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는 나의 것] 그녀의 도전에 우리가 열광하는 이유
[미디어오늘 김윤정 칼럼니스트]
태극마크를 달고 '2022 국제실용사격연맹(IPSC) 핸드건 월드슛 대회'에 출전했던 코미디언 김민경이 대회를 마무리했다. 결과는 총점 663점으로 345명 중 106등. 여성부 기준 52명 중 19등을 기록했다. 사격을 접한 지 1년 만에 태극마크를 달더니, 처음 나간 세계 대회에서 의미 있는 성적을 거둔 것이다.
실용사격은 야외에서 코스에 맞춰 이동하며 표적 명중시키는 것으로, 소위 '올림픽 사격'과는 다르다. 오히려 '전투사격', '실전 사격'에 가까운데, 때문에 IPSC 대회에는 전·현직 특수부대원도 자주 출전한다고 한다. <오늘부터 운동뚱>에서 여러 스포츠 종목에 도전하며 남다른 습득 능력을 보여주고, 특히 격투기, 권투, 사격 등에서 놀라운 성장세를 보여 '기억을 잃은 특수요원', '불백 위도우'라는 별명까지 얻은 김민경에게 꼭 어울리는 대회다.
김민경이 사격에 남다른 재능을 발견하고 태극마크를 달기까지의 과정은 우연, 혹은 운명이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는 서사다. 지난 2020년, <맛있는 녀석들> 제작진은 5주년을 맞아 시청자들에게 '뚱4(김민경, 김준현, 유민상, 문세윤)'에게 바라는 점을 조사했는데, '운동해서 더 건강하게 먹자'는 요청이 1위에 뽑힌 것이다. 제작진은 이를 받아들여 스핀오프 웹 예능인 <시켜서 한다! 오늘부터 운동뚱>을 준비했고, 첫 주자를 기자회견 현장에서 복불복 게임으로 뽑았다. 테이블에 놓인 아령을 들어 들리지 않는 사람이 '운동뚱'이 되는 게임이었는데, 당시 김민경은 책상에 고정된 아령이 들리지 않자 책상에 박힌 채로 아령을 들어 올리며 온몸으로 운동을 거부했었다.
하지만 김민경의 의사와 관계없이, <운동뚱>을 통해 발견한 김민경의 운동신경은 그야말로 남달랐다. 처음 도전한 헬스에서는 엄청난 무게의 웨이트를 힘든 기색 하나 없이 해냈고, 권투에서는 가르쳐준 동작 하나하나를 있는 그대로 습득했다. 격투기를 가르치던 김동현은 '이제라도 선수로 키우고 싶다'며 감탄했다.
운동하는 김민경의 모습은 그 자체로 시사하는 바가 컸다. '살찐 사람은 둔할 거야'라는 선입견은 김민경의 놀라운 신체 능력 앞에서 완벽하게 깨졌다. “날씬한 사람만 할 수 있냐. 나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왔다”며 도전한 필라테스에서는 복근과 근육을 자유롭게 활용하며 처음 배우는 동작도 정확하게 해냈다. 김민경 도전이 거듭될수록, 여성의 운동을 그저 '예쁜 몸매 만들기'의 일환으로만 여기던 편견은 희미해졌다.
여기에 불혹의 나이에, 평생 생각해본 적 없던 분야에 남다른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우연히 발견하고, 국가대표라는 한 분야의 정점에까지 오르는 모습은 놀라움을 넘어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어디에 재능이 있는지, 무엇에 흥미가 있는지 차분히 고민하고 들여다볼 여유도 없이 내몰린 입시 전쟁. 그저 점수에 맞춰 선택한 전공과 거기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인생을 사는 이들이 어디 한둘이던가. 코미디언이 되기 위해 20살에 대구에서 상경한 김민경은 비교적 이른 나이에 자신의 재능과 적성을 잘 찾아 꿈을 이룬 사람이다. 하지만 운동뚱의 주인공이 되지 않았더라면, 운동에 놀라운 재능을 가지고 있었는지 평생 모르고 살았을 것이다.
어쩌면 김민경처럼, 나에게도 숨은 재능이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 그 재능이 언제 어떻게 우연한 계기로 발견될지 모른다는 기대. 그때가 언제든 나이라는 장벽은 숫자에 불과한 시대가 됐다는 믿음. 김민경의 도전과 성취가 준 가르침이다. 적지 않은 나이에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겠다고 하면 망설임부터 들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누군가의 예외적인 삶은 그 자체로 누군가에게 큰 울림과 용기를 준다. 앞으로 김민경이 사격 선수로 도전을 이어가든, 온전히 '희극인 김민경'에 집중하든, 김민경의 도전이 우리 사회에 불어넣은 긍정적인 에너지는 그대로 남아 여러 나비효과를 일으킬 것이다. 국제대회 성적보다 주목해야 할, 김민경의 진정한 성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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