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기에 돌연 뷔페 사업 뛰어들었는데.. 집 두채에 전재산 날린 국민엄마의 눈물

오랜 세월 ‘국민 엄마’로 불려온 김해숙.

따뜻한 연기, 단단한 존재감으로 기억되는 배우지만, 그 뒤엔 숨겨진 고비들이 있었다.

지금처럼 끊임없이 다작하는 배우가 되기까지, 40대를 오롯이 빚 갚는 데 보냈다.

누구보다 깊은 감정 연기를 펼칠 수 있었던 이유도, 인생의 바닥을 겪었기 때문이었다

30대 중반, 연기에 대한 확신이 흔들렸다. 배우로서 길을 잠시 멈춘 김해숙은 음식 사업을 시작했다.

프랜차이즈가 아닌 개인 뷔페였다.

하지만 장사에 대해선 아는 게 없었다. 운영이 어려워졌고, 밀린 임대료와 늘어나는 빚에 이자는 쌓여갔다.

상황이 악화됐을 때 접었어야 했지만, 그는 ‘언젠가 잘 되겠지’라는 마음으로 버텼다.

결국 사채까지 손을 대야했다. 방송도 중단하고 사업에 매달렸다.

손님과 말다툼하는 자신의 모습에 놀라 가게 문을 닫았다.

그때 날아간 건 단지 사업만이 아니었다. 집 두 채, 그리고 찬란했던 40대 시절까지..

방송국 식비 1500원을 계산하기 위해 동전을 모았고, 초인종 소리에도 숨었다.

채권자가 사람을 끌고 찾아온 날은 문 뒤에서 온몸이 굳었다.

김해숙은 그 시간을 “전화벨 노이로제와 함께 한 5년”이라고 표현했다.

남편은 그 시기에 세상을 떠났고, 홀로 빚을 감당해야 했다.

일일 점원부터 행사 무대까지, 가리지 않고 일했다. 차 안에서 울고, 길 위에서 버텼다.

그럼에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힘겨운 실패였지만, 그 안에서 김해숙은 다시 배우로 설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

“지금 같은 마음이었다면, 배우는 연기로 끝을 봐야 한다는 걸 더 일찍 알았을 텐데…”라고 말하면서도 “그 시간을 지나 오늘의 내가 있다”고 덧붙인다.

그 이후 김해숙은 더욱 바쁘게 살았다.

“돈을 많이 벌고 싶어서 작품을 많이 하는 거 아니냐”는 질문에도 “아무 대가 없이 하라면 안 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일로 복구한 삶이었기에, 일의 소중함도 절절히 안다.

뷔페 음식을 지금도 먹지 못한다고 말하면서, 그 시절의 흔적은 여전히 몸 어딘가에 남아 있다고 했다.

하지만 다시 카메라 앞에 섰을 때, 그 모든 무게가 연기에 스며들었다.

‘장밋빛 인생’ 속 어머니, ‘하얀 거짓말’의 냉혹한 신 여사, ‘슈룹’의 대비까지…

무게 있는 인물의 내면을 자연스럽게 그려내는 힘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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