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다른 이유 없이 점점 틀어져만 가는 관계가 있다. 연구 프로젝트에서 만난 선배는 평소 조용조용하고 다른 동기들과는 농담도 주고받으며 잘 지냈는데, 유독 나와는 껄끄러웠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언젠가부터 나를 볼 때 표정이 굳어있는 듯하더니 업무 확인 차 질문을 해도 화가 묻어나는 말투로 답하곤 했다. 실험 참가자에게 일정이 바뀌었다고 연락하는 걸 깜박한 날, 그녀는 한숨을 쉬며 전화기를 뺏어들었다. 수화기를 내려놓는 소리가 그렇게 날카로운지 예전엔 미처 몰랐다. 뭐라고 혼을 내줬으면 차라리 좋으련만, 선배는 아무 말 없이 문을 쾅 닫고 나가버렸다. 내 마음도 쿵 하고 내려앉았다.
어디서부터 뭐가 잘못된 걸까. 내가 너무 덤벙대서 선배가 나와 같이 일하기 힘든 걸까. 혹시 말실수라도 해서 선배에게 두고두고 서운함이 남은 걸까. 침울한 얼굴을 하고 있으니 다른 선배가 조용히 나를 불렀다. 연구실 구석 캐비닛 사이에서 그녀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네 요인이 있지만, 상대의 요인도 있어. 모두 네 탓으로 돌릴 필요는 없어.” 그때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잘 이해할 수 없었다.

몇 년 지난 후에야 선배가 유난히 나를 힘들어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선배는 내가 마냥 해맑고 친화력이 좋은 사람이라 업무 능력이 아니라 쌓아둔 관계 덕분에 인정을 받는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평소 그런 사람들에게 밀려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다고 느껴왔던 선배는 나를 볼 때마다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 다른 사람과 사이에서 겪은 감정을 투사하는 ‘전이’가 슬며시 다가와 있었다.
전이는 예전에 누군가와 사이에서 겪은 감정을 관련 없는 타인에게 투사하는 것이다. 우리는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이전에 만났던 사람들에게 느꼈던 긍정적, 부정적 감정을 눈앞의 사람에게 덧씌워버리곤 한다. 말투가 온화한 사람을 만나면 다정다감했던 어머니의 모습이 포개지면서 몇 번 만나지 않았는데도 편안하고 기대고 싶어지기도 한다. 지적을 많이 하는 상사는 과거에 엄한 아버지에게 혼이 나던 경험이 겹쳐지면서 가슴이 서늘해진다. 연인의 우물쭈물하는 모습을 보면 답답했던 옛 연인과의 관계가 덧씌워지면서 이상하리만치 심하게 화가 나기도 한다. 관계가 채 깊어지기도 전에 순간의 인상이나 몇 가지 행동을 보고 빠르게 단정지어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사실 상대는 내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
나 또한 선배의 오해와 달리, 내향적인 사람에 더 가까웠다. 오히려 낯가림이 많았던 터라 처음 들어간 프로젝트팀에서 분위기를 처지게 만들고 싶지 않아 애를 쓴 면이 있었다. 그 시기 과도한 스트레스 때문이었던지 평소 나답지 않게 잠시 쾌활하게 굴기도 했다. 내가 진짜 그런 사람이든 아니든 어떤 우연한 행동이 나를 그런 사람처럼 보이게 했을 것이다. 그리고 선배의 상처에 들러붙어 있던 ‘붙임성이 좋아서 능력보다 인정받는 사람’이라는 짙은 보자기를 덮어씌웠을 것이다.

각자의 렌즈로 바라볼 때
우리는 모두 자기가 경험한 틀로 상대를 바라보고 또 관계를 꼬이게 만든다. '사람이 온다는 것은 그의 과거가 함께 오는 것'이자 '한 사람의 일생이 오는 것'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 '과거'나 '일생'이라는 것은 그 사람이 지금까지 맺었던 관계의 실패와 성공, 상처와 불안까지 포함하는 것일 테다. 그 때문에 우리는 서로를 '있는 그대로' 순수하게 바라보지 못한다.
상대가 내가 한 행동 이상으로 날카롭게 반응하거나 평소에도 종종 날이 서 있다면 자신만의 선입견, 기대, 관계에서의 상처 등의 렌즈를 덧대어 나를 바라보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나 역시 내게 굵직한 생채기를 남긴 이와 비슷해 보이는 누군가 혹은 나와는 너무 다른 존재 같아서 영원히 친해질 수 없을 것 같은 사람은 일찌감치 거리를 두고 만다. 나를 보호하기 위한 일종의 방어책이다. 언젠가는 학부모 모임에서 처음 만난 누군가에게 그런 감정을 느낀 적이 있었다. 다른 사람의 말을 자르고 자신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모습이 그렇게 얄미워 보이면서 화가 나는 것이었다. 오래 전에 ‘독선적’이라고 느꼈던 친구에게 받았던 상처가 고스란히 떠올라서였을 것이다.
그렇게 나의 시선으로 한 번 걸러진 상대는 다시 있는 그대로 바라봐지기 어렵다. '독선적인 사람’이라던가 '화를 잘 내는 사람', '가벼운 사람'과 같이 내 틀에 맞춘 납작한 존재가 되고 만다. 그 후로는 어쩜 그렇게 내가 예상했던 모습만 눈에 잘 들어오는지, '거봐, 이런 사람 맞네. 가까워지면 안 되겠어'라며 더욱 몸을 사린다. '그런' 사람과 투명한 관계를 맺어볼 기회는 그렇게 멀리 날아가고, 나의 선입견만 더욱더 공고해질 뿐이다.
상대의 의도가 선한데 내가 불편한 경우, 마음이 더 복잡해진다. S는 나와 처음 만난 자리에서 남자친구가 없어서 외롭다는 이야기, 회사 상사와의 어려움 등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았다. 그리고 '친절하고' '사람 좋은' 나를 알게 되어서 너무 좋다는 말을 연거푸 했다. S에게 있던 ‘잘 들어주는 상냥한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나에게 투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의 바람에 맞춰 더 충실히 고민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 같고, 그녀가 바라는 친절하고 좋은 사람의 행동을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나의 실상은 그녀의 기대만 한 사람이 아니므로 나는 한 걸음 물러났다. 잠깐 실망을 안겨주더라도 오래 편안한 관계로 맺어지기 위해서는 그래야만 했다.

당신의 탓만은 아닌 일
모든 관계는 투사가 눈처럼 덮여있다.
적당히 내 기대를 덮어씌우며 적당히 왜곡된 시선으로
상대를 바라본다.
그 덕에 한순간에 사랑을 빠지는 일도, 한순간에 사람을 마음에서 밀쳐내는 일도 가능한지도 모른다. 우리는 어느 정도 기대에 어울리는 행동을 하다가도 또 그와 어긋나는 행동으로 둘 사이에 긴장을 만들고 다시 서로의 기대를 조율해가며 관계를 만들어나간다.
하지만 겹겹이 쌓인 눈 때문에 서로가 보이지 않을 때 관계는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다. ‘나 그런 사람 아닙니다’라고 아무리 외쳐본들 상대의 시선은 변하지 않고, 나에게 감정이 이미 얽혀든 사람과 오해 없이 단정한 관계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어마어마한 에너지가 든다. 이상하게 그 사람 곁에 있으면 무능하거나 이기적인 사람이 된 것 같고, 긴장감에 숨이 막힌다면, 은근슬쩍 한 발 빼서 물러나도 괜찮다. 애매한 갈등에 말려들지 않고 나를 지키는 길이다. 시간이 지나고 관계를 투명하게 볼 수 있는 힘이 생기면 그제서야 관계를 삐끗거리게 만든 그와 나의 약한 고리가 보일 것이다. 그러니 오래전 한 선배가 내게 이야기해 주었듯 나도 들려주고 싶다. “ 모든 관계는 당신뿐 아니라 상대의 서툴고 취약한 마음, 상처의 역사가 함께 뒤섞여 있답니다. 그러니 모든 관계의 어려움을 당신의 탓으로만 돌리지 마세요.”라고.
글쓴이 - 이지안
여전히 마음 공부가 가장 어려운 심리학자입니다. <나를 돌보는 다정한 시간>을 공저로 출간하였고, 심리학 관련 연구소에서 일하며 상담을 합니다. 지금은 NGO에서 일하는 남편과 아프리카에서 살아보고 있습니다.
캄캄한 마음 속을 헤맬 때 심리학이 이정표가 되어주곤 했습니다. 같은 고민의 시간을 지나고 있는 이들에게 닿길 바라며, 심리학을 통과하며 성장한 이야기, 심리학자의 눈으로 본 일상 이야기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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