 단순한 잠수함 공급이 아닌 종합적인 해양산업 생태계 구축 방안을 제시한 것은 매우 전략적인 접근이죠.
한화오션의 새로운 제안이 'TKMS, SAAB, 핀칸티에리의 우위성'을 뒤집을 수 있을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 정도로 집요하고 창의적인 접근 없이는 해외 시장에서 대형 계약을 따내기 어렵다는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코시니악-카미 부총리 겸 국방장관이 6월에 "연말까지 해군용 신형 잠수함 3~4척을 발주할 예정"이라고 발표한 만큼, 올해 안에 그 결과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