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의 기적” 베트남 MZ들은 어떻게 얼어붙은 농가에 생기를 불어넣을까?.. “제주, 겨울 밭 일구러 왔어요”

제주방송 김지훈 2024. 9. 29.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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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계절근로자 프로그램 확대 운영
위미 40명→고산·대정 등 110명 늘어
농가 인력난 해소 등 대안.. “과제도”
안정적 정착 도울 문화 이해·교육 필요
최저고용일 보장, 인력 활용처 등 고민
베트남 남딘성에서 입국한 계절근로자 30명이 본격적인 농작업 투입에 앞서 27일 현장 기초교육을 받기 위해 양배추밭을 찾았다. (고산농협 제공)


쨍쨍하게 내리쬐던 햇볕은 오간데 없고 어느새 초가을로 접어든 9월 끝자락. 제법 쌀쌀해진 아침 바람을 헤집고 삼삼오오 양배추밭을 향하는 발길이 부산합니다.

제주고산농협이 선발한 베트남 남딘성 출신의 계절근로자 30명이 밭 한쪽에 몰려 귀를 쫑긋 세웠습니다.

밭보다는 논이 익숙한 이들로선 다소 생소한 흙을 만지작거리면서, 막바지 양배추 모종 정식 마무리 단계에 일손을 보태고 나섰습니다.

한 귀로 설명을 듣고 현장 작업반을 따라 한 손에는 양배추 모종을, 다른 한 손으로 흙을 덮고 다지느라 경황이 없습니다.

저마다 웃고 있지만, 서툰 한국어로 다시 질문하거나 몸짓을 섞어 확인 또 확인하고 모종을 집어 드는 모습에선, 제주 농업에 뿌리를 내리겠다는 굳은 각오마저 배어납니다.
단순한 노동력을 넘어서, 제주 농업의 희망과 미래를 함께 만들어가려는 이들로서 농가나 농정 당국이 거는 기대감이 커지는 이유를 알 법도 합니다.

제주고산농협과 계약한 외국인 근로자들은 대부분 30대 중후반으로, 내년 봄까지 이어지는 월동채소 수확기 동안 5개월간 농가 지원에 나설 예정이다. (고산농협 제공)



■ 호평 받은 공공형 계절근로자.. 확산되는 운영, 기대 효과

지난해 제주위미농협에서 처음 도입한 외국인 계절근로자 프로그램이 큰 호응을 얻으면서 올해 고산농협과 대정농협까지 확대 운영되고 있습니다. 고산농협은 이번에 베트남 근로자 30명을 선발했고, 이들의 도움으로 겨울 채소 수확기 동안 농가의 일손 부족 문제 해소에 나설 계획입니다.

우선 10월부터 고산지역에 머물면서 일손이 부족한 농가에서 5개월간 근로 활동을 이어갑니다. E-8(계절근로) 비자의 체류기간 3개월 연장제도를 활용해 최장 8개월까지 일할 수 있습니다.

고영찬 고산농협 조합장은 “제주 농업의 인력난 해소와 인건비 상승 억제에 기여하기 위해 계절근로자 사업을 지속적으로 확대할 것”이라며 앞으로 사업 추진에 기대감을 드러냈습니다.

고산에 이어 10월 29일 위미농협 50명(여 30, 남 20), 11월 27일 대정농협 30명(여 20, 남 10) 등 모두 110명이 입국해, 5개월간 일손을 필요로 하는 농가에 지원할 예정입니다.

외국인 계절근로자들은 월 207만 원 이상의 임금을 받을 예정입니다. 시세보다 1~2만 원 낮게 책정된 인건비 덕분에 농가 부담을 줄이는 데도 큰 기여를 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농가에선 “지난해보다는 훨씬 원활하게 농사를 지을 수 있을 것 같다”라고 운영 주체인 농협과 베트남 근로자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습니다.

베트남에서 입국해 제주고산농협과 계약한 공공형 외국인 계절근로자 30명이, 27일 농작업 기초교육을 받고 양배추 모종을 심고 있다. (고산농협 제공)


■ 안정적인 정착 위한 교육·지원.. ‘공동 숙소’, 고충 상담도

베트남 계절근로자들의 안정적인 정착을 위해 고산농협은 농작업 기초교육, 산업안전보건교육, 한국 문화 이해 교육 등 철저한 프로그램 진행에 만전을 기하고 있습니다.

이런 교육들이 근로자들의 빠른 현장 적응과 농업 작업의 효율성을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나아가 고용주와의 원활한 소통을 도울 수 있는 밑바탕이 될 것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고산농협 측은 “우리나라의 생활 문화를 이해하고 법규를 숙지하는 것은 근로자들이 현장에서 성공적으로 자리 잡는 데 필수적”이라면서 “이런 작은 배려와 지원들이 근로자들에게 자신감을 불어넣고, 농가와의 신뢰를 쌓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또한 고산농협은 근로자들의 안정된 정착을 위해 공동 숙소 제공은 물론, 수시로 고충 상담부터 문화 체험 지원을 실시할 계획입니다.

근로자들은 협소한 개인 숙소 대신 공동생활을 통해 서로 돕고 의지하며 생활하고 있고 이는 특히 소규모 농가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날씨 등 기상 상태로 인해 작업이 중단될 때에는 대체 작업 제공 등을 고민해, 근로자들의 일자리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방안도 마련할 예정입니다.

제주고산농협은 27일 환영식을 갖고 베트남 계절근로자들의 성공적인 제주 적응과 영농 지원을 기원했다. 고산농협은 공동숙소 생활 관리와 함께 수시로 고충 상담과 문화 체험활동도 지원할 계획이다. (고산농협 제공)



■ 확대된 계절근로자 사업.. “법적·제도적 고민 여전”

외국인 계절근로자들에게 지급되는 임금은 209시간 근무 기준, 월 207만 원 이상으로 책정됐습니다. 근로 시간은 주당 8시간씩 5일이 원칙입니다. 추가 근로 때에는 법적으로 정해진 초과근무 수당을 지급해야 합니다

또 농협은 숙소 제공 때 최대 월 통상임금의 20%를 초과하지 않는 범위에서 공제하고 있습니다. 고산농협은 이를 13%로 책정해 근로자들이 조금 더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했습니다.

하지만 프로그램의 성공적인 정착을 위해선 해결해야 할 법적·제도적 과제도 적잖은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특히 내년부터 당장 최저임금 상승이 적용되고, 여기에 고용 보장 규정이 농협과 농가에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농가는 계절근로자의 체류 기간 최소 75%를 고용해야 한다는 규정을 지켜야 하는데, 이는 날씨에 따라 작업이 불규칙해지는 농업의 특성과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현재 계절근로자는 농협 직원으로 고용돼 있지만 농작업 외에 투입될 수 없어, 날씨에 따라 유휴 인력이 발생할 경우 그 부담은 고스란히 농협에 돌아가는 실정입니다.

때문에 일선 전문가들은 “근로 시간의 유연성을 높여 농업 특성에 맞는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하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베트남에서 입국해 제주고산농협과 계약한 공공형 외국인 계절근로자 30명이, 27일 농작업 기초교육을 받고 양배추 모종을 심고 있다. (고산농협 제공)



■ 제도 보완 필요성도.. 만족도는 높아 “위미 4명 재참여”

또 근로자들의 무단이탈 방지와 안전한 체류 보장을 위한 제도적 보완도 요구됩니다. 현재 규정에 따르면 무단이탈이 발생할 경우 15일 이내에 출입국 관리사무소와 지자체에 신고해야 하고, 이를 지키지 않을 경우 200만 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됩니다.

이런 규정들은 근로자들의 체류 안정성을 확보하고 농가의 책임을 명확히 하는 중요한 장치라고는 하지만 사실상 이를 관리할 책임 소재 자체가 농협이나 농가로 주어지면서 보다 체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습니다.

27일 첫 현장교육에 참가한 도 티 마이(베트남 남딘성)씨는 “이렇게 좋은 조건으로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분들께 감사드린다”라며 “정말 많은 생각을 안고 (제주에) 왔다. 작업할 곳이 제주라 사실 기대가 더 크다”라고 소감을 밝혔습니다.

이어 “5개월 동안 건강하게 일을 잘해서 돈을 벌고, 더불어 이곳 농가들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된다면 좋겠다”라고 바람을 전했습니다.

특히 급여가 주는 매력이 큰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베트남에서 월평균 50만 원에서 80만 원을 벌던 그들이 제주에서 받게 될 임금은 200만 원 이상(4,000만 동)으로, 최대 4배까지 차이가 납니다. 고산농협에 참여하는 근로자들은 남성 10명, 여성 20명으로 현지에서 10대 1 경쟁률을 뚫고 선정됐고 대부분 30대 중후반의 젊은 기혼자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위미농협의 경우, 지난해 일하고 계약종료 후 귀국했던 계절근로자 4명이 재참가한 것으로 확인될 정도로, 근로 만족도나 현지 호응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지난해 12월 서귀포시 한 감귤밭에서 베트남 공공근로 참가자가 수확한 감귤을 컨테이너에 채우고 있는 모습. (제주농협 제공)


■ ‘농촌 일꾼’에서 ‘미래 동반자’로.. “제주 농업, 미래를 보다”

올해 두 번째 제주 땅을 밟은 베트남 계절근로자들은 이제 단순히 ‘농촌 일손’ 이상, 제주 농업의 동반자로 자리 잡아가고 있습니다.
이들이 흘린 땀방울이 농작물의 성장을 넘어, 제주 농업의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씨앗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농민들 가슴에 스며들고 있습니다.   

관련해 윤재춘 제주농협 본부장은 “농협은 물론 지자체 차원에서 외국인 근로자들이 안정적으로 정착하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법적·제도적 개선에 더 힘써야 한다”라면서 “고용주와 근로자 간의 신뢰를 기반으로 한 협력 관계가 더욱 강화될 때, 이 프로그램이 단순한 인력 충원이 아니라, 제주 농업의 새로운 시대를 여는 중요한 열쇠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앞서 제주자치도와 베트남 남딘성 정부는 작년 3월 계절근로자 수급에 관한 업무협약을 체결했으며, 양측은 협약을 통해 계절근로자의 선발, 송출, 출입국 업무를 전반적으로 지원하기로 약속했습니다.

‘계절근로자’제는 일손 부족 해소를 위해 외국인 근로자가 단기 취업비자를 받고 주로 지방의 농어촌에서 단기간 일한 후 다시 자국으로 되돌아가는 제도입니다. 이런 제도는 일손 부족 현상이 심각한 농촌 지역 등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외국인 근로자에게는 고용 기회를 제공해 경제적 이점을 더하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한국무역협회 호치민지부에 따르면, 베트남은 일본과 대만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많은 노동 인력을 대한민국에 파견하는 국가로 나타났습니다. 
2022년 한 해 동안 파견 인력이 9,900여 명이었던 게, 지난해 1만 1,000여 명으로 그 수가 크게 늘었습니다. 이는 한국의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 수준과 더불어 매년 인상되는 최저임금 그리고 외국인 근로자 유치를 위한 입국 제한 완화, 직업군 확대 등 정부의 다양한 정책이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10월 서귀포시와 제주위미농협이 베트남 남딘성에서 진행한 ‘외국인 공공형 계절근로자’ 선발 면접에서 한 현지 참가자가 감귤박스를 들어올리고 있다. (서귀포시 제공)

JIBS 제주방송 김지훈(jhkim@jibs.co.kr)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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