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구글에 '고정밀 지도' 반출 조건부 허가…국내 업계 반발

크리스 터너 구글 대외협력 정책 지식·정보 부문 부사장 지난해 9월 서울 강남구 구글스타트업캠퍼스에서 고정밀지도 데이터의 국외 반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제공=구글

정부가 구글에 고정밀 지도 데이터에 대한 국외 반출을 조건부 승인하면서 2007년부터 20년 가까이 이어온 논란이 사실상 마침표를 찍었다.

지도에 군사·보안시설 가림처리와 좌표 표시 제한을 적용하고 한국 지도 전담관을 국내에 상주시키는 등 엄격한 허용 조건을 내걸었지만 그간 핵심 쟁점이였던 국내 데이터센터 구축이 조건에 포함되지 않아 반쪽짜리 합의란 지적이 나온다.

특히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해당 문제를 두고 자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차별'로 거론하며 압박 수위를 높인 가운데 나온 결정인 만큼 업계에선 국내 기업 경쟁력 약화, 데이터 주권 및 보안 문제 심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핵심 쟁점 '데이터센터 설치' 빠져

27일 업계에 따르면 국토교통부는 이날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에 있는 국토지리정보원에서 '측량 성과 국외 반출 협의체' 회의를 열어 1: 5000 축적 고정밀 지도의 국외 반출 여부에 대해 보안 조건 준수를 전제로 반출 허가 결정 의결했다.

1: 5000 축척 고정밀 지도는 실제 거리 50m를 지도상 1㎝로 줄여 표현한 지도다. 특히 단순 길찾기를 넘어 도보 이동 경로와 도로 교통 정보, 음식점·문화시설 정보, 내비게이션 정보까지 포함돼 자율 주행과 위치 기반 인공지능(AI) 서비스의 핵심 공간 정보로 꼽힌다.

국토부를 비롯해 국방부, 국가정보원 등 8개 부처가 참여한 협의체는 지난해 11월 구글에 영상 보안 처리, 좌표 표시 제한, 서버 운영과 사후 관리 방안 보완을 요청했으며 구글이 지난 5일 제출한 보완 신청서를 검토해 이같은 결정을 내렸다.

구글은 2007년과 2016년에도 우리나라의 고정밀 지도 반출을 신청했지만 안보상 이유로 모두 반려당했다. 하지만 이번 결정으로 약 20년 만에 국내 고정밀 지도 데이터를 손에 넣었다. 국가의 고정밀 지도를 해외 기업에 개방하는 일은 이번이 처음이다.

구글 고정밀 지도 데이터 반출 요구 타임라인./생성형AI(구글 제미나이)의 도움을 받아 시각화하고 기자가 최종 검토·확인해 제작한 그래픽입니다. 그래픽에 포함된 데이터와 내용은 기자가 직접 취재한 결과물입니다.

당초 업계에선 고정밀 지도 데이터 반출이 이뤄지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그간 구글이 국내 안보시설에 대한 가림, 좌표 노출 제한 등 정부가 제시한 조건에 대한 수용 의사를 밝히면서도 핵심 쟁점인 국내에 데이터센터 설립 여부에 대해 난색을 보여왔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정부는 구글이 국내에 데이터센터를 직접 짓는 대신 국내에 서버를 보유한 제휴업체를 통해 데이터를 넘겨주는 방식으로 접점을 찾았다. 구글의 제휴업체가 국내 서버를 활용해 원본 데이터를 가공하고 이를 정부가 검토·확인을 거쳐 제한된 데이터만 국외로 내보내는다는 설명이다.

김태형 국토부 공간정보제도과장은 "구글에 국내 서버를 두라고 한 이유는 보안사고가 생겼을 때 국내법이 적용되는 국내 서버에서 빠르게 수정이 가능하다는 점 때문"이라며 "국내 제휴업체의 서버를 활용하고 해당 서버에서 바로 수정이 가능하다는 점이 이번 방안의 장점으로 평가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구글이 한국 지도 전담관을 상주시키면 보안시설 노출 등 사고가 있을 때 우리가 수정 요청하면 본사나 제휴기업과 소통하며 빠르게 조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정부의 결정에 대해 구글은 즉각 환영의 입장을 냈다. 크리스 터너 구글 대외협력 정책 지식·정보 부문 부사장은 이날 "한국에서 구글 지도의 역량을 선보일 기회를 갖게 돼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며 "이번 결정은 중요한 진전이며 구글은 구체적인 서비스 구현 방안을 마련하는 한편 정부 및 국내 파트너들과 긴밀히 협력하겠다"고 말했다.

네이버·카카오 타격 불가피

다만 국내 산업계에서는 역차별 우려가 나온다. 데이터센터 설치는 법인세를 부과하는 근거가 되는 '고정사업장'으로 볼 수 있는데, 협의체가 기존의 서버 설치 요구에서 한 발 물러나면서 세금 문제를 해결해줬기 때문이다.

구글은 국내에 데이터센터를 두지 않으면서 비용절감 효과를 누리고 있다. 강형구 한양대 교수가 2023년 발표한 '글로벌 플랫폼이 국내 경제에 미치는 영향 연구'에서 구글이 한국에서 낸 실질적 매출은 연 4조~9조원이며 이에 따른 법인세는 최소 3906억원, 최대 9131억원에 이를 것으로 분석했다.

하지만 실제 구글이 신고한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국내에 납부한 법인세는 173억원에 불과하다. 같은 기간 네이버(3902억원), 카카오(1590억원)가 납부한 법인세의 각각 4.4%, 10.8% 수준이다.

이번 조치로 국내에서 지도 서비스를 운영하는 네이버·카카오 등 국내 플랫폼 업체와 공간정보사업자들의 타격은 불가피해질 전망이다. 한국공간정보산업협회가 지난해 4월 23일부터 5월 7일까지 15일간 회원사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보면 전체 응답 회원사 중 90%가 고정밀 지도 반출에 반대했다. 찬성은 3%, 중립은 7%뿐이었다.

앞서 국내 학계에서는 구글 지도 반출로 인해 향후 10년간 최대 197조원에 달하는 경제적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나온 바 있다.

구글 고정밀 지도 데이터 반출 요구 타임라인./생성형AI(구글 제미나이)의 도움을 받아 시각화하고 기자가 최종 검토·확인해 제작한 그래픽입니다. 그래픽에 포함된 데이터와 내용은 기자가 직접 취재한 결과물입니다.

한 업계 관계자는 "국내 제휴기업의 서버를 이용한다 해도 향후 문제가 생기면 구글이 책임지지 않고 제휴기업이 책임을 지게 될 것"이라며 "1: 5000 수준의 고정밀 지도를 구현할 수 있는 국가는 다섯 손가락안에 꼽을 정도로 전략 자산인데 AI 시대에 우리가 애써 만든 자산을 내주게 되는 꼴"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규제와 책임에서 자유로운 해외 사업자에 비해 국내 사업자가 역차별 받는 상황이 발생해서는 안된다"며 "동일한 조건과 환경 속에서 공정하게 경쟁된다"고 강조했다.

대한공간정보학회장직을 맡고 있는 안종욱 안양대 스마트시티공화과 교수는"구글이 보완 신청한 내용에 대한 정보 제공이나 의견 수렴 등 공론화 과정이 없었기 때문에 이번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특히 관세는 국제 정치환경이나 협상에 의해 변경할 수 있지만 고정밀 지도데이터는 한번 반출되면 되돌릴 수 없는 불가역적인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선 정부가 고정밀 지도의 국외 반출을 허가하기로 선회한 데에는 미국의 통상 압박이 작용한 것이란 분석도 제기된다. 최근 미국 대법원이 상호관세가 불법이라고 규정하며 제동을 걸자 트럼프 행정부는 '슈퍼 301조'로도 불리는 무역법 301조를 꺼내 들었다.

무역법 301조는 미국의 무역을 제한하거나 부담을 주는 외국 정부의 부당하거나 불합리하고 차별적인 행동, 정책, 관행에 관세 부과 등을 통해 대응할 권한을 행정부에 부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에 따라 구글로의 고정밀 지도 반출을 제한하는 것이 미국 기업에 대한 불합리한 대우로 인식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한국의 대표적 비관세 장벽으로  망사용료, 고정밀지도반출, 온라인플랫폼법(온플법) 등 디지털 규제을 거론하며 철폐를 압박해왔다.

관광 업계 일각에선 긍정적인 반응을 내놓고 있다. 윤석호 데이트립 대표는 "한국을 찾는 전 세계 관광객이 겪었던 가장 큰 불편이 해소됨으로써 글로벌 관광 대국으로 거듭날 것"이라며 "이번 결정은 여행·공간 산업 스타트업이 글로벌 무대에서 성장할 수 있는 촉매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득갑 연세대학교 동서문제연구원 교수는 "이번 국토부의 결정은 국내 관광산업 활성화의 기폭제가 될 것"이라며 "구글 지도의 고도화된 서비스는 방한 외국인의 여행 편의성을 획기적으로 개선해 관광객 유치에 강력한 촉매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서울에 편중된 관광 수요를 전국 각지로 분산시켜 지방 관광 경제를 살리는 데에도 큰 기여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권용삼 기자

Copyright © 블로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