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술 친구 추천합니다, 일드 '반주의 방식'

삶에는 좋은 날보다 나쁜 날이 많고, 그보다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날들이 더 많다. 어떤 시절에는 더욱 그렇다. 종일 기다렸지만 예기치 않은 소식은 오지 않았다. 무료한 보통날들, 그런 날에도 하나만은 확실하다. 저녁 식사가 우리를 기다린다는 것.

매일의 밥이지만, 그것을 꾸준히 성의 있게 챙기는 것만으로도 잘 살아가고 있다는 위안이 된다. 많은 요리 드라마가 힐링 계열로 구분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누군가가 정성스럽게 만든 음식을 즐겁게 먹는 장면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경쾌해진다. 특정한 드라마 서사가 없는 <고독한 미식가>나 <와카코와 술> 같은 드라마들이 시즌을 거듭하며 이어갈 수 있는 동력이다.

TV 도쿄의 드라마 <반주의 방식>은 ‘또 한번의 하루를 살아낸 사람들을 격려한다.’는 요리 드라마의 본질에 맞는 드라마이다. (시즌 1 총 8화, 시즌 2 진행 중, 웨이브에서 시청 가능) 주인공인 이자와 미유키(쿠리야마 치아키)는 부동산 회사에 근무하는 비혼 여성이다. 그의 인생 목표는 드라마 처음에 선명하게 드러난다. “하루의 마지막에 마시는 술을 어떻게 하면 최고로 맛있게 마실 수 있을 것인가. 이 드라마는 이를 한결같이 추구하는 한 여성의 이야기.”

드라마 <반주의 방식> 스틸

별다른 줄거리는 없다. 매일 홉 하우징 사무실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사건이 전부이다. 가령, 다른 손님들과 다르게 북향인 집을 찾는 중년 남성이라든가, 화려한 외모지만 조용한 동네를 원하는 젊은 여성, 이상적인 집을 찾는 신혼부부가 의뢰인으로 찾아온다. 그런 의뢰를 재빨리, 그리고 효율적으로 마음을 다해 해결하는 것이 미유키의 일이다. 그가 그렇게 열심히 일하는 이유는 딱 하나이다. 6시에 정시 퇴근을 하고, 집에 가서 최고로 맛있는 술을 마시기 위한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안주를 만들어 술을 마시는 과정이 1회 25분이 안 되는 짧은 드라마의 반을 차지한다.

미유키는 술을 가장 맛있게 마시기 위해서 몇 가지 규칙을 만들었다. 오후 3시 이후에는 수분은 되도록 섭취하지 않는다. 마트의 시식도 거절한다. 일이 빨리 끝났을 경우엔 걸어서 돌아간다. 집에 갈 때 일부러 언덕길을 빠른 걸음으로 오르기도 한다. 틈나는 대로 회사에서도 몸을 움직인다. 스쾃 자세로 서류를 본다. 여성 할인이 있는 날에는 사우나에 가서 땀을 빼기도 한다. 그래도 마트에는 6시 45분까지 도착해야만 한다. 6시 45분이 되면 마트 점원인 우시바 씨가 이제 30%, 운이 좋으면 반값 스티커를 붙이기 때문이다. (우시바 씨 역의 바바 히로유키는 요리 예능인으로 유명한 개그맨으로, 극 중 음식 감수를 맡기도 했다.)

드라마 <반주의 방식> 스틸

직장에서 마트, 그리고 집까지. 이런 단순한 루틴이 정갈한 화면 안에 펼쳐진다. 아침에 출근할 때면 미유키는 반드시 산토리 킨무기 맥주 캔과 유리잔을 냉장고에 넣어둔다. 부엌은 티끌 없이 정돈되어 있고, 요리 과정엔 쓸데없는 동작이 없다. 타이머를 세팅하고 집에 비치한 각종 양념을 넣는다. 고등어 초절임 카르파초, 대만 마제소바, 햄치즈카츠, 닭고기 꼬치구이, 집에서 만드는 초밥, 오코노미야키 등이 미유키의 접시 위에 가지런히 담긴다. 김치, 순두부찌개, 파전 같은 한국 음식도 등장한다. 모든 요리가 놓이면 맥주가 나설 차례다.


늘 접속해 있지만 더 고독해진 우리를 위하여!

열심히 일하고 먹는 식사, 한잔의 술에 대한 드라마는 많다. 최근에 나온 일본 드라마 <나를 위한 한끼 포상밥>도 같은 개념을 추구하고, 한국에는 <단짠 오피스>나 <출출한 여자> 같은 드라마가 있다. 각기 다른 개성이 있지만, 거기에는 공통된 정신이 있다. 별다를 게 없는 평범한 날에서 기쁨은 누가 선물하는 게 아니라, 자기 일에 충실함으로써 스스로 만들어나간다. 어떻게든 하루 세끼를 먹을 수는 있겠지만, 백 퍼센트의 맛으로 먹기 위해 스스로 노력한다.

드라마 <반주의 방식> 스틸

드라마로 보기에는 지나치게 단순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매일 예상하지 못한 사건 속에서 집중력을 잃어가는 요즘의 삶에서는 이런 단순함이 아름다움으로 변모하는 순간이 있다. <반주의 방식>의 일본 원제는 <만작의 유의(晩酌の流儀)>라고 하고, 영어로는 <Evening Drink Style>이다. ‘만작’은 국어사전에도 실린 한자어로서 저녁에 술을 마시는 행위, 혹은 그 술 자체를 의미하고, 일본식 한자어인 ‘유의’는 어떤 특정인이나 가문, 유파가 보유한 기술의 특별한 방법을 가리킨다고 한다. 영어는 이를 직역했다. 저녁에 맥주를 마시는 평범한 일도 마음을 다해 한결같이 반복하면, 그것이 나만의 스타일이 된다는 뜻이다.

최근에 종종 보이는 단어로 경박단소(輕薄短小)라는 말이 있다. 거창한 사자성어처럼 보이지만, 실은 한자 그대로 가벼우며 얇고, 짧으며 작은 것을 의미한다. 21세기 들어 IT 기기의 트렌드를 말할 때 많이 쓰는 단어였지만, 이젠 삶의 방식을 가리키는 표현이 되었다. 미유키의 삶은 경박단소하다. 불필요한 일이나 관계를 만들지 않는다. 물론 그 끝에 이르는 저녁 식사는 풍성하지만, 이 한잔을 위해 다른 모든 것들은 간소화한다. <반주의 방식>이 위안을 주는 방식은 매회 똑같은 형식이 주는 안정감, 그리고 그를 성취하기 위한 절제와 자기 규율이다. 쿠리야마 치아키의 건강함, 생활감 있지만 깨끗한 세트, 세련된 음악 같은 요소가 쌓여 간결한 형식미를 구축했다. 그런 절제미는 어떤 시청자들의 마음에 가닿은 모양이다. <반주의 방식>은 금요일 자정이 넘어서 방송되는 심야 드라마이지만, 연말 스페셜, 시즌 2까지 꾸준히 이어졌다. 일본에서는 책과 만화로 각색되어 출간되기까지 했다.

드라마 <반주의 방식> 스틸

물론 <반주의 방식>이 사회적 의미를 얻게 된 외적 상황도 있었다. 코로나19 시기를 겪으면서 우리 모두가 혼자 있을 수밖에 없지만 그럼에도 정돈된 삶을 살아가고 싶다는 욕망이 커졌기 때문이다. 요리는 남과 함께하는 방식이기도 하지만, 혼자인 나를 최선을 다해 대접하는 일이라는 것. 늘 무엇과 접속해 있지만 더 고독해진 우리를 위로하는 <반주의 방식>의 메시지이다. 그 누구, 그 무엇에도 구애받지 않는 내 마음의 성역을 구축하고 싶은 당신에게 오늘도 최고의 저녁 식사, 한잔의 술이 기다린다.

글. 박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