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도로 만들었더니 노상주차장 '전락'···화재 골든타임 위협
소방차 진입 도로 확·포장 공사
길 양쪽 주차 차량에 교행 곤란
대부분 백색실선···단속 근거 부족
강제처분 법 있으나 현장 집행 '소극'

소방차 진입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확·포장한 도로 다수가 노상주차장으로 전락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본래 사업 목적을 고려한다면 차량 등 장애물이 길을 막지 못하도록 해야 하나, 당초부터 주정차를 허용하도록 설계를 한 바람에 단속 명분도 없는 실정이다.
18일 오전 찾은 울산 북구 신천동 307-13번지 일원. 이곳은 북구가 차량통행과 소방차 진입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지난 2023년 30억여원을 들여 '한결노인주야간보호센터'부터 '골프존파크 신천코끼리골프점'까지 약 180m 길이, 폭 8m의 도로를 신설했다.
별도의 중앙선은 없지만 통상 1개 차로 폭이 3m 내·외인 것을 감안하면 널널하게 양방향 통행이 가능한 곳이다. 하지만 정작 양쪽 가장자리에는 빽빽히 주차된 차량들이 이어지고 있어 차가 한가운데로만 지나갈 수 있는 상황이었다. 폭도 크게 좁아져 승용차 한 대도 겨우 지나갈 정도였고, 양방향에서 차가 통행할 경우 한쪽이 무조건 차를 빼 양보를 해야했다.
남구 장생포동 새미골공영주차장부터 장생포문화센터까지 약 260m 이어진 도로도 양쪽 가장지리에 주차된 차량이 쭉 이어지고 있었다. 심지어 일부 구간은 노인보호구역으로 지정돼 빨간 바닥 재질과 각종 안내문까지 부착돼 있음에도 아랑곳없이 차를 대놨다. 같은 시각 바로 옆 새미골공영주차장에는 주차공간이 넉넉한 상태였다.

이렇듯 소방차 진입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확·포장한 도로 대다수가 주정차된 차량들로 가득하게 된 데에는 미비한 단속도 한몫했단 지적이다.
특히 취재진이 찾은 두 도로 모두 공통적으로 양 가장자리의 교통노면표시가 '주정차가 가능'한 백색실선으로 칠해져 있다. 주정차 금지를 의미하는 황색점선(주차금지), 황색실선(주정차금지), 황색복선·적색복선(주정차절대금지) 등 교통노면표시는 찾아볼 수 없었다. 노인보호구역도 마찬가지인데, 도로교통법 상 주차가 엄격히 금지된 어린이보호구역과 달리 노인보호구역은 그 대상이 아니라 주차를 하더라도 단속대상이 되지 않는다.
새로 개통한 도로의 교통노면표시는 지자체와 경찰이 협의를 거쳐 그리게 되는데, 소로나 골목길은 주차난으로 인해 대다수 백색실선을 칠하게 된다는 게 지자체 입장이다.
더 큰 문제는 현행법상 소방활동을 방해하는 주정차는 강제로 이동시키거나 파손하는 등 '강제처분'을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 실제로 이뤄지는 경우가 거의 없어 화재나 사고 위험을 키울 우려가 높다는 점이다.
2017년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당시 불법주차된 차량으로 인해 소방 굴절사다리차의 진입이 지연되면서 29명이 숨지고 40명이 다치는 등 피해가 커졌다.
이 사고를 계기로 강제처분 강화를 골자로 2018년 6월부터 소방기본법 개정안이 시행됐지만, 지난해까지 소방차 출동 방해 차량에 대한 강제처분은 단 4건, 울산에서는 1건도 나오지 않았다.
이는 강제처분 이후 민원으로 소방관이 겪을 민·형사상 소송과 그에 따른 인사상 불이익에 대한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한 현직 소방관은 "강제처분 관련법 개정 이후에도 각종 민원이 우려돼 출동대원들이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경우가 많다"라며 "이 때문에 매년 실제 차량을 동원해 강제처분 모의 훈련을 진행하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진입이 어려우면 우회로를 찾는 게 먼저이긴 하다"라고 전했다.
윤병집 기자 sini20000kr@ius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