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즙을 움켜쥐듯 머금은 생갈비, 그 단단한 위안[김도언의 너희가 노포를 아느냐]

김도언 소설가 2024. 10. 10.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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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 이황 선생과 서애 유성룡 선생의 뚜렷한 자취가 있는 경북 안동은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라는, 내심 시민들이 자부하는 별칭을 갖고 있는 도시인 동시에 지리적으로는 전형적인 내륙 분지다.

이런 종합적인 조건에 기인해 구 안동역, 그러니까 안동의 구도심 앞 상가 지구에는 '한우갈비골목'이 형성되어 있다.

50년을 헤아린다는 원조 '안동한우갈비'가 그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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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안동 ‘원조 안동한우갈비’의 생갈비(왼쪽 사진)와 갈비찜. 김도언 소설가 제공
퇴계 이황 선생과 서애 유성룡 선생의 뚜렷한 자취가 있는 경북 안동은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라는, 내심 시민들이 자부하는 별칭을 갖고 있는 도시인 동시에 지리적으로는 전형적인 내륙 분지다. ‘안동 분지’라고 하여 지리교과서에서 분지 지형을 설명할 때 언급될 정도.
김도언 소설가
그런데 이 같은 자연 조건으로 산물이 보잘것없어 보이는 이 도시가 한우 갈비와 자반고등어, 찜닭으로 전국적으로 ‘유명짜한’ 이름을 얻고 있다는 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다 소이연이 있을 테지만 우선 여기서는 한우 갈비만을 이야기하도록 하자.

안동이 숯불에 구워 먹는 한우 갈비로 이름을 낸 건 당연히 필연적인 사정이 있다. 안동 지역은 오래전부터 농경이 흥해서 농가에서 소를 많이 키운 데다가 관내에 이들을 처리할 꽤나 유서 깊은 도축장이 있었다. 이 도축장은 올해 4월 현대식 ‘안동농축산물공판장’으로 탈바꿈해 도축뿐 아니라 경매장과 가공장까지 갖춘 대규모 축산물 허브로 자리매김했다. 이곳에서는 일일 한우 200마리의 도축 및 가공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일단 인간의 섭식을 위해 희생된 한우들 앞에 성호를 긋는다.)

이런 종합적인 조건에 기인해 구 안동역, 그러니까 안동의 구도심 앞 상가 지구에는 ‘한우갈비골목’이 형성되어 있다. 이곳엔 못 잡아도 40여 호의 갈빗집들이 성황리에 영업을 하고 있는데 골목 모퉁이를 돌 때마다 갈비 굽는 숯불 향이 기분 좋게 코를 자극한다. 그중 한 곳을 찾았다. 50년을 헤아린다는 원조 ‘안동한우갈비’가 그곳. 60세 즈음의 인상 좋은 사장님과 또래 찬모 두 분이 따뜻한 미소로 손님을 맞는다. 생갈비와 양념갈비 마늘갈비가 이 집의 주메뉴. 예의 안동농축산물공판장에서 가공된 신선한 고기를 주재료로 쓴다. 1인분에 공히 200g의 양이 제공되는데, 3인분을 시키면 갈비찜이 서비스로 주어진다. 숯불에 막 구워진, 지방이 끓으면서 육즙을 움켜쥐듯 머금은 생갈비 한 점과 함께 삼키는 소주 한 잔. 천국이 따로 없다. 안동은 그 순간 정신문화 같은 관념의 수도가 아니라 미각 같은 감각의 수도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사장님 말씀으로는 50년 전 자신과는 무연한 할머니 한 분이 소갈비를 구워서 팔기 시작한 것이 이 집의 시작이란다. 그러다가 2대 사장님이 30년을 운영했고 당신이 가게와 노하우를 인수받아 영업을 한 것은 17년 되었다고. 그러니까 창업자까지 사장님 세 분이 50년을 이어온 것. 보통 50년 정도 된 노포는 가족이 대를 이어서 물려받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 집 경영권이 타인에게 계속 이전된 것은 상당히 예외적이다. 그런데 내 눈엔 오히려 그게 더 쿨해 보인다. 맛을 내는 원칙과 정성을 존중하고 그 정신만 잘 이어간다면 가족을 고집할 이유가 없지 않겠는가.

사장님은 처음 한우갈비골목 일대가 자갈밭이었다고 귀띔한다. 자갈밭에 숯불 화로를 걸쳐 놓고 석쇠에 갈비를 구워 노상을 오고 가는 식객들에게 팔았다는 것이다. 그 식객 중엔 필시 고등어 간잡이도 있었을 것이고 찜닭용 닭을 잡는 사람도 있었을 터. 그 자갈밭은 지금은 시멘트로 잘 도포된 공용주차장이 되어 있다. 자갈이 오랜 시간 서로 부딪쳐 모서리가 깎여 둥근 마음이 되듯 이곳 안동 한우갈비골목 사람들도 어느새 그리 된 듯 보였다.

김도언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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