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이 직접 연구개발(R&D)비용을 매출 대비 최대 20% 수준까지 끌어올리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업계는 올해가 신약개발 전문기업으로 전환하는 원년이 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늘어난 R&D비를 바탕으로 바이오시밀러 개발 기업에서 탈피할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다만 투자 확대에 따른 수익 변동성과 신약 성과 가시성도 동시에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R&D 20% 선언, 신약 전환 공식화

24일 인천 연수구 송도컨벤시아 2층에서 열린 셀트리온 제35기 정기주주총회 현장에서 <블로터>와 만난 서 회장은 "매년 R&D비를 5000억원 이상 쓰고 있다"며 "매출의 15~20%는 항상 갈 것"이라고 밝혔다. 기자의 'R&D비 확대를 어느 정도로 예상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시장에서는 서 회장의 발언을 신약개발 기업으로의 전환을 위한 포석이라고 본다. 셀트리온은 올해 들어 기존 바이오시밀러 전문 기업에서 탈피해 신약개발사로 전환하려는 움직임을 본격화하고 있다. 현재 23개의 신약 파이프라인을 보유하고 있으며 여기에는 항체약물접합체(ADC), 다중항체, 융합단백질, 펩타이드, 마이크로바이옴, 비만치료제 등이 포함된다.
그의 발언이 주목받는 것은 2021년 이후 R&D비 비중이 10%대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지난 5년간 R&D비와 매출 대비 비중은 △2021년 3980억원(21%) △2022년 4122억8000만원(18.1%) △2023년 3427억4000만원(15.8%) △2024년 4200억원(11.8%) △2025년 4824억2000만원(11.6%) 등이었다.
회사가 제시한 올해 가이던스대로라면 향후 R&D비는 1조원 이상까지도 확대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셀트리온은 앞서 올해 매출 가이던스로 5조3000억원을 공시한 바 있다. 해당 가이던스와 서 회장의 발언을 대조하면 올해 R&D비는 7950억원에서 1조600억원에까지 이를 수 있을 것으로 점쳐진다. 이는 지난해 R&D비의 64.8%에서 119.8%에 이르는 수준이다.
서 회장은 이날 주총 현장에서 "매출과 영업이익의 포인트 중 하나는 전년 평균 환율 대비 올해 실제 적용 환율"이라며 "요새 환율이 수출하는 기업에게 유리한 환경이고, 올해 환율은 계획보다 더 좋을 것 같다"고 전망했다. 이어 "우리가 가이던스로 5조3000억원을 공시했다는 것은 실제 내부 운영 목표는 그보다 높다는 의미"라고 강조했다.
투자 확대 리스크, 성과·수익성 시험대

다만 시장에서는 R&D비 확대가 실제 기업가치 제고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임상 성과와 상업화 가능성이 함께 확인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시장은 투자 확대 자체보다 성과 가시성에 더 무게를 두는 분위기다. 셀트리온이 보유한 신약 파이프라인들이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는 만큼 임상 데이터를 확보하기 전까지 기업가치에 반영되기 어렵다는 시각이다.
R&D비 확대는 단기적으로 수익성 변동성을 키울 수 있는 요인으로도 지목된다. 셀트리온은 3년째 50%대였던 원가율을 지난해 40.7%까지 낮추며 영업이익률도 1년 만에 13.8%에서 28.1%로 높였다. R&D비 비중이 다시 15~20% 수준으로 올라간다면 판관비 부담이 확대될 수 있다.
업계는 R&D비 확대의 수혜를 입을 대표적 파이프라인으로 'CT-P72'를 지목한다. 위암을 적응증으로 하는 CT-P72는 지난해부터 연구를 시작해 현재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임상1상 시험계획(IND)을 승인받은 상태다. 암세포에서 활성화돼 관찰되는 HER2와 CD3를 표적하는 이중항체 기반 항암신약이다. 임상 종료 후에는 글로벌 허가신청에 나설 전망이다.
올해 1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제44회 JP모건 헬스케어 콘퍼런스에서 서진석 대표는 "CT-P72는 올해 3분기에 첫 데이터를 공개할 예정"이라며 "각 파이프라인이 임상 단계에 진입하고 매년 중요한 결과가 도출되면서 신약개발 기업으로서의 입지가 단단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서 회장은 "판매현황은 한 달에 두 번씩 전 세계 수치를 직접 점검한다"며 "계획대로 갔는지 단가가 제대로 적용됐는지 제품대로 유지되고 있는지 등을 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올해 주주들을 실망시키지 않도록 매출과 영업이익을 잘 경영하겠다"며 "신약 중에서는 임상1상에 들어간 파이프라인이 4개가 있는데 관련 데이터가 내년 1분기부터 나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승준 기자
Copyright © 블로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