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집 4채 중 1채 ‘25년 넘은 아파트’…콘크리트 흉물 방치
- 단독주택 빈집, 원도심 몰렸는데
- 공동주택 빈집은 지역 전역 퍼져
- 영도 영선아파트 등 슬럼화 진행
- 재개발 조합 엎어지길 수차례
- 정든 주민 떠나고 외부자본 차지
- 누수·노후 등에 남은 자도 고통
흔히 빈집하면 산복도로 근처 경사지에 밀집한 단독주택을 떠올리지만, 아파트와 빌라 등 노후 공동주택도 걷잡을 수 없이 비어가고 있다. 특히 부산 전체 빈집 4채 중 1채가 1999년 이전에 지은 아파트(25.6%)라는 점에서 노후 아파트 빈집 문제가 앞으로 더욱 심각해질 전망이다.
▮쏟아지는 노후 공동주택 빈집
22일 통계청 주택총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부산 빈집은 11만4245호로 2018년(9만9458호)에 비해 5년새 14.8% 증가했다. 형태 별로 보면 전체의 81.4%(9만3073호)가 공동주택이었다. 공동주택은 아파트 다세대 연립 등을 말한다. 부산의 빈집은 10채 중 8채가 공동주택 형태인 셈이다. 단독주택 빈집(1만9175호)은 16.7%다.
문제는 공동주택의 빈집도 노후화가 갈수록 심해진다는 점이다. 부산 빈집을 건축연도별로 보면 1989년 이전에 지은 빈집은 총 3만7245호다. 이중 단독주택 1만8384호, 공동주택은 1만7697호로 엇비슷한 수준이다. 그러나 1999년 이전에 지은 빈집(6만1280호)으로 범위를 넓히면 공동주택 비율은 66%(4만564호)로 폭증하고, 단독주택은 31%(1만9043호)로 비중이 크게 떨어진다.
우리나라 아파트 재건축 연한이 30년이다. 오래된 빈집일수록 슬럼화와 누수, 붕괴 등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1999년 이전에 지어져 건물 연한이 25년 이상인 공동주택 빈집은 향후 수 년 내 단독주택 빈집만큼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또 단독주택 빈집은 주로 원도심 5개 구에 집중된 데 비해 공동주택 빈집은 부산 전역에 고루 퍼져있다. 1989년 이전에 지은 공동주택 빈집은 부산진구(2129호)가 가장 많고 ▷남구(2061호)▷사하구(1913호)▷수영구(1272호)▷동구(1235호)가 뒤를 이었다. 1999년 이전에 지은 공동주택 빈집은 해운대구(6392호)가 압도적이고 뒤를 이어 ▷사하구(4675호) ▷북구(3661호) ▷부산진구(3613호) ▷사상구(3256호)인 것으로 나타났다.
▮관광지 옆 흉물
사정이 이렇다 보니 연간 100만 명 이상이 찾는 부산 대표 관광지 앞에도 빈집이 가득한 오래된 아파트가 콘크리트 흉물처럼 방치된다. 흰여울문화마을과 영선아파트다. 실제로 지난 20일 오전 취재진이 흰여울문화마을 일대를 둘러봤더니 골목과 카페는 관광객으로 북적였지만, 영선아파트 일대는 쥐 죽은 듯 조용했다. 마을과 불과 10여 m 떨어진 영선아파트는 1969년 270세대 규모로 지어져 현재 2채만 남기고 모두 빈집이다. 아파트 외벽 발코니 바닥은 콘크리트가 절반이 부서진 채 허공에 매달려 있는 등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상태였다.
바로 옆 영선 미니 아파트(1977년 준공)도 246세대 가운데 120여 세대가 빈집이다. 남은 주민은 두려움과 불편함을 호소했다.
주민 김 모(70대) 씨는 “가장 힘든 것은 집에 물이 샐 때다. 천장에 물이 새도 건물 외벽에서 빗물이 새는 건지 윗집 수도관이 터진 건지 알아야 고치는데 윗집 소유주가 누군지도 모르니 고치는게 하세월이다”며 “다른 집 사정을 들어보니 빈집 때문에 누수가 생겨도 책임 안 지는 소유주가 부지기수”라고 토로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주민 불편과 일대 슬럼화는 빠르게 진행하지만 노후 공동주택은 수도권과 달리 개발수요가 적어 재개발도 지지부진하다. 지역주택조합이 생겼다 없어지길 여러 차례고, 관련 법적 분쟁이라도 시작되면 사업 추진은 요원해진다. 그사이 버티다 못한 주민은 정든 동네와 이웃을 떠나고 그 빈자리는 외부 자본이 차지한다. 실제 거주자가 줄어들수록 유지·관리 사각지대가 넓어져 건물 상태가 급속도로 나빠지고 이는 다시 주민을 떠나게 만드는 악순환의 반복이다.
▮소유주 책임 강화해야
전문가는 우선 빈집 소유주의 책임과 의무를 강화해 지속적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공공 정비사업 또는 민간 재개발 사업 등에 앞서 최소한의 정주 여건을 유지하는 게 급선무이기 때문이다. 도시계획 전문가인 한국해양대 강영훈 산학교수는 “우리나라는 빈집을 방치해도 모르쇠로 일관하면 그만이라는 인식이 만연하고 이를 관대하게 봐준다. 지속가능한 지역 공동체와 공적 인프라가 있기 때문에 사유재산도 가치를 지닐 수 있는 것이다”며 “빈집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고 공동체 유지에 손해를 끼치는 행위를 놔두는 게 아니라 효과적인 인센티브와 제재를 통해 참여를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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