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뉴스 현상을 언론만의 문제라고 여길 때 [미디어 리터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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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뉴스에 대한 언급이 최근 부쩍 빈번해지고 있다.
일단 가짜'뉴스'라는 용어 때문에 가짜뉴스의 문제는 뉴스 또는 언론의 문제라고 한정해 생각할 수 있다.
최근 정부가 가짜뉴스 피해 신고∙상담센터를 언론 지원, 연구 및 미디어 교육을 주 업무로 하는 언론진흥재단에 개소한 것도 '가짜뉴스=언론의 문제'라는 인식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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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뉴스에 대한 언급이 최근 부쩍 빈번해지고 있다. 그 심각성을 생각하면 정부가 연일 가짜뉴스 퇴치를 강조하며 관심 가지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챗지피티와 같은 생성형 AI가 광범위하게 사용되면서 가짜뉴스에 대한 우려는 더욱 커지고 있는데, 해외에서는 이미 몇 년 전부터 생성형 AI에 의존해 가짜뉴스를 대량 생산하는 사이트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이를 흔히 핑크슬라임(pink slime) 사이트라고 부른다. 본래 소고기 부산물과 화학물질을 섞어 만든 저질의 고기를 뜻하던 핑크슬라임이라는 용어는 제대로 된 취재 과정 없이 정치적으로 편향된 질 나쁜 가짜뉴스를 대량 생산해 전파하는 사이트를 칭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 예를 들어 2019년 창립된 메트릭미디어(Metric Media)라는 미국 미디어 기업이 운영하는 핑크슬라임 사이트는 지난해 말 기준 1000개가 넘는 것으로 파악된다.
미디어 학자인 베넷과 리빙스톤은 가짜뉴스의 확산이 정상민주주의 붕괴의 신호일 수 있다는 점에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했다. 가짜뉴스를 조직적으로 생산·확산하는 주체들이 주로 취하는 전략은 기성 언론을 공격해 신뢰를 떨어뜨리고, 시민들을 기성 언론 대신 왜곡된 정보를 제공하는 대안적 정보원에 의존하게 해 프로파간다에 취약하게 만들며, 그 결과 민주주의 기구 전체가 합법성을 잃게 하는 것이다. 그 결과는 민주주의의 위기다.
하지만 최근 가짜뉴스 관련 논의를 지켜보면 과연 가짜뉴스의 진짜 해악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에 바탕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 때가 있다. 대부분의 가짜뉴스 대책은 언론에 대한 비판과 규제 논의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는 용어 문제일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일단 가짜‘뉴스’라는 용어 때문에 가짜뉴스의 문제는 뉴스 또는 언론의 문제라고 한정해 생각할 수 있다. 또한 많은 정치인들은 자신들을 감시·비판하는 언론을 공격하는 데 가짜뉴스라는 용어를 애용해왔다. 그렇기 때문에 이미 오염된 용어인 가짜뉴스는 문제의 핵심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가짜뉴스 유포 세력이 진짜 바라는 것
최근 정부가 가짜뉴스 피해 신고∙상담센터를 언론 지원, 연구 및 미디어 교육을 주 업무로 하는 언론진흥재단에 개소한 것도 ‘가짜뉴스=언론의 문제’라는 인식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 말을 하는 것은 허위 정보 또는 가짜뉴스 확산과 관련해 언론의 잘못이나 책임이 없어서가 아니다. 언론은 정확하고 편향되지 않은 정보를 제공해야 할 규범적 의무가 있다. 더불어 허위 정보를 생산하거나 또는 다른 곳에서 생산한 허위 정보를 무턱대고 확산하기보다는 이를 거르고 검증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물론 언론이 그간 이 역할에 매우 충실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다만 가짜뉴스는 언론이 잘하지 못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생겨나는 것도 아니며, 언론이 잘해야 하지만 언론만 잘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 더 중요한 사실은, 입맛에 맞지 않는 보도를 하는 언론만이 가짜뉴스인 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언론을 콕 집어 가짜뉴스의 원흉으로 삼고 비판을 집중하는 동안, 최첨단 기술을 이용해 국내외 조직적 프로파간다 세력이 여론을 조작할 가능성, 언론에 대한 불신이 입법·사법·행정 등 전반적인 민주주의 기구에 대한 불신으로 확산해 민주주의 전체가 위기를 맞을 가능성 등 가짜뉴스가 가져올 수 있는 더 심대한 해악의 징후를 놓칠 수도 있다. 언론을 적으로 삼는 것은 정상민주주의의 붕괴를 궁극적 목적으로 하는 가짜뉴스 유포 세력이 주로 취하는 전략이기도 하다는 점 역시 기억할 필요가 있다.
최지향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교수)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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