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딧소설) 싱글벙글 지옥에 떨어진 남자.txt
천국과 지옥을 가로짓는 신의 심판 따위는 그저 미신이었다.
신은 어린 양들의 죄악에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
"뭐, 모든 이들은 죄를 짓기 마련이지."
사후 세계에는 지옥 대신 각 성경의 7대 죄악을 상징하는 '천국의 집' 들이 있었다.
첫 번째로 신과 발걸음을 맞춰 들어간 곳은 '색욕의 집'이었다.
'집'이란 말은 그리 정확한 명칭이 아니었다.
차라리 캠프에 가까운 그곳은 수만평을 넘어서는 장엄한 산림 속에 이루어져 있었다.
끝없이 펼쳐진 새하얀 모래 사장-당연히도, 누드비치였다-은 사랑을 나누는 연인들로 가득차 있었다.
멀리멀리 뻗은 길에는 간간히 흩뿌려지듯 오두막들이 놓여 있었는데, 오르가즘에 빠진 신음이 커다란 합창 소리처럼 세어나왔다.
선명하게 갈라진 복근을 가진 남자와 풍만한 가슴을 가진 여인이 나와 신의 존재를 눈치 채지도 못하고 서로를 간질이고 낄낄거리며 지나쳐 갔다.
"어때?" 열 아홉명의 남녀가 유희를 즐기는 샴페인 욕조를 지나칠 때 쯤, 신이 내게 물었다.
머리 위로는 청소용품과 대걸레를 껴안고 통통한 아기 천사가 날아가고 있었다.
"색욕은 인기있는 죄악 중 하나지."
슈퍼모델같은 연인 한 쌍이 지나치는 것을 흘깃 바라보며, 나는 그 이유를 가늠할 수 있었다.
"여기서는 네가 원하는 무엇이든 될 수 있어. 성별이고 외모고. 이 곳에서는 어떤 도착증도 터부시되지 않고, 어떤 욕망도 거부되지 않아."
꽤나 매력적이었다.
그러나 앞으로의 영원을 경정지을 선택을 내릴 정도로 확신이 들지는 않았다.
"다른 곳들도 한 번 보지요," 신에게 말했다.
우리는 '탐욕의 집'으로 옮겨갔다.
호화로움을 뽐내는 수많은 맨션들이 열을 지어 서로를 과시하였다.
처음 들어간 탐욕의 집은 너무나 커서 내 고향 동네를 가득 채우고도 남을 크기의 침실이 딸려있는 맨션이었다.
탐욕의 집은 한 순간 알프스 산맥을 배경으로 거대한 포도밭이 딸린 프랑스식 저택이 되었다가,
또 다음 순간에는 숨을 멎게 하는 절벽을 등지고 서있는 따뜻한 남국의 해안과 현대적인 맨션이 되어 나를 맞이하는가 싶었고,
감탄을 채 삼키기도 전에 황소가 들어가고도 남을 커다란 화로가 활활 타오르는 콜로라도의 스키 샬레로 변하고는 하는 것이었다.
탐욕의 집은 하나같이 다양한 이탈리아 스포츠카와 롤스로이스로 가득찬 앞마당이 붙어있었고, 보트나 헬리콥터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네가 원하는 물건은 여기 다 있어," 신이 내게 설명해주었다.
"네가 원하는 건 다 가질 수 있는 너만의 세계지. 호프 다이아몬드가 가지고싶었어? 네 전용 순금 헬리콥터를 타고 워싱턴으로 날아가서 스미소니안한테서 사면 끝이야. 아니다, 그냥 스미소니안을 사도 되고."
역시나 매력적인 속삭임이었다.
그러나 다른 집들을 좀 더 둘러보기로 나는 결정했다.
다음은 폭식의 집이었다.
최고 중의 최고의 음식만으로 가득찬 테이블과 테이블의 행진!
아름다울 정도로 알맞게 구워진 미디엄 레어 스테이크와 버터를 듬뿍 얹은 랍스터 꼬리,
신선한 생굴과 세계 최고의 레스토랑 선반 가장 깊은 곳에 숨겨져 있던 먼지 쌓인 이국의 와인들!
폭식의 집에서는 모두가 한 손에 샵페인 잔을 들고 테이블 가까이 소파에 누워, 끊임없이 탐식하고 있었다.
아무리 베어 먹어도 음식들은 줄어들지 않았다.
그들이 먹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입안이 침으로 가득 차올랐다.
"다른 집들의 음식은 폭식의 집 요리와 비교하면 톱밥만도 못하지," 신이 내게 말했다.
"폭식의 집을 즐기기 전까지는 진짜 천국을 봤다고 말할 수도 없어."
나는 고개를 가로 저었고, 계속 나아갔다.
나태는 예상했던 그대로였다.
세계에서 가장 부드럽고 푹신한 매트리스의 바다와 '공주와 완두콩' 동화 속 이야기는 하찮게 느껴지게 만들 천국의 배게와 쿠션이 쌓여있었다.
천사들조차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날개를 쉬이기 위해 나태의 집을 방문했다.
그곳의 천조각은 천사들조차도 흐물흐물 녹여버리는 듯 보였다.
분노의 집은...
사실, 내가 생각했던 지옥도와 가장 비슷했다.
불꽃, 채찍질, 고문, 유황...
다만 이곳에서, 고문당하는 것은 죽은 영혼들이 아니었다.
현생에서 만든 모든 적들을 손끝에서 놀리는 이들은 악마가 아니라 바로 그 영혼들이었다.
"많이들 자기 아빠를 고르고는 하지," 신이 내게 말했다.
"전반적으로 부모한테 복수하는 사람들이 많아. 왜 있잖아, 그런거. 물론 꼭 가족들만 고르라는 법은 없어. 지상에서 누가 네 승진 기회를 빼앗아 갔어? 여기서 되갚는 거지."
다음으로 우리는 시기의 집에 도착했다.
그곳은...사실, 원래 세계의 집과 많이 비슷해 보였다.
"들어가, 들어가." 신이 문을 향해 손을 훼훼 치며 말했다.
나는 문고리를 잡고 걸음을 내딛었다.
그곳에는...에밀리가 있었다.
그녀는 내게로 달려와 내 목 둘레에 팔을 감고 작게 입맞추었다.
"어서와, 허니."
나는 고개를 돌려 신에게 눈짓을 보냈다.
"오, 내숭떨지 마," 그가 말했다.
"나한테서 비밀같은 건 없어. 네가 네 베프 아내를 좋아했던 거 정도는 다 알아."
에밀리에게는 신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듯 했다.
"에밀리를 남몰래 계속 그리워하며 어쩔 수 없이 네 아내랑 자리잡은 것도 알고.
자, 이 집이 네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의 티켓이 될거야."
나는 시기의 집의 주방을 바라보았다.
에밀리가 알몸에 에이프런만 걸친 채로 무언가를 요리하고 있었다.
그녀의 파도치는 검은 머릿결이 주걱을 저을 때마다 어깨 위에서 살랑거렸다.
에밀리가 뒤돌아보고, 내가 그녀를 관찰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아채고는, 미소를 만연히 퍼뜨렸다.
"네가 항상 원했던 거잖아, 아닌가?" 신이 내 귓가에 속삭였다.
이 곳에 머무르고 싶었다.
젠장할, 정말로 이 곳에 머무르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고개를 저었다.
신은 당황한 듯 보였다.
"이제 결정을 내려야 해." 그가 말했다.
"아직 자만의 방은 보지 못했는걸요."
신이 조롱하듯 말했다.
"아무도 자만의 방은 가고싶어하지 않아."
"나는 보고싶습니다."
자만의 방은 지루했다.
아무것도 없는 하얀 방 안에 작업대 하나가 놓여있을 뿐이었다.
"이해가 안되는군요," 나는 신에게 말했다.
"맞아, 모두들 그렇게 말했지," 그가 대답했다.
"그래서 아무도 자만의 방을 택하지 않았어. 자질구래한 노리개 딸린 건물에 영원히 앉아있는 것 보다야 색욕의 방에서 뛰어다니는게 훨씬 낫지 않겠어? 폭식의 집에서 실컷 먹는 건 어때? 시기의 집에서 에밀리와 함께하는 건?"
나는 곰곰히 선택지들을 검토하고, 마침내 입을 열었다.
"자만의 방을 고르겠습니다."
신은 눈을 가늘게 떴다.
"뭐? 이것 좀 보라고!"
그는 하얀 방을 다시 한 번 손짓했다.
딱히 더 살펴볼 것도 없는 방이었다.
"대체 왜 남은 영겹의 시간을 여기서 보내겠다는 거야?"
"왜냐하면, 신께서 내가 여기를 고르기 원치 않아하는 것 같아서요," 나는 신에게 말했다.
그가 정녕 신이라면, 내가 가끔 얼마나 청개구리처럼 구는지 알 것이였다.
게다가 나는 그가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걸 느꼈다.
이 집에는 뭔가 특별한 게 있을 터였다.
신이 우거지상을 하며 말했다, "알았어,"
그는 나를 작업대로 이끌었다.
작업대의 정 가운데에는 검은 공간이 있었다.
텅 빈, 영원히 계속되어 온 공허가.
"자, 이게 네 우주야," 그가 말했다.
"시작까지 7일 남았어."
그는 작업대의 내 옆 자리에 앉아 자기의 세계를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오랜 침묵 끝에, 그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생각해보니, 룸메이트를 가져보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을 것 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