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피노 이야기, 사이다 액션으로 돌아왔다

▲ 영화 <귀공자> ⓒ (주)NEW

[양기자의 영화영수증 #769] <귀공자> (The Childe, 2023)

글 : 양미르 에디터

한국인(Korean)과 필리핀인(Filipino)의 혼혈을 뜻하는 '코피노'(Kopino).

추산되는 인구만 8만 명에 달하지만, 그들 중 상당수는 아버지를 모르는 경우가 많다.

다수의 한국인 남성이 임신 사실을 알고, 필리핀에 아이와 어머니를 버리고 귀국했기 때문.

현지에서 자란 코피노들은 극심한 가난과 냉대 속에 자랐고, 이는 필리핀에서도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올해로 개봉 10주년을 맞은 <신세계>를 연출한 박훈정 감독이, 신작으로 <마녀>의 세 번째 이야기가 아닌, '코피노'의 사연을 소재로 한 액션 영화를 만든 건 의외로 신선한 결정이었다.

지금껏 거대 자본이 들어간 한국 상업 영화에서 '코피노' 캐릭터가 주연을 맡은 적은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

코피노 청년 '마르코'(강태주)는 병든 어머니와 지내고 있는 복싱 선수로, 어머니의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서라면 가릴 것이 없었다.

돈을 부풀리기 위해 복싱 시합에서 받은 모든 돈을 '프리미어리그' 첼시가 패하는 역배당 베팅을 시도했지만, 결과는 '꽝'이었다.

어느 날, 평생 본 적도 없는 '마르코'의 아버지가 자신을 찾고 있다는 소식에, 그는 큰 의심 없이 한국행 비행기에 오른다.

한국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 '마르코' 앞에 홀연히 나타난 정체불명의 남자 '귀공자'(김선호)는 자신을 '친구'라고 소개한 후, '마르코'에게 위기가 올 것임을 경고한다.

그렇게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귀공자'를 중심으로, '마르코'를 향한 광기의 추격이 시작된다.

본래 <귀공자>는 <슬픈 열대>라는 가제로 시작된 프로젝트였다.

하지만 영화를 찍다 보니 "슬픈 영화"가 아니라 판단한 박훈정 감독은 영화의 제목을 캐릭터의 이름으로 바꿨다.

그가 지금까지 했던 영화에서 나온 언어유희가 곳곳에 등장하니(어지간하면 웃음이 잘 안 나오는 언론 시사회에서도 웃음이 가끔 들릴 정도였다), 작품의 장르는 블랙 코미디처럼 느껴졌다.

여기에 영화의 주인공 '귀공자'는 <마녀> 시리즈의 초능력 캐릭터는 아니라지만, 인간이 아닌 유머 섞인 '터미네이터'(아놀드 슈왈제네거의 T-800이 아니라, 액체 금속으로 이뤄진 T-1000 같은 존재)였다.

영화적 허용을 너무나 많이 가미한 나머지, 높은 곳에서 떨어져도 '슈퍼 히어로'처럼 아무런 부상 없이 뛰어다니거나, 한바탕 전투를 치른 후에야 총을 맞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귀공자'의 모습은 박훈정 감독의 '판타지' 그 자체였기 때문.

김선호에게 <시계태엽 오렌지>(1971년) 속 '알렉스'(말콤 맥도웰)를 참고(특히 미소를 짓는 부분에서)하라고 했던 박훈정 감독답게, '우유' 대신 '콜라'를 마시는 '귀공자'는 여러 캐릭터가 뒤섞인 독특함을 보여줬다.

이런 '귀공자'의 복합적인 캐릭터 설정은 영화의 전체적인 호흡 변화와도 연결됐다.

일례로, '마르코'를 데려온 재벌 2세이자, 사학재단의 이사로 머리보다 몸이 먼저 반응하는 인물, '한 이사'(김강우)가 총질을 서슴없이 하는 모습은 암청색 누아르의 한 장면처럼 길게 꾸며진다.

자칫 심각해지려는 상황에서, '귀공자'가 등장하면서 벌어지는 유머는 극의 방향을 흔들어 놓는다.

이는 <귀공자>의 대표적인 '호불호 포인트'로, 정통 느와르를 기대한 관객이라면 한숨이 날 수 있다.

물론, 이런 것이 취향인 관객이라면, 취향을 저격할 수 있다.

그나마 엇갈린 '호불호 포인트'가 잠시나마 만나는 순간이 있다.

<범죄도시> 시리즈에서 마동석의 주먹이 주는 호쾌함처럼, <귀공자>의 클라이맥스는 우리 사회의 부조리함에 답답함을 느끼고 있는 관객에게 한 줄기 숨통을 제공했다.

"차별받는 이들이 차별하고, 무시하는 이들에게 한 방 먹이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는 박훈정 감독의 의도처럼, <귀공자>는 코피노 캐릭터가 처한 현실을 직접(필리핀 내 코피노 지원 시설도 작품에 등장한다) 보여주면서, 이를 역이용하는 영민함을 보여줬다.

2023/06/08 메가박스 코엑스

귀공자
감독
박훈정
출연
김선호, 강태주, 김강우, 고아라
평점
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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