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만 내것, 피해는 네것”…‘민폐 소수’에 GTX 국책사업도 시름시름

최기성 매경닷컴 기자(gistar@mk.co.kr) 2022. 12. 2.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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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 크면 무조건 이긴다” 판단
님비와 핌피로 홍역 앓는 국책사업
지난해 서울 강남구민회관에서 열린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건설사업 C노선 전략환경영향평가서(초안) 공청회에서 은마아파트 주민들이 반대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출처 = 연합뉴스]
목소리를 크게 내지르는 이기적인 소수 때문에 다수가 피해를 보는 일이 종종 발생하고 있다.

이번엔 서울과 경기도 주요 지점을 연결하는 초대형 국책사업인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사업이 소수의 지역 이기주의 타깃이 됐다.

GTX 노선을 둘러싸고 일부 지역 주민들이 “절대 내 집 아래는 통과 못한다”며 건설을 방해하고 있다. 전형적인 님비(NIMBY, Not In My Backyard)다.

반대로 다른 지역에서는 “반드시 내 집 앞에 정차해야 한다”며 결사 투장을 외치고 있다. 님비와 다른 것같지만 결국 ‘이기적’ 측면에서는 피장파장인 핌피(PIMFY, Please In My Frontyard)다.

신규 역 설립을 놓고 인근 역 주민들이 반대하는가 하면, 자신들의 뜻을 관철하기 위해 직접 관련이 없는 곳에서 시위를 하는 사례도 벌어지고 있다.

문제는 소수 이기주의 때문에 다수가 피해를 보는 것은 물론 막대한 경제적·사회적 손실이 발생한다는 점이다.

소수 의견을 다수 의견으로 포장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재건축추진위원회와 일부 소유주들이 지난 12일부터 용산구 한남동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자택 앞에서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C노선 관통을 반대하는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사진 = 독자 제공]
현재 하루 이용객 100만명을 예상하는 GTX 사업은 소수의 의견을 다수의 뜻으로 포장한 지역 이기주의에 휩쓸려 표류할 위기에 처했다.

내년 2분기에 착공해 2028년 1분기 개통 예정인 GTX-C 노선이 대표적이다. 은마아파트 일부 주민들의 근거없는 우회안 요구로 지연 위기에 봉착했다.

은마아파트는 1979년 준공된 4424가구 규모의 대단지로 2003년 재건축 추진위원회를 구성해 재건축 사업을 추진 중이다.

은마아파트 재건축 추진위원회 일부 주민들은 국책사업으로 추진 중인 GTX-C 노선의 수정을 요구하고 있다.

경기도 양주와 수원을 연결하는 GTX-C 노선은 지난해 현대건설 컨소시엄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착공 예정 시점은 내년이다.

삼성역에서 양재역으로 이어지는 구간은 은마아파트 지하 약 60m 깊이를 관통하는 것으로 설계됐다.

재건축 추진위원회를 중심으로 일부 주민들은 “입주한 지 40년 넘은 낡은 아파트 지하에서 철도 공사를 하면 최악의 경우 건물 붕괴 등 대형 사고가 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현대건설은 기본적으로 GTX 공사가 지하 깊은 곳에서 이뤄지고 비발파식 공법을 도입하기 때문에 안전 문제는 없다는 입장이다.

은마아파트 주민들 요청에 매봉산을 통과하는 우회안을 검토하기도 했지만, 이 노선 역시 인근 다른 아파트 단지 밑을 지나게 돼 결국 채택하지 않기로 했다.

게다가 기존 GTX 시공 현장들에서도 주거지를 통과하는 사례들이 많은데, 은마아파트만 유독 우회안을 요구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토부에 따르면 GTX-A와 지하철 공사 과정에서 20개 구간이 주거지를 통과했다. 이미 철도가 지나는 구간에 재건축 사업이 이뤄진 곳도 12곳에 달한다.

건축토목 전문가들도 이에 대해 전형적인 님비 사례라고 비판한다.

정부도 “일부 반대를 이유로 국가사업을 변경하는 선례를 남길 수 없다”며 GTX 우회 요구에 강경한 입장이다.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재건축추진위 일부 주민들의 시위에 또 다른 주민협의체가 부정적 입장을 나타내는 등 은마아파트 내부에서도 자제 의견이 고개를 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은마아파트 재건축추진위 일부 주민들이 11월 초 아파트 외벽에 내걸었던 ‘이태원 참사사고 은마에서 또 터진다’는 문구의 현수막은 내부 주민들조차 ‘도를 넘었다’며 비판했다. 결국 두 시간 만에 철거되기도 했다.

남의 동네 주민들은 무슨 죄?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23일 서울 강남구 강남구민회관에서 열린 수도권광역급행철도 GTX-C 은마아파트 간담회에 참석해 은마아파트 주민대표들에게 GTX-C 공법의 안전성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제공=국토교통부]
일부 주민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다른 곳에 사는 주민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일으키는 과격한 행동도 일삼았다.

GTX-C 사업의 담당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와 해당 사업의 우선협상대상자인 현대건설이 아닌 오너인 기업인의 한남동 집 앞에서 2주 넘게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업과 관련이 없는 일반 시민들의 불편을 볼모로 삼은 무리한 시위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최대 370여명에 달하는 시위 참여자들이 주거지역에서 과격한 표현이 담긴 피켓은 들고 확성기를 이용해 구호를 외쳤다.

인근 시민들은 주거안정과 사생활을 방해받고 있다. 시민들은 매일 접하는 거친 비방글과 시위 소리로 스트레스가 극심하고 자녀 교육에도 악영향을 낳고 있다고 하소연한다.

은마아파트 일부 주민들은 사업 주체가 아닌 기업 총수가 사는 주거지역에서 다소 과격한 표현이 담긴 손 팻말을 들고 확성기를 이용해 구호를 외쳤다.

한남동 주민 A씨는 매경닷컴 기자에 “은마아파트 소유주들이 불만을 가지는 것이 어느 정도 이해가 가지만 방식이 문제”라며 “아이들이 학교도 가고 학원도 다니는데 행여 다칠까 봐 걱정된다”고 우려했다.

한남동 주민 불만이 폭증하자 윤영준 현대건설 사장이 집회지역 주민들에게 불편 해소를 위해 노력하겠다며 사과문을 전달했을 정도다.

은마아파트 일부 주민들의 막무가내식 요구로 인해 노선안 확정이 미뤄지면서 설계 등 착공을 위한 제반절차도 여의치 않아 내년 착공도 불투명해지고 있다.

은마아파트 일부 주민들의 요구 대로 사업이 수정될 경우 추가로 막대한 비용이 발생해 상당 부분을 이용자들이 부담하게 된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도 GTX-C 사업노선 주민의견 수렴을 위한 간담회에서 “GTX-C 관련 모든 안전 문제에 대해 국토부가 책임을 지겠다”며 “특히 은마아파트 구간의 공법은 기존 GTX-A, 한강 터널 등 도심 한가운데를 이미 지나가며 안전성이 검증된 공법”이라고 강조했다.

원 장관은 아울러 “일방적인 선동이 계속된다면 국토부가 행정조사 및 사법적 수단까지 강구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GTX, 지역 이기주의로 홍역 앓아
확성기 자료 사진 [사진출처=게티이미지뱅크]
GTX-C 노선과 관련 왕십리역 신설을 두고 인근 역인 청량리역 주민들과 왕십리역 주민들이 갈등을 빚은 사례도 있다.

청량리역 등 기존 10개역 이외에 왕십리역과 인덕원역이 추가 신설역으로 유력하게 검토되자 청량리역 주민들이 ‘원안사수’를 외치며 반대하고 나섰다.

정차역이 늘어날수록 ‘완행열차’ 수준이 되고 개통이 지연될 것이라는 논리다. 하지만 이면에는 GTX가 영향을 주는 집값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2018년 건설에 착수한 GTX-A도 지역 이기주의로 큰 홍역을 치렀다. 서울 청담동 주민들의 강한 반발이 강남구의 굴착허가 거부로 이어지면서 공사가 1년여 동안 사실상 중단됐다. 파주 운정과 동탄을 연결하는 GTX-A 전체 6개 공구 중 청담동이 속한 지역만 공사를 진행하지 못했다.

청담동 주민들은 대심도 터널을 뚫을 경우 지반 침하와 건물 균열 등으로 인해 거주지의 안전에 심각한 문제가 생긴다고 주장하며 노선 변경을 요구했다. 그러자 강남구청이 굴착을 허가하지 않았다.

노선을 변경할 경우 지질조사와 설계부터 다시 시작해야 해 2023년 완공목표를 지키기 어려우며 2000억원 이상 공사비가 추가 소요되는 상황이었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시공사인 SG레일은 강남구청을 상대로 서울시 행정심판위원회에 행정심판을 청구했다.

강남구청의 부당한 굴착허가 거부로 인해 피해를 보고 있으니 이를 해소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2020년 5월 서울시 행정심판위원회가 시공사의 손을 들어주며 겨우 공사를 시작할 수 있었다.

GTX-A 노선은 이같은 일부 지역의 이기적 요구와 유적 발견 등으로 공사가 지연되면서 2023년이던 완공 시점이 2024년 6월로 늦춰졌다.

GTX-B 노선은 사업자 선정 입찰에서 계속 유찰되며 사업 진행에 어려움을 걷고 있다. GTX-B는 인천 송도국제도시에서 경기도 남양주시 마석역까지 이어지는 노선으로 2024년 상반기에 전 구간을 동시 착공할 계획이다.

지난 11월 1일 열린 민자사업 구간 입찰에 대우건설 컨소시엄만 단독응찰하면서 유찰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정부 재정이 투입되는 재정구간도 3차례 연속 입찰 참여 업체 수 미달로 유찰됐다.

GTX-B 노선은 당초 한국개발연구원(KDI)가 진행한 민자적격성 검토에서 두 차례 모두 부적격 판정을 받았다. 수요 부족 등으로 전 구간을 민자사업으로 진행해서는 사업성이 나오기 어렵다는 판단 때문이다.

이로써 정부재정이 투입되는 재정구간과 민간이 참여하는 민자사업구간으로 나뉘어 진행되고 있다.

사업성이 불투명한 상황에서도 역 위치를 놓고 남양주시 및 인천시의 역 신설 및 이전 요구에 어려움을 겪었다. 구리시는 여전히 갈매역 신설을 요구하고 있다.

GTX-B 노선은 경제성 여부에 더해 지역 이기주의가 가중되면서 더욱 난항을 겪고 있다.

전문가들은 “목소리 큰 소수가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일반 시민들은 물론 국책사업에도 피해를 주는 일이 종종 발생하고 있다”며 “선량한 시민들이 행복한 삶을 누릴 기본권을 침해받지 않고 공공의 이익도 훼손되지 않는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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