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난할수록 서울 살아야 하는 이유 4가지
가난한 사람에게 도시는 비싼 곳이 아닙니다. 오히려 마지막까지 붙들 수 있는 유일한 안전지대입니다. 도시는 어떻게 ‘빈자(貧者)의 최후 보루’가 되는 걸까요? 어느 날 한 방송에서 이런 장면을 본 적이 있습니다. “이제 그만 시골로 내려가세요. 집값도 저렴하고, 조용하잖아요.” 이에 대한 노숙인의 대답은 단호했습니다. “제가 시골 가서 뭘해 먹고 살아요?” 가난한 사람들은 왜 서울을 떠나지 못하는 것일까요? 이 물음에 대한 세 가지 현실을 함께 짚어보려 합니다.

1. 도시의 인프라는 '공동구매'다
지하철은 한 사람이 혼자 설치할 수 없습니다. 도서관도, 도로도, 공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모두는 여럿이 함께 살아야만 유지될 수 있는 비싼 설비입니다. 즉, 도시는 공동체의 자금으로 거대한 생활 인프라를 ‘공동 구매’한 결과물입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일수록 이런 ‘공공 기반 시설’의 혜택을 가장 절실하게 체감합니다. 대중교통으로 출퇴근하고, 공공도서관에서 공부하며, 보건소에서 건강검진을 받습니다. 작은 월세방에 살더라도 바로 바깥에는 넓은 공원과 거대한 시장, 병원 등이 있습니다. 이런 인프라는 시골에도 존재합니다. 하지만 그 밀도와 접근성이 다릅니다. 거리가 멀고, 운영이 불안정합니다. 소득이 적을수록 이런 도시의 ‘공공 자본’을 나누어 쓰는 것이 삶의 필수조건이 됩니다.

2. 값싸다고 장땡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서울은 비싸니까, 그냥 시골 가서 살아.” 하지만 이 말은 현실을 모르는 소리입니다. 집세는 쌀지 몰라도, 일자리는 없습니다. 병원도 멉니다. 대중교통도 불편합니다. 게다가 시골은 외지인에게 그리 호의적이지 않습니다. 오랜 연고 없는 사람이 내려가서 그 지역 사회에 편입되기란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결국 ‘싸다’는 이유만으로 시골을 택한 사람은, 외로움과 불편함, 단절에 시달리게 됩니다. 그래서 도시의 답답한 방 안을 떠나지 못하는 겁니다. 그 좁은 공간을 견딜 수 있는 건, 그 바깥에 ‘열려 있는 도시’가 있기 때문입니다.

3. 서울이 품고 있는 마지막 안전망
도시는 냉정합니다. 경쟁은 치열하고, 관계는 느슨하며, 생존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냉정한 시스템 안에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구조가 있습니다. 무언가를 함께 쓸 수 있는 시스템, 익명 속에서도 연결되는 가능성, 그리고 무엇보다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무대가 있다는 사실 말입니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에게 도시는 여전히 희망입니다. 그곳엔 최소한의 기회가 있고, 최소한의 연결망이 있고, 최소한의 안전이 있기 때문입니다. 서울은 누군가에게, 삶이 무너져도 마지막으로 붙잡을 수 있는 유일한 장소입니다. 끝까지 버틸 수 있는 단 하나의 무대입니다.

4. 가난을 이해하는 새로운 시선
“가난하면 당연히 더 싼 곳으로 가야 한다”는 말은, 어쩌면 가난을 모르는 사람의 시선입니다. 진짜 가난은 단지 돈이 부족한 상태가 아니라, 선택지가 줄어드는 상태입니다. 그들에게 도시는 비싼 곳이 아니라, 살 수 있는 조건이 가까스로 마련된 마지막 장소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서울을 떠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서울만이 그들에게 아직 버틸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이제 이런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왜 떠나지 않느냐”가 아니라, “떠날 수 없는 그 구조는 왜 만들어졌는가”라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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