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쉽지 않은 일정이었다. 사실 빡빡했다. 경기 당일 아침 6시 출발 비행기로 독일로 갔다. 비행기값이 너무 비싸서 목적지로 바로 들어가지 못하고 인근 도시에 내렸다. 그곳에서 다시 기차로 2시간 정도 이동했다. 목적지인 도르트문트에 도착했다. 경기를 보고난 후 다시 2시간 기차이동을 해서 숙소가 있는 도시로 왔다. 자고 다음날 런던으로 돌아가는 일정.
36시간동안 이동 시간만 8시간. 이동 거리만 1662킬로미터. 런던을 출발해 브레멘을 거쳐 도르트문트로. 그리고 다시 도르트문트에서 브레멘을 거쳐 런던으로 돌아오는 강행군을 했다. 무리한 일정의 이유는 단 하나였다.

야시르 아사니.
한 때 광주 FC의 에이스였던 아사니. 그는 현재 광주의 스쿼드에서 사라졌다. 이정효 광주 감독의 눈에서 멀어졌다. 여러가지 썰들이 흘러나왔다. 미디어에서도 아사니는 사라졌다.
때마침 아사니는 유로 2024에 참가했다. 광주에서는 6개월간 단 8분 출전에 그쳤지만, 알바니아 대표팀은 아사니를 불렀다. 아사니를 믿었다. 그의 심경은 어떨까. 그 한마디를 듣고자 했다. 영국 런던에서 독일로 향했다.

16일 도르트문트 중앙역에 도착했다. 알바니아와 이탈리아의 유로 2024 C조 조별리그 1차전. 경기 킥오프까지 약 다섯시간 남짓 남아있었다. 이미 중앙역 앞 광장은 붉은 빛이 가득했다. 알바니아의 팬들이었다. 알바니아 전통 모자인 켈레쉬를 쓰고 경기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경기장 가는 길부터 응원열기는 대단했다. 경기장까지 약 3킬로미터 정도를 걸어가면서 응원가와 구호를 계속 외쳤다. 한 두 무리가 있는 것이 아니었다.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대부분의 알바니아 팬들이 자유롭게 노래를 부르고 구호를 외쳤다. 차를 가져온 팬들은 알바니아 국기를 차에 두르거나 손에 들고 도르트문트 시내를 누비고 다녔다.
다른 유럽팀 팬들과는 뭔가 결이 달랐다.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부를 때 뭔가 가슴 속에 응어리진 한(恨)같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한에 관한 두번째라면 서러워할 한국인이라서 더 느꼈을 수도 있었다.
이 경기는 그들에게 또 다른 의미가 있었다. 우선 알바니아는 유럽 내 최빈국 중 하나이다. 경제 규모는 세계 121위. 1인당 GDP도 2021년 기준 5991달러로 세계 110위에 불과하다. 때문에 유럽에서도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는 나라이기도 하다. 그런 나라가 유로에 나왔다. 지난 유로 2016이후 메이저 대회 본선은 두번째이다. 자신들의 모습을 유럽과 전 세계에 제대로 보여주겠다는 의지가 타올랐다.
상대가 이탈리아였다. 알바니아에게 이탈리아는 애증의 대상이다. 고대부터 로마제국의 지배를 받았다. 역사적으로 이탈리아의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20세기 초에는 이탈리아의 침공을 받았다. 1939년에는 이탈리아의 독재자 베니토 무솔리니에 의해 강제 합병되기도 했다. 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알바니아는 독립했다. 이탈리아에는 여전히 알바니아인들이 많이 살고 있다. 그리고 최근 알바니아는 이탈리아인들의 휴양지로 각광받고 있다. 뭔가 묘한 관계일 수 밖에 없다.

경기 전 기자석에서 만난 알바니아 기자와 이야기를 나눴다. 스웨덴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이 알바니아 기자는 "이탈리아는 우리에게 뭔가 묘한 나라이다. 그래서 더욱 이기고 싶어한다"고 설명했다. 우리가 한-일전에서 무조건 승리를 외치는 것과 같은 의미였다.
경기장 앞에서 알바니아 팬들을 인터뷰했다. 다들 알바니아의 승리를 원했다. 객관적인 전력차이는 인정했다. 그래도 이겼으면 좋겠다고 했다. 누가 골을 넣을지도 물었다. 대부분 아사니의 이름을 말했다.
한 팬은 이렇게 이야기했다.
"아사니는 알바니아의 호날두입니다. 유로 예선에서도 빼어난 모습을 보여주었어요. 한국의 팀에서 많이 못 뛴 것은 알고 있어요. 하지만 그는 잘해낼 겁니다. 우리를 위해 골을 넣을 거예요."
알바니아의 호날두. 아사니를 향한 알바니아 팬들의 응원은 진심이었다.
경기가 시작됐다. 알바니아는 꿈을 꿨다. 23초만에 첫 골을 집어넣었다. 상대 실수를 놓치지 않았다. 어쩌면 알바니아가 이번 대회 최대 이변을 만들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단 16분만에 물거품이 됐다. 전반 11분 동점골을 내줬다. 전반 16분 역전골까지 내줬다. 이탈리아와의 수준차이는 컸다. 선수들의 개인적인 실력에서 갭이 컸다. 이탈리아 선수들은 알바니아 선수들을 '가지고 놀았'다. 더 많은 골을 내주지 않은 것이 다행일 정도였다. 알바니아는 1대2로 졌다.
그래도 경기장 분위기는 알바니아의 홈이었다. 얼추 눈짐작으로 봐도 알바니아 팬들이 이탈리아 팬들보다 훨씬 많았다. 아마도 이탈리아 팬들은 토너먼트 이후에 독일로 올 생각이 큰 거 같았다. 반면 알바니아 팬들 입장에서는 조별리그 3경기만 볼 수 있는 가능성이 컸다. 그래서 구름 관중이 몰렸다. 알바니아 팬들은 계속 응원을 보냈다. 이탈리아 팬들이 조금이라도 응원을 하려고 하면 엄청난 야유를 퍼부었다. 쉬지 않고 응원하는 모습에 존경심이 들 정도였다.

아사니는 선발로 출전했다. 68분을 뛰었다. 팀 전력이 밀렸기에 공격보다는 수비에 치중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차례의 슈팅을 때리는 등 활발한 모습도 보여주었다.
경기 후 믹스트존에서 그를 기다렸다. 양 팀 선수들 가운데 단 세 명 정도만 믹스트존에 나타났다. 나머지 선수들은 믹스트존을 거치지 않고 버스로 올랐다. 그 세 명 가운데 아사니가 있었다. 알바니아 기자들과의 인터뷰가 끝나고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그리고 한국 기자라고 이야기했다. 아사니는 너무나도 반가워했다.
바로 돌직구를 던졌다. 궁금했다. 광주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었다. 아사니의 탈압박 역시 그의 플레이처럼 직선적이었다.
"솔직히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말할 수 없다."
돌려묻기로 했다. 스페인 라리가 팀 이적설이 있었다. 대회가 끝나면 스페인으로 가는 지 다이렉트로 물었다.
"물론 유럽에 있는 클럽들이 관심을 가지고는 있다"며 일부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지금은 다음 경기인 크로아티아전에만 모든 것을 맞추고 있다. 준비 잘해서 승점 3점을 따내고 싶다"고 말을 돌렸다.
그래도 광주에 대한 사랑은 대단했다.
"나는 광주 선수다. 우리 팬들이 너무 좋다, 한국에서 상당히 좋은 클럽에 있어서 행복하고 좋다. 지난 시즌 우리 팀은 잘했고 그래서 아시아챔피언스리그(ACL)에 나가게 된다. 선수들이 모두 그립다."
성심성의껏 해준 인터뷰가 고마웠다. 인터뷰를 끝내고 우리말로 "감사합니다"라고 화답했다. 아사니도 "감사합니다"며 환하게 웃었다.
분명 앞으로 어떻게 될 지는 모른다. 아마도 현 상황이라면 아사니가 광주를 떠날 확률은 높아 보인다. 유럽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 그래도 아사니의 웃음을 보면서 좋은 결과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