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형 K2 전차 첫 공개"… 사막 수출, 어느 나라가 먼저 손 내밀까

유럽 전선에서 K2 전차의 이름이 울려 퍼지는 동안 현대로템은 조용히 다른 전장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섭씨 50도를 넘나드는 불볕더위, 모래바람이 엔진 속까지 파고드는 사막 지형 — 유럽형 K2로는 버텨내기 힘든 그 환경을 정면 돌파하기 위한 전차가 드디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중동형 K2, 이른바 K2ME입니다. 과연 이 전차는 어느 나라의 사막을 누비게 될까요?

지금부터 그 퍼즐을 하나씩 맞춰보겠습니다.

창원에서 열린 '출하식' — 그 현장에 중동 무관들이 왔다


지난 3월 26일, 경남 창원 현대로템 공장에서 이례적인 행사가 열렸습니다.

바로 '중동형 K2 전차 출하식'입니다. 행사에는 방위사업청, 국방기술진흥연구소, 지자체 관계자들이 참석했는데, 특히 눈길을 끄는 참석자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중동 국가 무관부 인사들입니다. 무관(武官)이란 외국에 파견된 군사 외교관으로, 해당 국가의 군 수뇌부와 직접 연결된 존재입니다.

이들이 창원까지 날아와 K2ME 실물을 눈으로 확인했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물밑 협상이 상당히 무르익었다는 강력한 신호로 읽히는 것이죠.

단순한 기술 시연회였다면 굳이 외국 무관을 초청할 이유가 없습니다.

현대로템이 이번 출하식을 사실상 '수주 외교의 장'으로 활용했다는 해석이 업계 안팎에서 나오는 이유입니다.

50도에서도 식지 않는다 — K2ME의 핵심 개량 포인트


K2ME가 기존 K2와 가장 크게 다른 점은 혹서(酷暑) 대응 능력입니다.

한국형 전차는 기본적으로 한반도의 기후, 즉 사계절이 뚜렷하고 여름에도 평균 기온이 30도 안팎인 환경을 기준으로 설계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중동은 다릅니다. 아랍에미리트(UAE), 사우디아라비아, 이라크 같은 나라는 한여름 기온이 50도를 넘기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이 온도에서 기존 파워팩은 과열로 성능이 급격히 저하되고, 유압 시스템은 오작동 위험이 높아집니다.

현대로템은 이 문제를 정면으로 해결했습니다.

냉각 성능을 강화한 파워팩과 냉각 하우징, 포탑 보조냉방장치 등 총 5종의 성능개선 부품이 새롭게 투입됐습니다.

여기에 유압유 냉각장치와 유연소재 연료탱크까지 추가해 극한의 열기 속에서도 기동성과 생존성을 동시에 끌어올렸습니다. 사막의 열기를 맞받아치도록 전차 자체를 재설계한 것입니다.

국산화율을 더 높인다 — 수출 족쇄를 끊어내는 전략


K2 전차는 이미 국산화율 약 90%를 자랑하는 고도의 토종 플랫폼입니다.

그런데 현대로템은 여기서 더 나아가려 합니다. 남은 10%의 외산 부품이 수출의 발목을 잡아왔기 때문입니다.

방산 수출에서 부품의 원산지는 단순한 기술 문제가 아닙니다.

특정 부품이 미국이나 독일산이라면, 해당 국가의 수출 허가(Export License)를 별도로 받아야 합니다.

까다로운 조건이 붙거나, 정치적 이유로 허가가 지연되거나 거부될 수도 있는 것이죠.

실제로 과거 한국 방산 수출 협상에서 외산 부품 문제로 계약이 지연된 사례가 있었습니다.

현대로템은 이번 K2ME 개발을 계기로 국산화율을 한 단계 더 끌어올리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협력사와 함께하는 '상생성과공유제'도 이 전략의 일환입니다.

국산화 부품 적용으로 절감된 비용의 일부를 협력사에 돌려주는 방식으로, 단순히 부품 하나를 바꾸는 게 아니라 국내 방산 생태계 전체를 함께 키우겠다는 구상입니다.

가장 유력한 후보들 — UAE, 사우디, 이라크를 주목하라


그렇다면 K2ME의 실제 고객은 어느 나라일까요?

현재 업계에서 가장 유력하게 거론되는 국가는 아랍에미리트(UAE), 사우디아라비아, 이라크입니다.

UAE는 이미 한국 방산과 깊은 인연을 맺고 있는 나라입니다.

천궁-II 지대공 미사일 체계를 도입했고, 비호복합 단거리 방공 시스템 수출도 논의되어 왔습니다.

군 현대화에 적극적이고 예산도 풍부한 만큼 K2ME의 가장 뜨거운 잠재 고객으로 꼽히는 것이죠.

사우디아라비아 역시 '비전 2030' 국방 자립화 정책 아래 다양한 외국 무기체계를 검토하고 있으며, 이라크는 노후화된 기갑 전력을 대체할 현대적인 주력전차가 절실한 상황입니다.

세 나라 모두 사막과 고온이라는 공통 조건을 갖고 있어, K2ME의 개량 방향과 정확히 맞아떨어진다는 평가입니다.

법이 바뀌었다 — 실물 공개가 가능해진 배경


이번 출하식이 가능했던 데는 법 개정이라는 숨은 공신이 있습니다.

지난해 7월 개정된 방위사업법이 시행되면서, 방산업체도 방사청 승인 하에 연구개발 및 홍보 목적의 장비를 자체 생산·보유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이전까지는 방산업체가 자체적으로 수출 홍보용 실물 차량을 보유하기 어려웠습니다.

군이 보유한 전력을 빌려 전시하거나, 축소 모형으로 대신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보유한 K9

법이 바뀌면서 현대로템은 K2ME 플랫폼을 직접 생산해 출하식이라는 공개 행사를 열 수 있게 됐습니다.

단순한 행정적 변화처럼 보이지만, 이는 한국 방산 수출 전략의 지형을 바꾸는 변화입니다.

이제 방산업체들은 실물 차량을 앞세워 해외 바이어를 초청하고, 현장에서 직접 보여주는 본격적인 '세일즈 외교'가 가능해진 것입니다.

K2ME, 중동 시장의 게임체인저가 될 수 있을까


K2ME의 공개는 한국 방산 역사에서 작지 않은 이정표입니다.

폴란드를 교두보로 유럽 시장에 발을 내딛은 K2가 이번에는 중동이라는 전혀 다른 지형에 도전장을 내민 것이죠.

유럽과 중동은 기후도, 전략 환경도, 구매 결정 구조도 완전히 다른 시장입니다.

K2ME는 그 차이를 기술로 정면 돌파하려는 현대로템의 승부수입니다.

이용배 대표가 밝혔듯, 이번 개발 성과는 글로벌 안보 환경의 급변 속에서 K-방산의 저변을 넓히려는 전략적 포석이기도 합니다.

유럽에서 증명된 전투력에 중동 맞춤형 내열 성능까지 갖춘 K2ME — 이 전차가 언제, 어느 나라 사막 위에 한국산 履帶(궤도)를 새기게 될지, 방산 업계의 시선이 창원에서 중동으로 향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