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즙을 움켜쥐듯 머금은 생갈비, 그 단단한 위안[김도언의 너희가 노포를 아느냐]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퇴계 이황 선생과 서애 유성룡 선생의 뚜렷한 자취가 있는 경북 안동은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라는, 내심 시민들이 자부하는 별칭을 갖고 있는 도시인 동시에 지리적으로는 전형적인 내륙 분지다.
이런 종합적인 조건에 기인해 구 안동역, 그러니까 안동의 구도심 앞 상가 지구에는 '한우갈비골목'이 형성되어 있다.
50년을 헤아린다는 원조 '안동한우갈비'가 그곳.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안동이 숯불에 구워 먹는 한우 갈비로 이름을 낸 건 당연히 필연적인 사정이 있다. 안동 지역은 오래전부터 농경이 흥해서 농가에서 소를 많이 키운 데다가 관내에 이들을 처리할 꽤나 유서 깊은 도축장이 있었다. 이 도축장은 올해 4월 현대식 ‘안동농축산물공판장’으로 탈바꿈해 도축뿐 아니라 경매장과 가공장까지 갖춘 대규모 축산물 허브로 자리매김했다. 이곳에서는 일일 한우 200마리의 도축 및 가공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일단 인간의 섭식을 위해 희생된 한우들 앞에 성호를 긋는다.)
이런 종합적인 조건에 기인해 구 안동역, 그러니까 안동의 구도심 앞 상가 지구에는 ‘한우갈비골목’이 형성되어 있다. 이곳엔 못 잡아도 40여 호의 갈빗집들이 성황리에 영업을 하고 있는데 골목 모퉁이를 돌 때마다 갈비 굽는 숯불 향이 기분 좋게 코를 자극한다. 그중 한 곳을 찾았다. 50년을 헤아린다는 원조 ‘안동한우갈비’가 그곳. 60세 즈음의 인상 좋은 사장님과 또래 찬모 두 분이 따뜻한 미소로 손님을 맞는다. 생갈비와 양념갈비 마늘갈비가 이 집의 주메뉴. 예의 안동농축산물공판장에서 가공된 신선한 고기를 주재료로 쓴다. 1인분에 공히 200g의 양이 제공되는데, 3인분을 시키면 갈비찜이 서비스로 주어진다. 숯불에 막 구워진, 지방이 끓으면서 육즙을 움켜쥐듯 머금은 생갈비 한 점과 함께 삼키는 소주 한 잔. 천국이 따로 없다. 안동은 그 순간 정신문화 같은 관념의 수도가 아니라 미각 같은 감각의 수도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사장님 말씀으로는 50년 전 자신과는 무연한 할머니 한 분이 소갈비를 구워서 팔기 시작한 것이 이 집의 시작이란다. 그러다가 2대 사장님이 30년을 운영했고 당신이 가게와 노하우를 인수받아 영업을 한 것은 17년 되었다고. 그러니까 창업자까지 사장님 세 분이 50년을 이어온 것. 보통 50년 정도 된 노포는 가족이 대를 이어서 물려받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 집 경영권이 타인에게 계속 이전된 것은 상당히 예외적이다. 그런데 내 눈엔 오히려 그게 더 쿨해 보인다. 맛을 내는 원칙과 정성을 존중하고 그 정신만 잘 이어간다면 가족을 고집할 이유가 없지 않겠는가.
사장님은 처음 한우갈비골목 일대가 자갈밭이었다고 귀띔한다. 자갈밭에 숯불 화로를 걸쳐 놓고 석쇠에 갈비를 구워 노상을 오고 가는 식객들에게 팔았다는 것이다. 그 식객 중엔 필시 고등어 간잡이도 있었을 것이고 찜닭용 닭을 잡는 사람도 있었을 터. 그 자갈밭은 지금은 시멘트로 잘 도포된 공용주차장이 되어 있다. 자갈이 오랜 시간 서로 부딪쳐 모서리가 깎여 둥근 마음이 되듯 이곳 안동 한우갈비골목 사람들도 어느새 그리 된 듯 보였다.
김도언 소설가
Copyright © 동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민주-의협 ‘정부 뺀 협의체’ 논의…李 “정부 개방적으로 나와야”
- 귀국 尹, 마중나온 韓과 대화없이 악수만…24일 만찬 ‘갈등 분수령’
- ‘의료계 블랙리스트’ 작성 32명 중 30명은 의사…2명 의대생
- 檢, ‘文 前사위 특채 의혹’ 관련 前 청와대 행정관 27일 소환
- 곽노현, 진보 교육감 단일화 경선 탈락…강신만-정근식-홍제남 압축
- 이재명 사법리스크 재점화에…민주당 “법 왜곡죄 상정”
- “거짓말처럼” 하루만에 8.3도 뚝↓…불쑥 찾아온 가을
- 故장기표, 김문수에 “너부터 특권 내려놓으면 안되겠나”
- “연금개혁안 도입되면 75·85·95년생 150만원 더 낼 수도”
- “천석꾼 가세 기울었어도, 독립운동 아버지 원망은 이제 안 해요”[동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