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부장 레이더]'R&D 베팅' 주성엔지니어링, 영업이익률 30% 전망

주성엔지니어링의 경기 용인 R&D존 / 사진 제공=주성엔지니어링

뿌린 대로 거둔다. 비즈니스 세계에서 이 문장처럼 확실한 법칙은 없다. 반도체 장비 전문 기업 주성엔지니어링이 올해 보여줄 어닝 서프라이즈 역시 이 법칙을 따른다. 다른 기업들이 불황을 이유로 투자 주머니를 닫을 때 매출의 3분의 1을 연구개발(R&D)에 쏟는 뚝심과 위기 속에서 뿌린 씨앗이 마침내 압도적인 수익성과 실적이라는 결실로 증명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올해 예상 영업익 1150억, 전년 대비 267.4%↑

한국투자증권은 주성엔지니어링이 올해 연결 기준으로 매출 4030억원, 영업이익 1150억원을 달성할 것으로 예상했다. 매출은 전년 대비 29.7%, 영업이익은 267.4%나 급증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주요 고객사인 SK하이닉스를 비롯한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기업들이 슈퍼사이클 진입에 따라 투자를 확대하면서 주성엔지니어링의 실적도 가파르게 반등할 것으로 보인다.

채민숙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SK하이닉스는 올해 충북 청주 사업장 M15X 증설 투자를 진행하며 주성엔지니어링의 핵심 장비를 다수 도입할 것"이라며 "반도체 사업부문의 호조에 더해 태양전지와 디스플레이 장비 판매량도 본격적으로 매출에 반영되면서 올해 실적이 크게 증가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번 실적 전망치에서 가장 눈여겨볼 부분은 ‘수익성의 질’을 증명하는 영업이익률이다. 지난해 10% 턱걸이에 그쳤던 주성엔지니어링의 영업이익률은 올해 28~30%로 수직 상승할 것으로 관측된다. 지난해에는 100원어치 장비를 팔아 겨우 10원을 남겼다면, 올해는 28~30원을 남기는 알짜배기 회사로 탈바꿈하는 셈이다.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회장(가운데)이 생산라인을 점검 중이다 / 사진 제공=주성엔지니어링

실적악화·불황에도 R&D에 1069억 ‘베팅’

주성엔지니어링의 지난해 성적표는 초라했다. 고객사들이 생산능력 확대를 주저하며 신규 장비 구입을 망설여 매출과 영업이익이 일제히 감소해서다. 지난해 매출은 3107억원, 영업이익은 313억원으로 전년 대비 각각 24.1%, 67.8% 줄었다

대다수 기업은 실적 악화와 불황을 마주하면 가장 먼저 인건비를 줄이고 미래를 위한 R&D 예산을 감축하며 위기를 피하려 한다. 당장 눈앞의 적자에서 벗어나는 것이 급선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회장의 행보는 달랐다. 황 회장은 위기일수록 독보적인 기술력을 확보해 경쟁사와 격차를 벌려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매출의 3분의 1에 달하는 1069억원을 R&D에 과감히 투입했다. 일각에서는 주성엔지니어링이 무모한 도박에 나선다며 우려의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황 회장의 결단은 ‘신의 한 수’가 될 전망이다. 글로벌 반도체 시장이 1나노미터(nm)라는 미세공정의 한계에 부딪혀서다. 경쟁사들이 불황에 몸을 웅크린 사이 1000억원이 넘는 R&D 투자로 공정 한계를 극복할 기술을 완성했고, 이는 영업이익률 30%라는 잭팟이 될 것으로 보인다.

경기 용인 주성R&D센터 / 사진=유호승 기자

“쌓지 않고 키운다”…고객사 줄 서는 ALG 기술

마진율 증가의 일등 공신은 주성엔지니어링이 세계 최초로 상용화에 성공한 ALG(원자층 성장) 장비다. 반도체는 아주 얇은 막을 겹겹이 쌓아 만든다. 회로 선폭이 1nm 수준으로 미세해지면서 기존 주력 방식인 ALD(원자층 증착) 기술로는 치명적인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막이 너무 얇아진 탓에 전기가 옆으로 새어 나가는 ‘누설 전류’ 현상을 기존 장비로는 더 이상 막을 수 없게 된 것이다.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미세공정에서 가장 골머리를 앓던 부분이다.

주성엔지니어링은 미세한 화학 재료를 위로 쌓아 올리는 ‘증착’ 개념에서 탈피해, 원자가 표면에서 스스로 규칙을 가지며 배열되고 자라나는 성장 기술인 ALG를 개발했다. 이 방식으로 막을 형성하면 원자 사이에 틈이 없어 전기가 새는 현상을 완벽히 차단하고 반도체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다.

최근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에 공급되기 시작한 ALG 장비는 오직 주성엔지니어링만 생산할 수 있어 현재 고객사들이 줄을 서서 대기하는 구조가 형성됐다.

주성엔지니어링 관계자는 “ALG 기술력을 바탕으로 반도체 제조 분야에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며 “세계 최초로 확보한 ALG 기술을 기반으로 차세대 반도체 장비 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할 것”이라고 전했다.

주성엔지니어링 디스플레이 R&D존 / 사진 제공=주성엔지니어링

SK하이닉스 의존도 탈피, 북미·대만으로 영토 확장

주성엔지니어링의 아킬레스건은 SK하이닉스에 대한 매출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다는 점이었다. 국내 고객사가 반도체 시황 불안으로 지갑을 닫으면 실적이 곤두박질치고, 반대로 투자를 늘리면 살아나는 이른바 ‘천수답 경영’ 구조에 갇혀 있었다.

게다가 대기업 고객사와의 협상에서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기업이 단가 인하 압박을 이겨내고 높은 이익률을 지키는 것은 구조적으로 매우 어려웠다.

하지만 주성엔지니어링은 1nm 한계를 극복한 기술력을 무기로 공급망 다변화에 성공했다. 까다롭기로 소문난 미국의 글로벌 빅테크 기업은 물론, 세계 최대 파운드리 기업인 대만의 TSMC에도 장비 납품을 시작한 것이다.

기술력의 가치를 인정하고 제값을 치르는 ‘해외 큰손’들이 등장하면서, 국내 특정 대기업에 휘둘리지 않는 탄탄한 포트폴리오가 완성됐다. 이제는 국내 시장의 투자 기조 변화나 단가 압박에 일희일비하지 않아도 되는 체력을 갖추게 된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매출의 3분의 1을 미래에 투자한 황철주 회장의 결단은 기술 장벽을 아득히 높이고 수익성까지 확보한 R&D 투자의 모범 사례”라며 “한국을 넘어 북미와 대만으로 글로벌 영토 확장에 성공한 만큼, 당분간 주성엔지니어링의 실적 상승세는 거침없이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유호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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