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가는 중간, 중간은 고가로… 이통사 '요금제 테이블'의 비밀
이통3사 요금제의 비밀➋
말 많은 이동통신사 요금제
중간요금제 부작용 많아
저가요금제 역차별 일으켜
비싼 요금제 고르게 만들어
생색내기 요금제란 지적 여전
업체간 경쟁구도 형성이 관건
가능케 할 묘안 정부에 있을까
# 가계통신비가 좀처럼 잡히지 않고 있습니다. 현 정부가 중간요금제, 번호이동 전환지원금 등 갖가지 정책을 도입했지만 요지부동입니다. 지난 7년간의 통계를 분석해 보니, 가격이 비싼 무제한 요금제 이용자 수가 꾸준히 늘어난 게 원인 중 하나였습니다.
#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무제한 요금제 사용자를 줄이기 위해 도입한 정부 정책마저 수많은 부작용을 낳고 있습니다. 이통3사를 닦달해 만든 5G 중간요금제가 대표적입니다. "가계통신비를 낮추기 위해 도입된 요금제가 오히려 인상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습니다. 지금 이통3사가 만든 요금제에선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요? 더스쿠프 '이통3사 요금제의 비밀' 2편에서 답을 찾아보시죠.
우리는 더스쿠프 IT언더라인 '이통3사 요금제의 비밀' 1편에서 가계통신비가 줄지 않는 원인을 꼬집었습니다. 가장 먼저 살펴본 건 한국 소비자의 스마트폰 이용 패턴으로, 데이터 사용량이 눈에 띄게 늘어났습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다르면 휴대전화 이용자 1인당 트래픽은 2017년 3115MB(메가바이트)에서 올해 7월 2만108MB로 6.4배가 됐습니다. 데이터를 많이 쓰는 '헤비 유저'의 5G 사용량도 2019년 12만1444TB(테라바이트‧1TB는 1024GB)에서 94만7387TB로 7.8배로 불어났죠.
소비자는 급격히 늘어난 트래픽을 감당하기 위해 가격이 비싼 무제한 요금제를 이용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더스쿠프가 과기부의 자료를 토대로 결괏값을 추산한 결과, 무제한 요금제 가입자 수는 2019년 337만5257명에서 2022년 1103만1553명으로 226.8% 늘어났습니다. 비싼 요금제를 쓰는 이용자가 계속 증가했으니, 가계통신비가 줄어들 조짐이 보이지 않았던 겁니다.
■ 관점➊ 이통사 요금제 = 그럼 무제한 요금제 가입자 수가 늘어나는 동안 이통3사의 요금제는 어떻게 바뀌었을까요? 5G를 상용화한 2019년 당시 이통3사가 내놓은 5G 요금제를 살펴보겠습니다. SK텔레콤의 요금제 중 가장 저렴한 건 '슬림'이었는데, 5만5000원에 8GB를 제공했습니다.
그 위로 5GX 스탠다드(7만5000원·150GB), 5GX 프라임(9만5000원·200GB), 5GX 플래티넘(12만5000원·무제한) 등이 있었습니다. 다른 이통사도 비슷했습니다. KT도 5만5000원(8GB)에서 13만원(무제한)에 이르는 요금제 테이블을 구성했고, LG유플러스(5만5000~13만원)도 마찬가지였죠.
그로부터 7년이 흐른 현재, 해당 요금제의 가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SK텔레콤 고가요금제를 먼저 볼까요? 가장 비싼 5GX 플래티넘 가격은 12만5000원 그대로입니다. 5GX 프라임 가격이 9만5000원에서 8만9000원으로 6000원 줄고 데이터 제공량이 200GB에서 무제한으로 바뀐 게 그나마 유의미한 변화입니다. KT와 LG유플러스의 고가요금제도 7년 전과 지금이 '데칼코마니' 같습니다.
고가인 '5G 무제한 요금제'를 이용하는 소비자가 늘어났다는 점을 감안하면, 가계통신비는 절대 줄어들 수 없는 구조인 게 현실입니다. 혹자는 '7년간 요금을 올리지 않은 게 어디냐'고 따져 물을지 모릅니다. 아닙니다. 2019년 당시엔 5G가 '신기술'이어서 가격을 비싸게 책정했다고 해도 할 말이 없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물론 이통3사가 요금제를 개편조차 하지 않은 건 아닙니다. '5G 중간요금제'처럼 새롭게 론칭한 것도 있습니다. 5G 중간요금제는 '고가요금제와 저가요금제 사이에 중간이 없다'는 지적에서 출발한 겁니다. 업계 3위였던 LG유플러스가 2023년 4월 50GB· 80GB·95GB·125GB를 제공하면서 본격 도입됐습니다. 뒤를 이어 SK텔레콤과 KT도 비슷한 양의 데이터를 제공하는 중간요금제를 추가했죠.
정부 요청에 따라 저가 요금제도 출시했습니다. 일례로, SK텔레콤은 지난 4월 3만9000원에 6GB를 제공하는 '컴팩트' 요금제를 선보였습니다. 하지만 저가 요금제는 평균 데이터 사용량만 20GB가 넘는 한국 소비자의 성에 차지 않을 공산이 큽니다. 저가요금제만으론 치솟는 가계통신비를 낮추기엔 역부족이란 거죠.
5G 중간요금제도 문제가 있긴 마찬가지입니다. 요금제별 가격 대비 데이터 제공량이 들쑥날쑥하기 때문입니다. LG유플러스를 예로 들어볼까요? LG유플러스는 월 6만3000원에 50GB를 제공하는 5G 중간요금제 '5G 데이터 레귤러'를 판매하고 있습니다.
그보다 3000원 비싼 6만6000원짜리 '5G 데이터 플러스'의 데이터 제공량은 80GB에 달합니다. 가격이 4.7% 오를 때 데이터 제공량은 50GB에서 80GB로 60% 늘어나는 셈입니다. 소비자가 조금이라도 더 비싼 요금제를 선택하게끔 요금제 테이블을 구성해 놓은 셈입니다.
■관점➋ 요금제 역차별 = 5G 중간요금제의 문제는 또 있습니다. 저가요금제를 사용하는 소비자를 견인할 수 있다는 겁니다. 중간요금제와 저가요금제의 가격 대비 데이터 제공량이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가령, 5만원대 10GB 안팎의 요금제를 쓰는 소비자 입장에선 1만원만 더 내면 수십GB를 쓸 수 있으니 마다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저가요금제 이용자가 중간요금제로 옮겨갈 가능성이 높을 수밖에 없는 구조란 겁니다.
소비자 단체에서도 이런 중간요금제의 문제점을 꾸준히 지적해 왔습니다.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는 2022년 7월 논평에서 "이동통신사가 생색내기식 5G 중간요금제를 도입했다"면서 다음과 같이 꼬집었습니다.
"…상용화 초기부터 5G 서비스는 고가요금제 중심으로 설계돼 소비자들이 더 높은 요금제를 선택하도록 유도했다. 이번 중간요금제 도입으로 선택지가 하나 추가됐지만 소비자는 여전히 더 비싼 요금제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저가 요금제를 선택할수록 더 높은 데이터당 단가를 지불해야 하는 소비자 차별 문제도 전혀 바뀌지 않았다."
이렇게 정부가 가계통신비를 잡지 못하고 있는 동안 이통3사는 '실적잔치'를 누렸습니다. 5G가 상용화한 2019년 27조3546억원이었던 이통3사 총 매출은 4년이 흐른 현재 58조3574억원으로 113.3% 증가했습니다. 같은 기간 총 영업이익도 2조9472억원에서 4조4010억원으로 49.3% 늘었는데, 2021년(4조380억원)부터 3년 연속으로 영업이익 4조원을 돌파하는 대기록도 세웠습니다.
이통3사는 "가계통신비를 낮추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SK텔레콤 관계자는 "지난해 저렴한 가격대에 무제한으로 데이터를 쓸 수 있는 가성비 요금제를 출시하고, 기존 요금제의 데이터 제공량도 늘렸다"면서 "가족 결합 할인 등 부가 혜택도 동일하게 적용해서 결과적으론 더 많은 할인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고 답했습니다.
실제로 SK텔레콤은 지난해 초 6만9000원에 데이터를 무제한으로 쓰는 '5G 다이렉트 요금제'를 출시했습니다. 그러자 KT도 그해 7월 비슷한 가격대에 데이터를 무제한 지원하는 요금제를 선보였습니다. 수년간 정체해 있던 이통3사 간의 경쟁에 오랜만에 불이 붙은 겁니다.
이런 이유로 업계에선 "경쟁을 통해 이통3사가 요금제를 인하하도록 만드는 게 가장 확실한 해결책"이라고 입을 모읍니다. 통신업체의 한 관계자는 "현재 통신요금 명세서엔 스마트폰 기깃값까지 포함돼 있어서 소비자가 정확한 요금을 파악하기가 어렵다"면서 "기깃값과 요금제를 분리해 이통3사가 적극적으로 요금 경쟁을 펼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근본적으로 요금제를 낮출 수 있는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김연학 서강대(경영학) 교수의 주장을 들어볼까요? "정부의 압박으로 이통3사가 마지못해 내놓은 중간요금제에서 큰 효과가 있을 거라 기대해선 안 된다. 과거에 진행했던 기본요금 폐지, 스마트폰 기깃값 할인율 인상 등 가계통신비 인하와 직결되는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과연 윤 정부는 꿈쩍도 하지 않는 가계통신비를 끌어내릴 묘수를 갖고 있을까요?
이혁기 더스쿠프 기자
lhk@thescoop.co.kr
Copyright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