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김태형이 선배가 됐다

KIA의 고졸 루키 김태형이 두 경기 연속 4이닝을 소화하면서 자신감을 얻었다. /김여울 기자

꿈을 현실로 이룬 누군가는 기쁨의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하지만 많은 이들은 끝내 불리지 않은 자신의 이름에 공허한 하루를 보냈을 것이다.

끝과 시작, 시작과 끝이 교차한 9월 17일. 그렇게 KBO 2026 신인드래프트날이 지나갔다.

벌써 1년이라는 소리가 절로 나오는 요즘이다.

남은 경기는 손에 꼽을 정도가 됐고, 아직도 긴장한 모습이 역력한 신인 선수들은 선배가 됐다.

1년 전 이맘때쯤 덕수고 김태형은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했다.

서울 유학을 갔던 광주 출신의 ‘갸린이’가 응원하던 팀의 1라운드 선수로 호명됐으니, 이보다 완벽한 지명은 없었을 것이다.

홈팬들에게 인사를 하기 위해 정장 차림으로 챔피언스필드를 찾은 날 김태형은 “응원하는 선배님들이 많은 팀에 지명을 받아서 좋았다. 너무 떨렸다”라고 웃으면서 “대리석에 내 이름도 넣었다”라며 자랑을 했다.

광주시는 2014년 챔피언스필드 개장을 앞두고 바닥돌에 이름을 새겨넣는 이벤트를 진행했다. 물론 공짜는 아니었다.

김태형은 자신의 이름을 새겨놓은 경기장에서 KIA 유니폼을 입고 공을 던지고 있다.

‘프로야구 선수’라는 꿈을 이룬 김태형은 지난 6월 24일에는 프로 데뷔전이라는 또 다른 꿈의 순간을 보냈다.

1이닝의 짧았던 경험 뒤 그는 프로의 높은 벽을 실감하면서 퓨처스리그에서 고전하기도 했다.

여기에 팀은 ‘디펜딩 챔피언’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한 경기를 이어가면서 김태형의 첫 시즌은 “데뷔했다”는 것에 만족해야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KIA 김태형’이라는 이름을 얻은 지 딱 1년이 되던 날 김태형은 예상치 못한 하루를 보냈다.

9월 11일 롯데와의 경기, 이날 선발 김도현이 팔꿈치가 좋지 않아 1회를 끝으로 일찍 마운드에서 물러났다.

돌발 변수에 김태형이 급히 몸을 풀었다.

그리고 2회를 시작으로 3회, 4회, 5회까지 김태형은 마운드를 지켰다.

3개의 안타를 맞았고 이 중 두 개의 공이 담장을 넘어가면서 2실점은 했지만 김태형은 아쉬움 없는 경기를 했다. 뭔가 생각할 틈도 없이 마운드에 올랐고, 경기를 치렀다.

‘막내’가 4이닝을 버텨줬지만 형들의 부족한 활약에, 경기는 아쉬운 3-4패로 끝났다.

그래도 돌발 상황에서도 김태형이 4이닝을 막아준 덕분에 KIA는 다음날 두산과의 경기를 풀어갈 힘을 얻었다.

그리고 KIA는 김선빈의 프로 첫 끝내기 안타를 앞세워 5-4 승리를 거뒀다.

전날 씩씩하게 공을 던졌던 김태형은 끝내기 승리 현장에서는 그저 신인 선수였다.

끝내기 현장을 직관한 그의 소감은 “물을 못 뿌린 게 아쉽다”였다.

끝내기를 친 선배에게 물을 뿌리지 못한 게 아쉬웠다는 신인 투수.

김태형은 “실제로 여기서 끝내기는 처음 봤다. 소리 많이 질렀다. 목이 살짝 쉰 것 같다. 물을 못 뿌린 게 아쉽기는 한데 기분이 좋았다”라며 웃었다.

2025 신인드래프트에서 KIA의 1라운드 지명을 받으면서 고향팀 유니폼을 입은 김태형. <KIA 타이거즈 제공>

처음 4이닝을 소화해 본 김태형은 다시 또 긴 이닝을 던지면서 자신의 능력을 시험해 볼 기회를 얻었다.

16일 한화와의 경기에 선발로 나온 그는 이미 15승을 챙긴 라이언 와이스와 선발 맞대결을 했다.

결과는 패전투수였지만 김태형에게는 자신감을 더하고, 발전 방향도 확인할 수 있는 소중한 경기가 됐다.

이날 김태형은 70개의 공으로 4이닝 4피안타 2사사구 1실점을 기록했다. 선배들의 수비 도움도 받았지만, 아쉬운 수비에 실점을 남겼다.

44개의 직구를 던진 김태형은 최고 152㎞, 평균 147㎞를 찍으면서 힘을 보여줬다.

앞선 롯데전에도 첫 이닝에 11개의 직구로만 승부를 했던 그는 “첫 이닝에 직구만 던졌는데 ‘나도 직구로만 1이닝 끝낼 수 있네’라는 생각이 들어서 좋았다. 자신이 생긴 것 같다”며 “태군 선배님 리드 믿고 던지다 보니까 이닝이 금방금방 가서 4이닝까지 던질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냥 가운데만 보고 던졌다. 범타도 되고, 점수도 줬지만 내 공이 좋다고 느껴져서 자신 있게 던졌다”고 이야기를 했었다.

16일 한화전에도 프로에서 통하는 직구를 선보인 김태형은 “자기 전에 이미지 트레이닝도 하니까 잠이 잘 안 왔다. 막상 경기 들어가니까 긴장도 덜 되고 자신 있게 던졌더니 아쉬운 타구도 있었지만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며 “투구수가 아니었다면 더 던질 수 있었을 것 같다”고 언급했다.

모든 게 계획대로만 되는 것은 아니다.

직구에 힘과 스피드가 붙으니까, 변화구 고민이 드러났다.

김태형은 “시즌 하면서 변화구 괜찮았는데 직구가 빨라지고 올라오면서 컨트롤하기 어려워졌다”며 “제구도 되면서 타자들 쉽게 승부할 수 있도록 변화구 연습해야 할 것 같다. 타이밍 뺏기도 하고 커브가 그래도 괜찮다. 슬라이더는 원래 많이 던졌던 구종이라 집중해서 잘 던져야 한다. 포크볼도 더 연습하겠다”고 이야기했다.

비록 두 경기였지만 좌충우돌 정신없던 루키의 성장세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김태형은 입단과 함께 많은 기대를 받은 선수였다.

마무리캠프에서 ‘신인답지 않은’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남다른 피지컬에 자신감 있는 피칭에 김태형은 박수를 받았다.

그리고 김태형은 신인 선수 중 유일하게 스프링캠프 명단에 이름을 올리면서 ‘우승 멤버’들과 비즈니스석을 타고 프로 첫 스프링캠프를 떠나기도 했다.

‘신인답지 않은’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지만 신인은 어찌 됐든 신인이다. 모르는 게 많고, 배우고 익혀야 할 것도 많고, 힘도 키워야 하고, 막내로서 역할도 해야 했다.

또 KIA 마운드에 어린 투수들이 많지만 김태형에게는 모두 선배들이었다. 동기 하나 없이 김태형은 혼돈의 캠프를 보냈다.

그리고 진짜 무대에서 김태형은 다시 한번 혼돈과 고뇌의 시간을 보냈다. 지난 늦봄 김태형이 평가한 프로 첫 시즌은 ‘충격’이었다.

김태형은 “야구하면서 이렇게 점수를 많이 준 게 처음이라서 충격을 많이 받고 힘들었다. 고등학교 때 헛스윙 나오던 공인데 조금만 잘 못 들어가면 장타가 나온다. 타자들이 안 속으니까 볼넷도 많이 나온다”고 냉정한 현실을 이야기했다.

아마추어 시절과는 다른 충격적인 성적에 고뇌의 시간을 보냈던 김태형에게 이호민 등 동기는 큰 힘이 됐다. /김여울 기자

그나마 위안은 동기들이었다.

김태형은 “신인들 다 마운드 올라가면 털리고, 고생해서 비슷한 마음이다. 서로 어떻게 해야할 지 생각하고 공감하면서 안 좋았던 것을 풀기도 한다. 충격은 받았지만 나아지고 성장하는 단계라 생각하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언급했었다.

그동안 경험해 보지 못했던 프로의 매운맛을 보면서 칼을 갈았던 김태형은 한 단계 성장해 벌써 ‘선배’가 됐다.

1년 전 가슴 졸이면 앉아 있던 드래프트 현장을 TV로 지켜본 김태형은 “처음 생기는 후배라서 신기하고 설렌다”라고 웃었다.

그는 “1년 전에는 (학교에서) 제일 위 나이라 편하게 했던 것 같은데, 프로에서는 눈치도 보고, 위축된 것도 있는 것 같다. 고등학교 때 잘하고 왔는데 프로 와서 부진했다. 지면 힘들기도 하지만 프로라서 재미있기도 하고, 팬들도 많이 알아봐 주셔서 프로가 됐다는 게 실감난다”며 “아는 후배들 몇 명 뽑혀서 반갑다. 오면 잘 챙겨주고, 내가 했던 실수 안 하게 잘 가르칠 것 같다. 처음 프로 오면 다 몰라서 생각 없이 행동한다. 그러면 안 되니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알려주고 싶다”고 선배의 역할을 다짐했다.

사회생활을 막 시작했을 때를 생각해 보면 김태형의 마음이 이해될 것이다.

“세상아 덤벼라”는 자세로 의기양양하게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는데 일은 마음처럼 안 되고, 한없이 부족한 것만 보이고, 선배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천국과 지옥을 오갔다.

지금 돌아보면 너무나 황당한 실수도 하고, 사고를 치기도 했다.

나 하나 간수하기도 힘든 데 후배가 들어온다고 했을 때는 겁도 났다.

여전히 부족하고, 모르는 것은 많은데 들통이 나면 안 된다는 생각에 더 노력도 했고, 괜찮은 척도 했던 것 같다.

그런 과정과 시간을 거쳐 책임감도 늘고 경험도 쌓이면서 선배가 됐다.

물론 선배라고 해서 완벽하지는 않다. 여전히 실수도 하고, 부족한 것도 많다. 무섭게 성장하는 후배들을 보면서 긴장도 한다.

무대는 다르지만, 우리는 비슷한 모습으로 선배가 된다.

그렇게 김태형이 선배가 됐다.

<광주일보 김여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