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영의 사회심리학] '셀프 도덕적 판단'의 위험성

박진영 심리학 칼럼니스트 2024. 10. 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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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요즘 심리학계에서 뜨거운 이슈라면 어떤 이슈에 '도덕/비도덕적'이라는 프레임을 씌우는 현상이 그 중 하나다.

예를 들어 성소수자 인권, 임신중절 같은 사실은 그냥 내가 낯설고 싫기 때문에 반대하는 이슈에 대해 성소수자 인권을 챙기기 시작하고, 임신중절을 허용하면 아이들이 동성애자가 되고, 여성들이 임신중절을 마구 하게 되면서 나라와 사회가 무너지기 때문에 반대한다고 주장하는 식이다. 

한편 이렇게 환경이 사람의 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과하게 인지하면서 동시에 '총기' 같은 무서운 물건이 아무 제약 없이 돌아다니는 데에 찬성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물론 무엇이 도덕적이고 무엇이 비도덕적인지에 대한 기준은 시대가 변함에 따라서도 변한다. 예를 들어 과거에는 개인의 취향일 뿐 도덕/비도덕의 영역에 들어가지 않았던 것들(예를 들어 흡연, 채식)이 현재에 와서는 비도덕적이거나 도덕적이라는 도덕 판단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도덕화 현상의 핵심은 시대와 지식 수준이 변하면서 자연스럽게 도덕법칙이 바뀌는 현상과 달리 자신의 주장을 더 돋보이게 하기 위해 자신이 (또는 내집단이) 반대하는 무언가에 대해 '비도덕적'이라는 프레임을 열심히 씌우는 행위다. 

조슈아 리 멜버른대의 심리학자 등에 의하면 어떤 이슈의 도덕화는 크게 두 가지 프로세스를 거쳐 나타난다. 

하나는 감정, 특히 역겨움과 같은 강한 부적 감정을 자극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해로움을 강조하는 것이다. 육식이나 임신중절에 대해 이야기 할 때 자극적이고 잔인한 사진을 보여주는 것이 한 가지 예다. 앞서 이야기한대로 다양한 이슈에서 XX를 허용하면 학교와 가정이 무너지고 나아가 나라와 사회가 무너진다며 해로움을 강조하는 것도 흔히 나타난다. 

연구 결과 이렇게 역겨움과 해로움을 강조하는 이야기를 들은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해당 이슈를 더 도덕 판단의 이슈로 여기는 모습을 보였다. 이렇게 이전에 별 생각 없던 이슈가 도덕의 옷을 입으면 '사실'보다 더 강한 설득력을 보이는 현상도 나타났다.

 
또한 도덕과 전혀 상관 없는 '자주', '시도하다' 같은 단어들에 역겨운 감정을 연결시키고 그 단어를 사용해서 어떤 인물의 행동을 묘사하면 그렇지 않았을 때에 비해 더 해당 인물을 비도덕적으로 여기게 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었다. 도덕판단의 대상이나 내용은 철저하게 이성의 영역이어야 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감정에 의해 크게 좌우된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전쟁이나 학살이 일어나는 현장에서도 상대편을 '바퀴벌레' 라고 칭하는 등 비인간화 뿐 아니라 상대를 더럽고 해로운 존재로 프레이밍 하는 (비)도덕화 현상 또한 흔히 관찰할 수 있다. 또한 과거에 노예제 폐지에 관한 이야기가 오갈 때도 노예제를 폐지하면 미개해서 도덕적 행동을 할 능력이 없는 유색인종들이 득세해서 백인 여성들을 강간할 것이고 그래서 가정이 무너지고 나아가 나라와 사회가 무너질 것이라고 잔뜩 겁을 줬던 역사가 있다. 

근래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코로나19) 팬데믹이 한창이던 시절 마스크 쓰기를 권장하면 신체의 자유가 침해되고 마스크가 호흡곤란(?)을 유발하는 등의 이유로 마스크 쓰기를 권장하는 것은 비도덕적이라고 이야기하던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 중 다수가 마스크를 쓰지 않아서 병을 전파함으로써 노약자의 사망을 야기하는 것보다도 마스크 쓰기를 권하는 행동이 더 비도덕적이라고 진지하게 믿었다고 한다. 

비슷하게 자동차 안전벨트를 법제화 할 때에도 안전벨트를 착용하게 하는 것은 자동차 사고로 다수가 사망하게 두는 것보다 비도덕적이라는 주장이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인간은 무엇이든지 도덕판단의 대상으로 만들어 버리는 재주가 있기 때문에 서로 다른 정치성향을 가진 사람들 모두가 자신(우리 편)은 상대방보다 훨씬 더 도덕적이고 정의롭다고 믿는 편이라는 발견이 있었다. 미국의 경우 2021년 선거 결과에 불복하며 국회의사당을 점거한 사람들 또한 자신들이야 말로 정의의 편이라는 강한 신념을 보였다고 한다. 

한 가지 확실한 게 있다면 우리가 나 자신이나 타인에 대해 내리는 도덕판단은 자주 우리의 '감정'과 '동기'에 의해 영향을 받으며 꽤나 허술한 편이라는 것이겠다. 누군가를 조각조각 비판하기 전에 나의 행동 또한 세세히 따져본다면 조금이나마 오류를 줄일 수 있을까.

Rhee, J. J., Schein, C., & Bastian, B. (2019). The what, how, and why of moralization: A review of current definitions, methods, and evidence in moralization research. Social and Personality Psychology Compass, 13(12), e12511.
 

※필자소개

박진영.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를 썼다.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도록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와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지뇽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미국 듀크대에서 사회심리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박진영 심리학 칼럼니스트 parkjy021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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