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서점 풍경이 사뭇 달라졌다. 한동안 외면받던 시집 코너에 MZ세대의 발길이 부쩍 늘었다. 실제로 예스24 자료에 따르면, 1020세대의 시집 구매율은 2020년 12.7%에서 2025년 20.1%로 뛰었고, 올 1분기 한국 시 분야 판매량은 작년 같은 기간보다 무려 64.5%나 급증했다. 2025년, 현대시의 트렌드를 읽을 수 있는 시집들을 소개한다.

카프카의 말처럼 책이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부수는 도끼라면, 시집은 바늘처럼 마음 한구석을 파고든다. 문장 한 줄로 가슴 한복판을 꿰뚫고, 단어 하나로 오래된 감정의 멍울을 건드린다. MZ세대가 시집에 열광하는 이유도 여기 있다. 스크롤의 홍수 속, 모호했던 감정에 이름을 붙여주는 시적 언어가 좋아요 숫자보다 더 강렬한 위로가 되고 있다.
[기대 없는 토요일], 민음사 │ 윤지양 시인
김수영 문학상 수상작

김수영 문학상은 1981년 시인 김수영의 자유와 양심, 저항 정신을 기리고자 제정된 한국 현대시의 이정표다. 매년 실험성과 독창성을 갖춘 작품을 선정하며 한국 시단에 신선한 자극을 주는 역할을 한다. 젊은 시인들에게 도전적인 시 세계를 펼칠 기회를 제공하며 동시대 시의 흐름을 이끄는 중요한 문학상으로 자리매김했다. 자유정신과 시대 비판을 향한 끊임없는 탐구는 이 상의 가장 큰 가치이며, 수상작들은 현대시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왔다.
제43회 수상작인 윤지양 시인의 [기대 없는 토요일]은 IT 개발자로 일하며 시를 쓴 3년의 결실이다. 낮에는 웹사이트와 앱을 만들고 저녁에는 시를 쓰는 이중생활 속에서 탄생한 이 시집은 현실과 예술 사이의 경계에서 고민한 흔적이 생생하다. 심사위원들은 "말과 관념의 구속에 저항하며 온몸으로 부딪치는" 그녀의 시가 "빛나는 악몽의 장소"를 만들어낸다고 평했다. 윤지양의 비정형적 에너지와 상상력은 김수영의 정신을 이어받아 현대인의 분열된 일상과 내면을 섬세하게 포착한다.
[2025 신춘문예 당선시집], 문학마을 │ 안수현, 이문희, 장희수 외 10인
신춘문예 당선작

신춘문예는 한국 문학의 가장 권위 있는 등용문으로, 매년 새해를 맞아 국내 주요 신문사들이 신인 작가를 발굴하는 문학 공모전이다. '신춘문예 출신'이라는 타이틀은 문단의 공식적 인정을 의미하며, 이후 문학 활동의 든든한 기반이 된다. 시대의 감수성과 사회상을 반영하는 척도로도 읽히는 신춘문예 당선작들은 한국 문학의 새 얼굴을 소개하는 '문학인의 축제'다.
[2025 신춘문예 당선시집]은 올해 주요 일간지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된 13인의 신인 시인들의 작품을 한데 모았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높아진 문학적 관심을 반영하듯, 이번 시집은 응모작의 수준과 다양성이 특히 돋보인다. 사랑, 노동, 사회, 일상을 다룬 각 작품은 독특한 시선과 언어로 우리 삶의 다양한 면모를 그려낸다. 삶의 깊이는 물론, 시의 미적 완결성과 깊은 사유까지 담아냈다.
[오늘의 시(2025 제70회 현대문학상 수상시집)], 현대문학 │ 박소란
현대문학상 수상작

현대문학상은 1956년 월간 [현대문학]이 제정한 문학상이다. 시, 소설, 희곡, 비평 등 다양한 부문에서 뛰어난 작품을 선정해 시상하며, 오랜 전통과 공정한 심사로 문학적 실험성과 창의성을 인정받아왔다. 70년에 가까운 역사는 그 자체로 한국 문학사의 한 축을 대변한다. 이름처럼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작품 선정은 현대문학상의 가장 큰 특징이다.
[2025 제70회 현대문학상 수상시집]은 올해 시 부문 수상자인 박소란 시인의 [오늘의 시] 외 6편을 담았다. 박소란은 일상과 내면의 고통, 상실, 그리고 삶의 단단한 감각을 섬세하게 포착해 "고통을 시로 단련시키는 성숙한 의지"라는 극찬을 받았다. 이 시집은 한국 시의 현재를 가장 생생하게 만날 수 있는 컬렉션이자, 바쁜 일상 속에서도 깊은 사유와 감동을 경험할 수 있는 라이프스타일 북이다. 후보 시인들의 작품까지 함께 실려, 다양한 시적 감각과 시선을 한 권으로 경험할 수 있는 특별한 가치가 있다.
[내가 아직 쓰지 않은 것], 문학동네 │ 최승호 외 198인
199명의 시인들이 건네는 말

'시인의 말'은 시집의 마지막이자 시작, 마침표이자 유일한 고백과도 같은 존재다. 시집을 관통한 시간과 감정, 그리고 시를 향한 진심이 가장 농밀하게 담기는 자리로, 시인과 독자가 처음으로 마음을 나누는 소중한 순간이기도 하다. 이 짧지만 강렬한 글에는 시를 쓴 이유, 시집을 완성하며 느꼈던 고민과 다짐, 그리고 삶에 대한 소망까지 오롯이 담겨있다. 시인에게 '시인의 말'은 자신을 투명하게 드러내는 용기이며, 독자에게는 시인과의 가장 진솔한 만남이다.
[내가 아직 쓰지 않은 것]은 2010년부터 2023년까지 문학동네시인선 199권에 실린 '시인의 말'만을 모은 특별한 도서다. 최승호부터 한연희까지 199명 시인의 고백과 다짐, 소망이 짧은 언어로 응축되어 깊은 울림을 전한다. ‘아주 투명하게 들여다보이고 싶다’는 김복희, ‘종이가 찢어질 정도로 훌륭한 시를 쓰고 싶었다’는 김언희의 말처럼, 각기 다른 삶과 시의 태도가 한 권에 펼쳐진다. 시집을 사랑하는 독자에게는 오래도록 곁에 두고 싶은 선물이자, 바쁜 일상 속에서도 짧은 문장으로 깊은 위로를 얻을 수 있는 특별한 시집이다.
ㅣ덴 매거진 Online 2025년
에디터 김진우(tmdrns1111@mcircle.bi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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