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왔지만… ‘200년 만의 폭우’ 또 올 수 있다
주말 사이 기록적인 ‘가을 폭우’가 남쪽 지방을 중심으로 쏟아졌다. 비구름이 물러가는 23일부터는 당분간 맑은 가을 날씨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22일 기상청에 따르면, 지난 19~21일 사흘 동안 경상권 해안과 제주 산지에 최대 500㎜ 이상, 그 밖의 남부 지방과 제주도, 충청권, 강원 영동에 200~300㎜ 내외의 매우 많은 비가 내렸다. 제주 삼각봉에는 같은 기간 누적 770.5㎜의 비가 내렸다. 지난해 1년 동안 이 지역에 내린 비(6973㎜)의 11%가 단 3일 만에 쏟아진 것이다. 이 밖에 경남 김해(431.1㎜), 전남 여수(400.5㎜), 순천(376.3㎜) 등 남부 지방에도 3일간 300~500㎜의 폭우가 쏟아졌다. 강원 속초(388.5㎜), 충남 서산(271.1㎜), 경기 평택(186.5㎜) 등 중부지방에서도 많은 비가 내렸다.
비는 여름철 집중호우처럼 짧은 시간에 많은 양을 퍼부었다. 남해안과 서해안에 시간당 100㎜, 그 밖의 남부 지방과 충청권을 중심으로는 50~80㎜의 비가 내렸다. 강수량 신기록을 세운 곳도 속출했다. 경남 창원에는 19~21일 3일간 총 529.4㎜의 비가 내렸다. 기상청은 “창원에 200년에 한 번 올 가능성이 있는 비”라고 밝혔다. 21일 하루 동안 397.7㎜의 비가 내려 기존 최고 일 강수량인 268㎜(2009년 7월 7일 기록)를 훌쩍 넘어섰다. 시간당 강수량(104.9㎜)도 역대 최다였다. 20일 하루 동안 충남 서산에는 221.8㎜, 전남 순천에는 200.8㎜의 비가 내려 ‘9월 일 강수량’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21일에는 부산(378.5㎜), 경남 거제(348.2㎜), 전북 장수(192.1㎜), 충북 청주(153㎜), 전북 군산(145㎜) 등이 9월 최고 일 강수량을 기록했다.
종종 9월에 ‘가을장마’가 오기도 했지만, 이번처럼 많은 비가 내린 적은 없었다. 이례적인 ‘가을 폭우’의 원인은 바로 14호 태풍 ‘풀라산’이 약해져서 열대 저압부로 변한 뒤 우리나라를 지나가며 뜨거운 수증기를 몰고 왔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북서 태평양에서 발달한 열대저기압은 내부 바람 속도가 초당 17m 이상이면 태풍, 그 미만이면 열대 저압부라고 부른다.
당초 ‘풀라산’은 지난 20일 중국 상하이에서 열대 저압부로 약화한 뒤 제주 남쪽 해상으로 흘러 지나갈 것으로 예상됐다. 그런데 갑자기 서쪽 건조한 공기에 막혀 경로를 바꾸더니 원래 예보됐던 것보다 북쪽으로 올라와 우리나라 남해안을 통과한 것이다. 열대 저압부는 뜨거운 수증기를 우리나라로 몰고 왔다. 이 수증기가 현재 우리나라 북쪽에서 유입되고 있는 차고 건조한 공기와 충돌하며 강한 비구름을 만들어 낸 것이다. 폭염이 끝나자마자 극한 폭우가 닥친 데 대해 김해동 계명대 환경공학과 교수는 “지구 면적의 70%를 차지하는 바다의 수온이 사상 최대 수준으로 오른 영향이 크다”며 “우리나라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극한 기후가 일상이 되고, 과거의 기후로 돌아갈 일은 좀체 없을 것”이라고 했다.
기상청은 이번 폭우가 장기간 지속되진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지금까지 여름 후반에 찾아온 ‘가을장마’는 우리나라 남쪽에 자리 잡은 북태평양 고기압과 북쪽에서 내려온 찬 공기가 서로 부딪혀 생겼다. 그 과정에서 형성된 긴 정체전선이 많은 비를 내린 것이다. 하지만 이번 폭우를 가져온 열대 저압부는 23일이면 우리나라에서 대체로 물러날 전망이다.
열대 저압부 영향에서 벗어나면 당분간 맑고 선선한 가을 날씨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기상청은 23일 전국이 대체로 맑겠다고 예보했다. 다만 강원 영동과 제주도는 오전까지 비가 오는 곳도 있겠다. 이날 아침 최저기온은 11∼21도, 낮 최고기온은 22∼29도로 예보돼, 아침저녁으로는 쌀쌀하게 느껴질 수 있다. 다음 달 초까지 아침 기온은 15~23도, 낮 기온은 23~30도로, 30도를 웃도는 무더위는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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