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최악의 폭군) 위홍과 간통하고 음란했던 신라 51대 진성여왕

신라에서 가장 유명한 폭군은
통일신라시대 887년 즉위한
51대왕 진성여왕입니다.

진성여왕 때는 문헌상 기록된
한국 최초의 농민 반란
원종ㆍ애노의 난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진성여왕은 각간 위홍과
간통하였는데
위홍의 아내가
진성여왕의 유모였다고 하죠.

<삼국사기>에는
‘임금은 젊은 미남 두세 명을
몰래 불러들여 음란하게 지내고,
그들에게 요직을 주어
나라의 정사를 맡겼다.

이 때문에 아첨하고
총애를 받는 자들이 방자하였고,
뇌물을 주는 일이
공공연하게 행해졌으며,
상과 벌이 공정하지 못하고
기강이 문란해졌다.’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나라 안의 여러 주와 군에서
공물과 세금을 보내지 않아
창고가 비고 국가재정이 궁핍하였다’고
나와있는데요.

하지만 역시 진성여왕이
그렇게까지 폭군은
아니었다는 해석이 있답니다.

우선 이미 진성여왕 즉위 이전부터
신라는 멸망의 징조가
퍼지고 있었습니다.

진성여왕이 손을 쓰기엔
너무 늦은 상태였다는 거죠.

또한 진성여왕은 비록 좌절되었지만
최치원을 통해
국가개혁을 시도는 해보려고 했으며,
어떻게 해도 진골귀족들의 정치농단과
사회적 모순을 해결할 수가 없자

자신이 덕이 없기 때문이라며
조카에게 양위를 하고
스스로 물러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