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대 15조원대 과징금이 거론되는 이른바 '국고채 전문딜러(PD) 입찰 담합'에 관한 금융권의 이목이 쏠린 가운데, 일찌감치 4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에는 2720억1400만원의 담보인정비율(LTV) 정보교환 과징금이 부과돼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국고채 사건은 공정거래위원회의 심의 단계인 반면 LTV 사건은 처분이 확정돼 법원의 판단을 앞두고 있다.
우리은행이 4대 은행 가운데 처음으로 법정 공방에 나설 예정이었지만 첫 변론기일은 이달 27일에서 9월17일로 변경됐다. LTV를 공정거래법상 거래조건으로 볼지, 은행 간 정보교환이 실제 대출 경쟁을 제한했는지가 핵심 쟁점이다. 우리은행 사건에서 드러날 재판부의 문제의식은 국민·신한·하나은행이 제기한 과징금 취소소송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28일 금융권에 따르면 공정위는 26~27일 국고채 PD 15곳의 입찰 담합 사건에 대한 전원회의 심의를 진행했다. 전원회의는 9월2일 한 차례 더 열릴 예정이다. 당초 27일 오후 3시40분 서울고법 행정7부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우리은행의 LTV 정보교환 시정명령 등 취소소송 첫 변론은 9월17일로 변경됐다.
공정위 '대출경쟁 제한' vs 은행 '단순 리스크 관리'

공정위는 1월 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이 LTV 정보를 교환해 부동산담보대출 시장의 경쟁을 제한했다며 총 2720억14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은행별 과징금은 하나은행 869억3100만원, 국민은행 697억4700만원, 신한은행 638억100만원, 우리은행 515억3500만원이다.
4대 은행은 3월 공정위 처분에 불복해 각각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우리은행 사건은 서울고법 행정7부가 맡았고 국민·신한·하나은행 사건은 행정6-3부에 배당됐다. 재판부는 다르지만 처분에 적용된 법률과 공정위의 경쟁제한 논리는 공통된다.
쟁점은 LTV가 공정거래법상 정보교환 담합의 대상이 되는 '거래조건'에 해당하는지다. 공정거래법 제40조 제1항 제9호는 사업자들이 가격이나 생산량, 거래조건 등의 정보를 교환해 일정한 거래 분야에서 경쟁을 실질적으로 제한하는 행위를 금지한다. 2021년 12월30일 시행된 개정 공정거래법에 도입된 조항으로 이번 사건은 해당 규정을 적용해 제재한 첫 사례다.
공정위는 4개 은행이 2022년 3월부터 2024년 3월까지 부동산 종류와 소재지별 LTV 정보를 교환하고 이를 각 은행의 기준 변경에 활용했다고 판단했다. 교환 대상에는 가계와 기업의 부동산담보대출에 적용되는 최대 7500개의 세부 LTV 정보가 포함됐다.
공정위에 따르면 은행들은 자체 LTV가 경쟁 은행보다 높으면 이를 낮춰 담보 회수 위험을 줄이고, 반대로 낮으면 영업 경쟁력을 고려해 상향했다. 은행별 LTV 차이가 축소되면서 차주들이 더 높은 한도를 제시하는 은행을 선택할 기회가 줄었다는 게 공정위 판단이다.
공정위는 2023년 기준 4개 은행의 평균 LTV가 정보교환에 참여하지 않은 은행보다 7.5%p 낮았다고 분석했다. 공장과 토지 등 비주택 담보에서는 격차가 8.8%p로 확대됐다. 시장점유율이 약 60%인 4개 은행이 비슷한 수준의 LTV를 적용하면서 중소기업과 개인사업자 등이 추가 담보를 제공하거나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은 신용대출을 이용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우리은행은 LTV가 대출 가격이나 고객과 합의하는 거래조건이 아니라 담보 회수 가능성을 관리하기 위한 내부 위험관리 기준이라는 입장이다. 실제 대출한도도 LTV만으로 결정되는 게 아니라 차주의 신용도와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담보 종류, 은행별 여신정책 등을 종합해 산출된다고 주장한다.
경쟁 은행의 LTV를 참고한 것도 대출한도를 공동으로 결정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거래 사례가 부족한 비주택 담보의 적정 가치를 판단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맞선다. LTV를 낮추면 대출 실행액과 이자수익이 함께 감소하는 만큼 은행이 정보교환을 통해 얻을 경제적 유인도 없었다는 논리다.
우리은행 스탠스, 3개 은행 소송 '가늠자'

우리은행이 LTV의 거래조건 해당성이나 정보교환의 경쟁제한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판단을 받아내면 나머지 3개 은행도 공통 법리를 활용할 수 있다. 국민·신한·하나은행에 부과된 과징금은 총 2204억7900만원이다. 공정위가 개정법을 적용해 구성한 제재 논리 전반이 흔들릴 수 있는 셈이다.
반면 법원이 정보교환의 위법성은 인정하고 우리은행의 관련매출 산정 방식만 문제 삼는다면 다른 은행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수 있다. 은행마다 정보를 교환한 횟수와 내부 LTV 조정에 활용한 방식, 과징금 산정에 포함된 대출 범위가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은행 사건의 판단이 다른 재판부를 법적으로 구속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공통 쟁점에 대한 첫 법원의 판단인 만큼 국민·신한·하나은행의 주장 구성과 증거 제출 방향에는 영향을 줄 가능성이 크다. 우리은행이 패소하면 공정위도 해당 판단을 다른 소송의 근거로 활용할 수 있다.
공정위가 한 차례 재심사를 거쳐 제재를 확정했다는 점도 법정 공방을 키우는 요소다. 공정위 전원회의는 2024년 11월 심의 과정에서 새롭게 제기된 주장과 관련한 사실관계를 추가로 확인하라며 재심사를 명령했다. 공정위는 2025년 2월 추가 현장조사를 실시하고 심사보고서를 보완한 뒤 올해 1월 제재를 확정했다.
법원 판단은 4개 은행의 과징금뿐 아니라 은행권의 경쟁사 정보 활용 관행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공정위 처분이 유지되면 LTV뿐 아니라 담보별 대출한도와 승인 기준 등 비가격 정보의 교환도 담합 규제 대상이 될 가능성이 커진다. 은행들이 위험관리 목적으로 활용해 온 경쟁사 벤치마킹도 정보의 공개 여부와 교환 방식, 활용 범위에 따라 준법감시 심사를 강화해야 한다.
반대로 처분이 취소되면 공정위가 내부 위험관리 정보를 거래조건으로 보고 정보교환 자체를 제재할 수 있는 범위가 좁아질 수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은행별 정보교환 횟수와 활용 방식은 다르지만 LTV가 거래조건에 해당하는지, 정보교환이 경쟁을 제한했는지는 4개 은행에 공통된 쟁점"이라며 "우리은행 사건에서 재판부가 어떤 자료와 논리에 주목하는지에 따라 다른 은행들도 주장과 증거 제출 방향을 조정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류수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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