겹치지만 환승은 불가

이 사진을 보라. 최근 업데이트 된 카카오맵인데, 역을 클릭하면 다음 지하철이 얼마 후에 오는지 실시간으로 볼 수 있다.

신기해서 이리저리 둘러보는데, 어라? 대청역을 눌렀더니 수도권 전철 3호선 열차 정보만 나온다.지도로 보면 수인분당선도 대청역을 지나가는데?

알고보니 대청역은환승역이 아니라 수인분당선 열차가 정차하지 않고 있었다. 근데 지도상으로 노선이 겹치는데 왜 시민들 불편하게 환승역으로 안 만들고 있는 걸까? 유튜브 댓글로 "대청역은 왜 환승역이 아닌지 궁금하다”는 의뢰가 들어와 취재했다.

대청역을 환승역으로 만들지 않은 이유 첫째, 바로 3호선과 수인분당선의 표정속도 차이. 표정속도는 열차가 운행할때 정차 시간을 포함한 전체 운행 시간을 이동 거리로 나눈 값이다. 쉽게 말해 열차의 실질적인 운행 속도를 뜻한다.

정차하는 역이 많을 수록, 표정속도는 느려질 수 밖에 없다. 그런데 3호선과 수인분당선은 서로 목표로 하는 표정속도가 다르다.

[한우진 교통평론가 (음성대역)]

3호선은 도시 내 교통을 담당하는 도시철도, 분당선은 도시 간 교통을 담당하는 광역철도입니다. 광역철도는 먼 거리를 빠르게 가는 것이 중요해 이를 위해서는 표정속도를 높여야 하고, 전철 차량의 최고속도는 같기 때문에 표정속도를 높이려면 정차역을 줄여야 합니다.따라서정차역수를 줄이기 위해 대청역을 짓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광역철도인 수인분당선은 표정속도를 높이기 위해 3호선 대청역 부근에 역을 따로 만들지 않았고, 이에 따라 대청역에서 3호선-분당선 환승 자체가 불가능해진 것.

원래 3호선은 서울 지하철 1기 시절 구파발에서 양재역을 잇는 노선으로 지어졌다. 그러다 개포동과 대치동에 주거단지가 생기면서 연장 논의가 시작됐다.

처음엔 개포동을 거치는 것으로 계획됐지만, 13대 대선 때 노태우 후보의 공약에 따라 대치동을 지나는 것으로 변경됐다.

시민들을 최대한 태우기 위해 역을 많이 짓는 도시철도 3호선과 달리, 수인분당선은 광역철도라 첫 설계 당시부터 정차역수를 줄여 빠르게 서울과 분당을 연결하는 것이 목표였다.

이때 3호선을 놓친 개포동 주민들을 위해 개포역이 분당선 노선에 반영됐다. 그러면서 분당선은 자연스럽게 대청역을 지나가게 됐다. 하지만 광역철도인 분당선은 표정속도를 높여야 했기 때문에 3호선 대청역과 환승할 역은 따로 만들지 않았다.

수인분당선은 대청역 바로 아래를 지나가긴 하지만, 3호선보다 훨씬 더 깊은 곳을 통과하기 때문에3호선 승강장에서 눈으로 볼수는 없다.

두 번째, 비용 대비 편익.

[한우진 교통평론가 (음성대역)]

정차역수를 줄이는 게 중요하더라도 꼭 필요한 역이라면 지어야겠지만 대청역 앞뒤에는 도곡역, 수서역이 모두 3호선 환승역이기 때문에 굳이 환승역을 또 만들 필요가 없었습니다. 가까운 곳에 대체 가능한 역이 있는데 굳이 역을 여러 개 지을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대청역에서 3호선을 타고 두 정거장만 가면 수서역에서 수인분당선으로 환승할 수 있다. 반대 방향으로 가도 세 정거장만 가면 도곡역에서 환승이 가능하다.

아니면 아예 대청역에서 나와 도보 직선거리로 약 600m, 10분 정도만 걸으면 수인분당선의 대모산입구역에 갈 수 있다.이런 상황에서 굳이 돈 들여가며 대청역을 환승역으로 만들 필요가 없었다고.

그리고 기존 역에환승 시스템을 만드는 자체가 기간과 비용이 많이 드는 공사다. 기존 지하 구간에 환승역이 신설된 사례로는 1호선의 동묘앞역이 있는데, 6호선과 환승을 위해 새로 만들어졌다. 이 동묘앞역의 사업비는 654억, 사업기간은 4년이 걸렸다.

그런데 1호선은 가장 먼저 지어진 노선이라 깊이가 얕은데,더 깊은 수인분당선의 대청역 신설은 비용이 더 많이 들게 뻔한 상황.

취재하다가 알게 된 건데, 대청역처럼 노선이 겹치지만 환승역은 아닌 곳들이 꽤 있다. 먼저, 1호선과 2호선의 시청역 바로 아래쪽으로 GTX-A가 지나간다. 그리고 6호선과 경의중앙선의 효창공원앞역도 공항철도가 지나간다. 송정역도 5호선과 공항철도가 지나지만 환승역이 아니다.

이 역들에 환승 체계를 안 만드는 이유도 바로 GTX와 공항철도의 생명인 표정속도를 높이기 위해서다. 그리고 이 역들도 역시 한 정거장씩만 이동하면 환승역이 나온다.

시민 입장에선 바로 환승을 할 수 있으면 좋을텐데, 열차의 속도를 높이고 혈세 낭비를 줄이기 위해 따로 환승역을 만들지 않는다니, 대청역 등을 이용할 때는 조금 불편해도 다른 환승 방법을 고민해보는 것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