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차의 EREV가 대박날 가능성, 이제는 커졌다고 봐야할까? 유럽연합(EU)이 “2035년부터 내연기관 신차 판매를 금지한다”는 표현은, 정책의 결과를 축약한 말이다. 실제 규제의 문법은 “엔진을 금지한다”가 아니라 신차의 CO₂ 배출 성능 기준을 ‘0에 수렴’시키는 방식에 가깝다.
승용차와 밴(경상용차)을 대상으로, 제조사가 EU에서 판매하는 신차의 평균 CO₂ 배출량을 일정 수준 이하로 맞추도록 강제하는 구조다. 이 규제가 왜 ‘내연기관 금지’로 읽히느냐면, 2035년 목표가 차량이 주행할 때 배출되는 CO₂(테일파이프 배출)를 사실상 0g/km 수준으로 맞추는 것이기 때문이다.

가솔린·디젤은 물론이고, 하이브리드(HEV),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HEV), 주행거리 연장형(EREV)처럼 엔진이 어떤 형태로든 연료를 태우면 테일파이프 배출이 ‘0’이 될 수 없으니, 결과적으로 신차 시장에서 버티기 어려워진다. 다만 여기서 자주 놓치는 사실이 있다. 2035는 ‘그 해에 갑자기 세상이 뒤집히는 단일 이벤트’가 아니다.
이미 2030~2034 구간에서도 감축 목표가 크게 강화되어 있어, 제조사 입장에서는 2030부터 체감 압박이 본격화된다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하다. 다시 말해, 2035는 종착점이고 2030은 가속 페달이다. 그런데 2025년 12월, 이 시간표가 흔들릴 수 있다는 신호가 나왔다.

EU 집행위원회가 기존의 2035 목표를 “완전히 0배출만 허용”하는 형태에서, 완화된 감축 목표(예: 2021년 대비 90% 감축)로 바꾸는 방향의 제안을 내놓으면서다. 아직 확정이 아니라 EU 의회와 회원국 차원의 승인 절차가 남아 있지만, 시장이 받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전기차로 가는 방향은 유지하되, 속도 조절과 유연성을 두는 쪽으로도 정치가 움직일 수 있다”는 뜻이다.
전기차 전환은 기술만으로 밀어붙여서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 소비자의 지갑, 충전 인프라 체감, 전력망, 배터리 공급망, 고용과 지역경제까지 한꺼번에 얽혀 있다. 이 중 하나라도 속도가 늦으면, “정책의 목표”와 “시장의 현실”이 충돌한다.

유럽에서 전기차 보조금이 줄어들거나, 금리 부담이 커지거나, 충전 스트레스가 해소되지 않으면 수요는 예상보다 느리게 움직인다. 이때 제조사들은 두 가지 압박을 동시에 받는다. 한쪽에서는 판매가 생각만큼 따라오지 않는데, 다른 쪽에서는 규제 목표를 맞추기 위해 제품 믹스를 강제로 바꿔야 한다. 이 과정이 길어질수록 가격 경쟁은 심해지고, 수익성은 흔들린다.
여기에 산업 경쟁의 문제가 겹친다. 유럽은 테슬라뿐 아니라 중국 전기차 업체들의 가격·공급 공세를 직접 체감하고 있다. 정책이 너무 급격하면 “전환 비용”과 “판매 부진”이 동시에 와서 제조업 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진다. 그래서 목표 자체를 완전히 폐기하기보다는, 목표는 유지하되 경로를 유연하게 바꾸자는 요구가 힘을 얻기 쉽다.

완화 논의는 단순히 “내연기관의 부활”로 해석할 일이 아니다. 오히려 전동화가 이미 되돌릴 수 없는 방향으로 간 만큼, 그 과정에서 생기는 마찰을 줄이기 위한 “정책적 완충재”에 가깝다. 문제는 이 완충재가 어떤 형태로 설계되느냐다.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나 탄소중립 연료 같은 ‘과도기 기술’을 얼마나, 어떤 조건으로 인정할지에 따라 시장의 실질적인 시간표가 달라진다.
전기차 시장은 이미 ‘하드웨어 경쟁’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배터리 용량이나 전비, 충전 속도만으로는 승부가 나지 않는 구간으로 들어왔다. 소프트웨어, OTA, 사용자 경험(UX), 그리고 ADAS·자율주행 체감이 상품성의 일부가 됐다. 이 구도에서는 테슬라가 강점을 크게 쥐고 있고, 많은 레거시 완성차는 불리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반대로 하이브리드 중심 시장은 아직 승부의 축이 조금 다르다. 물론 전장화·소프트웨어 비중이 커지고는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파워트레인 통합 능력이 성패를 좌우한다. 엔진·모터·변속·열관리·NVH(정숙성)까지 복잡하게 얽힌 시스템을 대량 생산에서 안정적으로 굴리는 능력이다. 여기에 서비스 네트워크, 부품 공급, 잔존가치까지 묶이면 ‘현실적인 신뢰’가 경쟁력이 된다.
이 영역에서 현대차그룹은 충분히 승산이 있다. 하이브리드를 “전기차 전환의 다리”로 활용하는 전략은 이미 방향이 잡혀 있고, 실제로 그룹 차원에서 차세대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공개하며 라인업 확장 의지를 강조해 왔다. 기아 역시 하이브리드 라인업을 전 세그먼트로 확장하고, 2030년까지 하이브리드 판매를 크게 늘리겠다는 목표를 공개한 바 있다.

즉, EU가 전환 속도를 조금이라도 늦추는 쪽으로 움직이면, 하이브리드·PHEV·EREV 같은 과도기 파워트레인의 ‘시장 수명’은 길어질 수 있다. 그리고 그 기간은 현대차그룹이 강점을 발휘하기 좋은 시간대다. 여기서 핵심은 “하이브리드가 강하니 그냥 버티면 된다”가 아니다. 진짜 기회는 따로 있다.
하이브리드로 벌어들이는 시간과 현금을, 전기차 시대의 숙제(소프트웨어·자율주행·플랫폼 경쟁력)에 투자할 수 있느냐다. 시간이 늘어난다는 건, 동시에 추격의 시간도 늘어난다는 뜻이다. EREV(주행거리 연장형 전기차)는 소비자 관점에서 설명이 직관적이다. “평소에는 전기차처럼 타고, 장거리에서는 엔진이 발전기로 도와준다”는 개념이다.

전기차의 장점인 전기 주행 감각을 최대한 살리되, 충전 인프라와 심리적 불안(레인지 애너티)을 완충하는 역할을 한다. 현대차그룹이 2027년부터 EREV를 출시하겠다는 계획을 공식적으로 언급한 점은 그래서 의미가 크다. 전기차 캐즘 구간에서 소비자가 실제로 부담을 느끼는 지점을 정면으로 겨냥한 해법이기 때문이다.
특히 장거리 이동이 잦거나 충전 환경이 불리한 지역, 법인·렌터카처럼 운영 효율이 중요한 수요에서 EREV는 ‘현실적인 전동화’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고 EREV가 만능은 아니다. EU 규제의 본질이 “테일파이프 배출 0”이라면, 엔진이 들어가는 순간 EREV는 원칙적으로 불리해진다. 따라서 EREV의 시장 수명은 EU가 최종 목표를 어떻게 확정하느냐에 영향을 크게 받는다.

이번에 제시된 완화 방향이 실제 입법으로 이어지고, 2035에도 일정 비중의 ‘비(非)제로배출’ 파워트레인이 조건부로 허용되는 구조가 만들어진다면, EREV는 단순한 과도기가 아니라 더 긴 시간 동안 시장에 남을 수 있다. 반대로 “2035 완전 0배출”이 고정되면, EREV는 매우 강력한 ‘전환기 상품’이 되되 최종적으로는 전기차로 넘어가기 위한 다리로 남게 된다.
그래도 현대차그룹 입장에서 EREV의 가치는 크다. 이유는 단순하다. 전기차 전환이 지연될수록 제조사는 “전기차만으로 버티는 체력”이 필요해진다. 그 체력을 만들어 주는 것이 하이브리드·EREV 같은 고효율 전동화 파워트레인이다. 전기차가 당장 폭발적으로 늘지 않는 구간에서도 판매량과 수익을 유지해 주고, 그 자원을 다음 단계에 투입할 수 있게 한다.

전기차 시대는 오되, ‘가는 길’이 길어질 수 있다
결론적으로 EU의 2035 목표는 “내연기관을 법으로 금지한다”는 단순한 문장이 아니다. 배출 기준을 극단적으로 강화해 시장을 전기화하는 큰 방향이며, 그 과정에서 2030부터 이미 강력한 압박이 시작되는 구조다. 여기에 2025년 말 완화 논의는 “방향을 취소한다”가 아니라 “속도를 조절할 수 있다”는 신호에 가깝다.
이 변화는 현대차그룹에 분명 기회가 될 수 있다. 전기차 시장에서 소프트웨어·자율주행 경쟁이 너무 빠르게 본게임으로 들어가 버린 상황에서, 하이브리드·EREV 중심의 전동화가 길어지면 ‘승부의 룰’이 한동안 달라진다. 현대차그룹이 강점을 가진 파워트레인 통합, 대량생산 품질, 서비스·운영 능력이 더 크게 작동할 수 있다. 경쟁 구도 역시 하이브리드에서는 상대적으로 압축되기 쉽다.

하지만 이 기회는 자동으로 이익으로 바뀌지 않는다. 시간이 늘어났다는 건, 동시에 “다음 라운드가 더 중요해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이브리드·EREV로 벌어들인 시간과 현금을, 전기차 시대의 핵심 숙제인 소프트웨어, 통합 플랫폼, ADAS/자율주행 체감, OTA 경험에 투입해야 한다. 그래야 “전기차로 가는 길이 길어진다”는 변화가 단순한 지연이 아니라, 추격과 재정비의 구간이 된다.
EU의 시간표가 조금 느슨해질수록, 시장은 ‘전기차 올인’이 아니라 ‘혼합 전환’을 더 오래 겪게 된다. 그 혼합 전환이 길어지는 만큼, 현대차그룹이 선택할 수 있는 전략의 폭도 넓어진다. 결국 관건은 하나다. 하이브리드와 EREV를 단순한 버팀목이 아니라, 다음 시대를 준비하는 시간-자본-기술의 연결고리로 만들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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