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완으로 끝난, '아메리칸 럭셔리'의 꿈... 캐딜락 식스틴 이야기

2003년, 디트로이트 모터쇼에서 등장한 한 컨셉트카가 세계 자동차 업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캐딜락(Cadillac)이 창립 100주년을 기념해 선보인 초대형 컨셉트카 '식스틴(Sixteen)'이다. 이 차량은 1930년 뉴욕 오토쇼에서 최초 공개되었던 전설적인 V16 엔진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으로, 캐딜락의 유산과 기술력을 극대화한 상징적인 모델이다.

캐딜락은 1930년, 세계 최초의 양산형 V16 엔진을 장착한 최고급 세단을 선보이며 "세계의 기준(Standard of the World)"이라는 브랜드 슬로건을 현실로 구현했다. 당시 7.4리터 16기통 엔진은 초고급 자동차 시장에서 캐딜락의 위상을 공고히 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의 여파로 해당 라인업은 1940년 단종되었고, 이후 GM은 1942년부터 1945년까지 민간용 차량 생산을 전면 중단하고 전쟁 물자 생산에 집중하게 된다.

그로부터 70여 년이 지난 2003년, 캐딜락은 '식스틴'이라는 이름 아래 V16 엔진을 다시 세상에 선보였다. 전장 5.66미터에 달하는 대형 4도어 세단인 식스틴은 낮게 깔린 차체와 날렵한 라인, 그리고 극적인 존재감으로 캐딜락 디자인의 정수를 보여줬다. 차량의 중심에는 두 조각으로 분할된 알루미늄 보닛 아래, 'XV16'이라 명명된 13.6리터 V16 엔진이 자리잡고 있었다. 이 엔진은 GM의 전설적인 스몰 블록 V8 구조를 기반으로 한 푸시로드(pushrod) 방식의 OHV 엔진으로, 1,000마력의 최고 출력과 1,000lb-ft(약 138.26kgf.m)의 최대 토크를 발휘했다. 경량 알루미늄 합금을 적극적으로 사용하여 기존 8.1리터 보텍(Vortec) V8 엔진보다도 29kg 가볍게 설계되었다.

엔진 개발은 단 8개월 만에 완성되었으며, 당시 GM은 이 엔진이 "터빈 수준의 정숙성과 진동 억제, 뛰어난 신뢰성과 내구성, 그리고 일반 휘발유 사용 가능" 등의 까다로운 조건을 모두 만족시키도록 요구했다. 연료 효율성과 출력 면에서도 동급 V10·V12 엔진을 능가해야 했고, GM은 이 모든 목표를 성공적으로 달성했다.

내부 역시 초호화 사양으로 꾸며졌다. 전후기 V16 모델의 장인정신을 되살린 인테리어는, 핸드스티치 투스카나 가죽 시트와 실크 카펫, 월넛 우드 베니어, 대시보드 중앙의 불가리(Bvlgari) 시계 등 고급 소재와 디테일이 조화를 이뤘다. 후석 DVD 플레이어와 보스 오디오 시스템, 크리스탈 계기판 등 첨단 사양도 아낌없이 적용되었다.

비록 식스틴은 양산으로 이어지지 않았지만, 브랜드의 기술력과 디자인 방향성을 대외적으로 과시하는 데에는 충분한 역할을 했다. 이후 이 컨셉트카는 수제 초호화 전기차 '캐딜락 셀레스틱(CELESTIQ)'의 디자인과 기술에 영감을 주며, 다시 한 번 "세계의 기준"이라는 캐딜락의 철학을 현대적으로 계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