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강명의 벽돌책] 독일·소련의 학살… 비극,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가

‘2차 세계대전의 가장 거대한 비극은 독일이 저지른 홀로코스트다. 홀로코스트의 상징은 아우슈비츠다. 아우슈비츠에서 많은 독일계 유대인이 학살됐다.’
위의 문장들에는 겹겹이 오해가 쌓여 있다. 홀로코스트를 연구하는 역사학자 티머시 스나이더의 ‘피에 젖은 땅’(글항아리)은 832쪽에 걸쳐 그 오해를 깨뜨리고, 새롭고 어려운 질문들을 던진다.
스나이더가 말하는 ‘피에 젖은 땅(bloodland)’은 독일과 소련 사이에 있었던 동유럽과 인근 국가들이다. 이곳에서 학살된 사람은 1400만명이며, 학살된 독일계 유대인 16만5000명은 그 일부에 불과하다. 학살 대상은 독일계 유대인과 동유럽 유대인, 비유대인을 아울렀으며, 대학살의 많은 부분은 아우슈비츠 같은 시설에서 공장식으로 진행되지 않았다. 희생자가 살던 마을에서, 야만적으로, 중세 시대의 이교도 학살처럼 이뤄졌다. 때리고 겁탈하고 한꺼번에 구덩이에 들어가게 한 다음 총으로 쏘는 식이었다. 혹은 식량을 수탈해 의도적으로 굶겨 죽이는 식이었다.
학살의 주체는 독일과 소련이었다. 두 나라는 경쟁적으로 독일계와 러시아계가 아닌 다른 민족을 학살했으며, 서로의 학살 방식에서 잔인한 영감을 얻었고, 종종 합작했다. 다만 패전국 독일과 달리 소련은 학살을 좀 더 오래 은폐할 수 있었고 자신들을 2차 세계대전의 피해자로 묘사했다. 전후 소련의 지배를 받은 지역 주민에게는 발언권이 없었다. 독일과 소련의 학살이 어떤 점에서 흡사했고 어떤 점이 달랐는지, 두 나라의 학살 시스템을 ‘전체주의’라는 용어로 묶어야 하는지는 이 책의 주요 논점이다.
굉장히 괴로운 책이다. 읽다 보면 몸서리가 쳐지고, 인류와 인간성에 대한 환멸도 인다. 그래도 각오가 된 분들께 꼭 권하고 싶다. 특히 결말 부분에서 현대 사회가 이 비극을 기억하는 방식에 대한 일침을 듣고 머리가 얼얼했다. 우리의 추모 문화는 우리 자신을 희생자와 동일시하고, 가해자를 우리와 다른 인간 이하의 존재로 서술하는 역할을 하는 건 아닌가. 독일과 소련에서 학살에 동조한 이들이 그런 마음을 품었던 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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