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채 숨겨오다 구속된 세관원, 역대 가장 황당한 '밀수품'

조회 1,5782025. 3. 20.

금지된 사회적 갈망은 관세의 장벽을 넘기도 한다. 197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세관에서 압수된 물건들은 당시 시대의 욕망을 비추는 거울이다. 밀수품의 역사를 살펴보면 그 시절 우리 사회가 무엇을 간절히 원했는지를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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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치품에서 일상품이 된 피아노

1970년대 피아노는 귀한 수입품이었다. 당시 한국에서 해외여행은 꿈같은 이야기였고 고가의 외국 물품은 엄격한 세관의 감시 대상이었다. 외교관들의 이삿짐에서 발견되는 피아노는 부의 상징이자 위화감의 원천이었다. 정부의 규제 장벽은 높았지만, 음악을 향한 국민의 열망은 더 높았다.

그러나 불과 10년 만에 한국 거실의 풍경은 달라졌다. 삼익, 영창 피아노 브랜드들이 등장했고 많은 가정에서 피아노 소리가 울려퍼지게 됐다. 한국인의 음악에 대한 애정이 사치품을 생활필수품으로 바꾸어 놓은 셈이다. 불가능해 보이는 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집념, 현재 K-팝의 근간이 여기에 있을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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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채색 거실에 번진 컬러TV

1980년대 초, 흑백의 단조로운 세상이 컬러TV의 등장으로 다채롭게 물들기 시작했다. 선명한 화질과 녹화 기능을 갖춘 일본산 컬러TV와 VTR은 정부의 수입 금지 조치에도 불구하고 동남아를 통해 우회 반입되며 소비자들의 열망을 채웠다.

1980년 12월 1일, 한국은 세계에서 81번째로 컬러TV 방송을 시작했는데, 이는 북한보다도 6년이나 늦은 시점이었다. 컬러 화면에 맞춰 TV 속 상품과 출연자들의 의상이 화려해지자, 일반 가정의 거실도 점차 색채로 물들었다.

컬러TV는 소비 패턴의 고급화와 다양화를 이끌었고 사람들은 제품을 고를 때 기능뿐 아니라 색상과 디자인에도 주목하기 시작했다. 흑백에서 컬러로의 전환은 한국 사회의 미적 감각과 소비문화에 큰 분기점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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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을 넘지 못한 욕망의 골프채

1990년대 한국의 세관 압류품 중 가장 눈에 띄게 증가한 것은 단연 골프채였다. 높은 관세율과 수입제한 조치로 인해 국내외 가격 차이가 현저했던 골프채는 1980년대 후반부터 밀수꾼들의 주요 타깃이 되었다. 골프 열풍이 한창이던 1990년대 중반까지 이러한 현상은 계속되었고 당시 골프채는 부와 지위의 상징이었다.

1991년에는 일본산 골프채 4,000여 개를 미국산으로 위장해 들여온 대규모 사건이 터졌는데, 이 과정에 수입회사 대표와 세관 직원까지 연루되어 구속되는 충격적인 결말을 맞았다. 시가 3억 5천만 원에 달하는 이 사건은 당시 골프채 밀수의 대담한 수법과 그 이면에 자리한 강력한 수요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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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밀하게 위대하게? 한약재와 비아그라

2000년대 초반, 웰빙 바람이 한국을 강타하면서 전통 한약재에 대한 관심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건강에 대한 열망은 한편으로는 웅담과 뱀쓸개 같은 전통 약재로, 다른 한편으로는 '블루 다이아몬드'라 불리던 비아그라로 향했다.

세관 당국이 여행자 반입 기준을 강화했음에도, 대구본부세관 기록에 따르면 2002년 10월부터 2003년 1월까지 중국에서 가져온 웅담분 233병, 뱀쓸개 550g, 비아그라 382정 등 매월 수백 정의 비아그라와 다양한 한약재가 압수되는 현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밀수 시도는 계속되었다.
2002년 7월, 밀수업자들은 중국 위해에서 구입한 비아그라 3천통(9만정)을 냉동컨테이너에 교묘히 숨겨 국경을 넘었다. 건강과 활력을 갈망하는 어두운 욕망은 종종 국경을 넘나드는 위험한 거래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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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을 헐값에 팔아치운 이미테이션 명품

2010년대 한국 사회에서 이미테이션 명품은 그림자처럼 시장 곳곳에 스며들었다. 2014년 관세청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5년간 적발된 이미테이션은 무려 3조원에 육박했다. 루이 비통과 롤렉스가 단연 가장 많이 위조된 브랜드로, 세련된 디자인과 높은 가격대가 모방의 주된 대상이 되었다.

중국에서 유입된 이미테이션이 전체의 90%를 차지했으며 정교한 시계류와 가방이 주요 밀수 품목으로 압수되었다. 2012년부터 2016년까지 적발 건수는 점차 감소했지만, 가방류는 오히려 2016년에 크게 증가하며 이미테이션에 대한 수요가 여전히 존재함을 보여주었다. 명품에 대한 환상과 열망은 한국 소비문화의 이면에서 끊임없이 소비자들을 유혹했다.

ㅣ덴 매거진 Online 2025년
에디터 김진우(tmdrns1111@mcircle.bi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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