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가 국내에 수입되지 않은 이유는? [듀나의 영화로운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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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영화 데뷔작부터 꾸준히 전 작품이 국내에 소개된 영화감독이 있다.
이 영화를 국내에서 정식으로 볼 수 있었던 경로는 단 두 개인데, 하나는 지난해 여성영화제에서였고 다른 하나는 얼마 전 영상자료원에서 열린 '와이더 시네마(Wider Cinema)' 시리즈에서였다.
그러니까 이 영화의 가장 큰 덩어리는 여자들이 생각하고 그 생각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이다.
그러는 동안에도 여전히 진지한 기독교 영화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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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세라 폴리
출연: 루니 마라, 클레어 포이, 프랜시스 맥도먼드
장편영화 데뷔작부터 꾸준히 전 작품이 국내에 소개된 영화감독이 있다. 그 감독의 최신작은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에 올랐으며 감독 자신이 쓴 각본은 각색상을 받았다. 루니 마라, 클레어 포이, 제시 버클리, 프랜시스 맥도먼드, 벤 위쇼 등등 캐스팅도 쟁쟁하기 짝이 없다. 이 정도면 당연히 국내로 영화가 수입될 것이라고 기대하게 된다. 하지만 그 영화는 지금까지 개봉되지 않았고 OTT나 VOD로도 풀리지 않았다. 수입 자체가 안 된 것이다.
이 영화는 세라 폴리의 〈위민 토킹〉이다. 이 영화를 국내에서 정식으로 볼 수 있었던 경로는 단 두 개인데, 하나는 지난해 여성영화제에서였고 다른 하나는 얼마 전 영상자료원에서 열린 ‘와이더 시네마(Wider Cinema)’ 시리즈에서였다. 두 번째 상영의 선정 이유가 얼마나 비정치적인지를 보라. 이 영화의 화면비는 2.76:1로, 선정된 일차적 이유는 순전히 옆으로 긴 영화였기 때문이다.
〈위민 토킹〉은 국내에도 번역된 미리엄 테이브스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그리고 이 책은 실화에 기반을 두고 있다. 볼리비아의 메노파 집단 공동체 남자들이 여자와 아이들을 성폭행한 사건이다. 범죄자들은 범행에 수의사용 마취제를 사용했다. 영화는 그 사건 자체를 다루지는 않는다. 대신 북미에 있는 가상의 메노파 공동체로 무대를 옮겨 비슷한 사건이 벌어지게 한다. 그리고 남자들이 마을을 잠시 떠나 있는 동안 여자들로 하여금 토론을 하게 한다. 그대로 모른 척하고 살 것인가. 남자들에게 맞설 것인가. 공동체를 떠날 것인가.
그러니까 이 영화의 가장 큰 덩어리는 여자들이 생각하고 그 생각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이다. 보통 시네마스코프 비율(2.35:1)보다 더 긴 영화의 가로 화면비는 이 내용과 연결된다. 어떻게든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을 최대한 많이, 동등하게 보여주어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주인공인 메노파 여성들은 거의 교육을 받지 못해서 심지어 글도 읽을 수 없다. 그때까지 자기들의 삶이 맞닥뜨린 조건을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남성 권력의 존재에 의심을 제기하며 세계관을 다시 정립한다. 교육을 받지 못했다고 해서 그들이 어리석거나 생각이 단순하진 않았다. 지금까지 느낄 수밖에 없었던 폭력과 억압에 대한 불만이 이번 사건을 계기로 논리를 갖추어 터져 나오는 것이다. 그러는 동안에도 여전히 진지한 기독교 영화이기도 하다. 이 영화 속 주인공들은 기독교적 세계관 속에 있다.
아직도 이 영화가 수입되어 소개되지 않는 일은 당황스럽고 기이하다. 이유들을 짐작해본다. 가장 큰 이유는 아마 비겁함일 것이다. 이 영화가 다루고 있는 주제와 내고 있는 목소리는,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장 논쟁적인 사건들과 겹친다. 사람들이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보고 함께 토론할 수 없다는 게 아쉬울 뿐이다.
※이번 호로 ‘듀나의 영화로운 세계’ 연재를 마칩니다. 수고해주신 필자와 애독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듀나 (영화평론가·SF 소설가)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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