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아동사망]② 5개월 아기에게 벌어진 크리스마스의 비극…세 가족의 숨겨진 비밀

차주하 2022. 11. 20.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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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개월 정인이 사망사건, 11살 아이 쇠사슬 탈출 사건, 9살 아이 가방 감금 사망 사건… 지난 2년간 온 사회가 공분한 아동학대 사건들입니다. 아이들의 비극이 드러날 때마다 모두가 분노하며 대책을 촉구하지만 아동학대는 끊이지 않습니다. 해마다 학대로 숨지는 아이들은 40명 안팎, 드러나지 않은 죽음은 이보다 4배 더 많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KBS 시사멘터리 추적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아동 변사사건을 토대로 드러나지 않은 아이들의 수상한 죽음과 그 속에 숨은 진실을 최초로 추적해 비극을 막을 대책을 찾아봤습니다. 관련 내용을 시사멘터리 추적(11월 13일) 방송에 이어 네 편의 기사로 전해드립니다.

두 번째 순서는 크리스마스 밤, 5개월 아기에게 벌어진 사건의 진실입니다. 단란한 세 가족에게 찾아온 불행인 줄 알았던 사건은, 수개월의 끈질긴 수사 끝에 참혹한 진실을 드러냈습니다. 하지만 이처럼 수면 위로 드러나는 아동학대 사건은 빙산…

글 싣는 순서
① 3층서 던져졌지만 쓰레기 덕에 살아난 신생아…아기에게 무슨 일이?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605338
② 5개월 아기에게 벌어진 크리스마스의 비극…세 가족의 숨겨진 비밀
③ "해마다 170명씩 죽는다" 숨겨진 아동학대 사망, 공식 통계의 4배
④ 죽지 않을 수 있었던 아이들…아동 사망 줄일 대책은?

[관련 방송] 시사멘터리 추적 ‘아무도 몰랐던 죽음들…아동사망의 진실’
https://youtu.be/LFF91LEZA-4


■ 5개월 아기에게 벌어진 크리스마스의 비극…세 가족의 숨겨진 비밀

2015년 12월 25일 밤 0시, 경북 영주시의 한 원룸. 생후 5개월 된 딸을 키우던 젊은 부부는 다 함께 맞는 첫 크리스마스를 기념해 집에서 조촐한 파티를 하고 잠을 청했다. 세 가족의 평온한 밤은 아기의 울음소리와 함께 깨졌다. 아기를 달래느라 집안은 얼마간 소란스러웠지만 오래지 않았다. 이내 잠잠해진 아기의 울음소리를 뒤로, 밤이 깊어갔다.

날이 밝을 무렵, 집안은 또다시 소란해졌다. 엄마는 의식을 잃은 아기를 안고 서둘러 병원으로 향했다. 뇌 손상으로 중태에 빠진 아기는 한 달간 치료를 받았지만 끝내 숨졌다. 태어난 지 고작 6개월 만이었다. 스무 살의 어린 엄마는 스스로를 탓하며 괴로움을 감추지 못했고, 30대 아빠는 아기를 편안히 보내주자며 엄마를 달래고 또 달랬다.


아기가 숨지자 경찰 조사도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아기의 사망 경위를 묻는 경찰의 질문에, 엄마도 아빠도 '모르겠다'는 말뿐이었다. 한밤중 울던 아기를 안고 달랬는데 갑자기 경련을 일으켰고, 앞서도 영아 산통을 일으켰다가 나아진 적이 있어 비슷한 상황인 줄 알았다는 것이다. 수사는 좀처럼 실마리를 잡지 못하고 난항을 겪었다.

수개월 간의 경찰 조사 끝에 범행을 시인한 건 다름 아닌 아빠였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아기의 시신을 부검해 결과가 나오기 직전이었다. 크리스마스에 벌어진 비극, 아기에게는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 말 못하는 아기와 아빠만이 알던 그 밤의 진실, 수개월 만에 진상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경북경찰청 여성청소년 범죄를 수사하던 조성호 경위가 사건을 맡게 된 건 아기가 숨진 뒤였다. 아기가 병원 치료를 받던 당시, 아동학대를 의심한 병원 측의 신고로 해당 지역 경찰서에서 수사를 시작했지만 좀처럼 범죄 혐의를 밝혀내지 못하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아기의 몸에 드러난 학대의 흔적은 명확했다.

조성호 / 당시 사건 수사 경찰
"아기가 병원에 갔을 때 눈에 보이는 외상은 거의 없었어요. 하지만 이미 뇌 손상이 진행 중이었고 살더라도 식물인간 상태일 거라고 할 만큼 심각했죠. CT상에도 저산소증으로 뇌 기능이 거의 소실된 거로 나왔고 두개골 골절이 있는 것 같다고 의사가 진단했어요. 의사가 엄마에게 아기를 떨어뜨린 적이 있는지 물었는데, 없었다고 했대요. 조사가 필요하다고 보고 병원에서 아동학대로 경찰에 신고한 거죠."


병원에서 한 달간 집중 치료를 받았지만 끝내 숨지고만 아기. 엄마와 아빠 모두 조사한 조성호 경위는 아빠에게서 수상한 점을 포착하기 시작했다. 아기를 떠나보낸 것을 자책하며 괴로워하던 엄마와 달리, 아빠는 유달리 담담해 보이고 슬픔도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조성호 / 당시 사건 수사 경찰
"엄마는 처음부터 아기 걱정이 많았고 사망했을 때는 여느 부모처럼 자식 잃은 슬픔이 보였어요. 그런데 아빠의 반응을 보고 강한 의심이 들었죠. 처음 아기를 병원에 데려갈 때도 엄마만 갔는데, 당시 아빠는 ‘아기를 좋은 곳으로 보내주자’고 엄마에게 메시지를 보냈더라고요. 아기가 숨졌을 때도 슬픔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고 담담했습니다."

아기가 병원에 치료받던 당시, 아빠는 아기를 떨어뜨린 적이 있는지 묻던 의료진의 질문에 여러 차례 부인했다. 그러면서도 아기가 숨지기 전 장기기증 의사를 밝혔고, 의료진은 사인을 밝히려면 부검이 필요할 거라며 이를 거부했다. 여러 정황이 아빠를 가리켰지만, 자백도 증언도 없었다.
조성호 / 당시 사건 수사 경찰
"처음 아기가 병원에 갔을 때 아동학대 신고가 들어와 해당 지역 경찰서가 부모를 조사했어요. 그런데 아기가 치료 중이니 진료 자료와 의료진 진술 정도만 있었고 강제 수사는 못 했죠. 엄마는 아빠를 전혀 의심하지 않았고, 아빠는 모른다고만 했어요. 아기가 숨지고 부검을 하면서 아빠의 구체적인 진술을 확보하려고 강제수사도 하게 됐죠."


아기의 사인을 밝히기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부검에 들어가고서야, 아빠는 비로소 범행을 실토하기 시작했다. 말 못하는 아기와 아빠만이 알던 그 밤의 진실도 조금씩 드러나고 있었다.
조성호 / 당시 사건 수사 경찰
"부검 진행 중일 때 최초로 아빠가 '아기를 실수로 떨어뜨렸다' 이런 말을 했습니다. 실수라는 것도 의심이 가서 거짓말탐지기 검사를 하니 거짓 반응을 보였어요. 이후 조사에서 '고의로 떨어뜨렸다' 그렇게 진술했습니다. 아기 엄마와 면회하면서도 ‘고의로 떨어뜨렸다고 얘기했다, 용서해 달라’고 했고요."

■ 그 밤, 바닥으로 떨어진 아기…범행을 숨긴 아빠는 병원 치료조차 늦췄다

그 밤, 아기와 아빠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 한밤중, 아기 울음소리에 잠을 깬 아빠는 목이 마르다며 엄마에게 ‘집 앞 편의점에서 음료수를 사 오라’고 심부름을 보냈다. 엄마가 왕복 5분 거리인 편의점에 다녀온 짧은 사이, 사건은 벌어졌다.


조성호 / 당시 사건 수사 경찰
"밤 12시쯤 아빠가 목마르다고 엄마한테 음료수를 사 오라고 시켰어요. 엄마가 편의점에 갔다 오니 아기가 축 늘어져 있고 경련도 하고 눈이 돌아갔대요. 엄마가 어떻게 된 거냐고 하니까 아빠는 '영아 산통 같은 걸 거다, 지켜보면 괜찮을 거다'라고 해서 엄마는 밤새 아기를 주물러 주며 지켜봤답니다. 그래도 악화하니 혼자 병원에 데려간 거죠."

엄마가 집에 돌아왔을 때 아기는 아빠에게 안긴 채 경련을 하며 사지가 늘어진 심각한 모습이었다. 어떻게 된 거냐는 엄마의 물음에 아빠는 아기를 떨어뜨린 사실을 숨겼다. 예전에 겪은 영아 산통 증상 같다며, 병원에 가도 별수 없을 테니 아기를 주물러주면 괜찮을 거라고 엄마에게 말해 치료 시기조차 늦췄다. 엄마는 밤새 아기를 주물러줬지만, 아기는 갈수록 악화했고, 결국 새벽 5시쯤 홀로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향했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 세 가족에게 숨겨진 비밀…아빠의 스트레스와 엄마의 고립감, 아기는 한순간 위기에 내몰렸다

서로를 의지하던 것처럼 보였던 엄마 아빠와 앞서 학대의 징후가 없었던 어린 아기. 세 가족은 왜 갑자기 파탄에 이르게 된 걸까?


경찰 조사 결과, 가정에는 불안감이 감돌고 있었다. 이미 가정을 꾸리고 있던 아빠는 가족과 주변인 모르게 혼외자인 아기를 낳은 상황이었다. 실직으로 경제적 형편도 좋지 않았던 데다 사무직 일을 하다가 육체적 노동을 시작해 피로감에 시달렸고 사건이 난 밤에도 다음 날 출근을 앞두고 있었다. 심리적, 육체적, 경제적으로 아빠의 스트레스는 커지고 있었다.

엄마 역시 고립된 상황이었다. 미혼모인 엄마는 정부지원금으로 아기와 단둘이 원룸에서만 생활했다. 오랫동안 홀로 살며 육아를 의지할 가족이나 친구, 이웃도 없었고 아이 돌보미나 양육 점검 같은 제도적 도움도 받지 못했다. 어린 엄마가 육아를 기댈 곳은 아기 아빠가 유일했다.


사건 석 달 만에야 드러난 진실, 아빠는 아동학대치사 혐의로 경찰에 체포됐고, 1심과 2심에서 잇따라 징역 8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수개월 간 끈질긴 수사 끝에 어렵게 진상이 드러났지만, 사건을 수사한 이들에게는 후련함보다는 씁쓸함만이 남아있다. 결국, 구하지 못했던 어린 아기의 사건 속에는 위기 속에 고립돼 파탄에 이르고 만 가정이 있었다. 사회적으로 더욱 뒷받침이 됐더라면 어쩌면 아기는 살 수 있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들지만, 사건 후에는 처벌만이 남았다.

조성호 / 당시 사건 수사 경찰
"범인을 검거했다고 해서 뿌듯하다, 사건 해결했다, 이런 생각은 아직도 갖지 않습니다. 5개월밖에 안 됐는데 숨진 아기도 안타깝고 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 가정에 대해서도 안 된 측면이 있었습니다. 다른 학대 사건과 달리 학대를 지속했거나 가해자가 매우 나쁘게 범행해서 숨지게 한 게 아니라 한 차례 일으킨 범행이었는데 사회적으로 뒷받침됐다면 이런 사건은 안 일어날 수도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듭니다."

■ 드러나는 아동학대 사망은 빙산의 일각…"아이들의 숨겨진 죽음, 4배 더 많은 것으로 추정"

아기의 몸에 남은 명백한 학대의 흔적에도 수개월 간의 수사 끝에 어렵사리 드러난 아동학대 사망 사건. 하지만 이렇게 드러나는 아동학대 사건은 빙산의 일각이고 상당수는 수면 아래 가라앉는 것으로 추정된다. 집에서 일어날 경우 목격자나 증거가 부족한 아동학대 사건의 특성 때문이다.

조성호 / 당시 사건 수사 경찰
"당시 제가 영아 사망 사건에 대해 범인 밝혀낸 건 이 사건이 처음이었습니다. 밝혀지지 못한 게 대부분이었어요. 영아 사망은 가족이 수사 자체를 원하지 않습니다. 자기들 범행이면 더 원하지 않고, 그러면 경찰의 수사 의지밖에 없는데 가족이 부인하고 이웃 등 주변 진술도 없으면 더 수사할 동력이 없습니다. 보통 종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죠."

송청락/경북경찰청 여성청소년범죄수사대장
"아동학대 중에서도 영아 사건에 대해서 수사하기가 상당히 애를 많이 먹는 편입니다, 대부분 사건에서. 가해자하고 아동만 있는 상황에서 주로 사건이 발생하기 때문에 증거를 확보하기가 실제로 거의 어렵고 영아가 피해를 말할 수도 없고요."


한해 학대로 숨지는 아이들은 40명 안팎, 2019년 42명, 2020년 43명, 지난해는 40명이다. 하지만 수사로 드러난 것만이 아닌, 실제 아동학대와 연관된 아이들의 죽음은 이보다 최대 4배 이상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숨진 아이들(0~18살)의 부검 자료를 전수 조사한 결과, 해마다 140명~170명의 아이가 학대와 관련돼 숨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희송 /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심리분석실 실장
"'아동이 한 해에 학대로 인해 몇 명이나 사망하지?’ 그런 문제점에서 출발해서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과연 이렇게 아동학대 사망이 적었을까?"

정규희 /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심리분석실 연구원
"숨진 아이들의 부검자료를 전수 조사했더니, 매우 심각하고 잔혹하고 반복적이고 지속적인 학대부터 굉장히 약한 수준의 학대까지 모든 게 관여된 게 해마다 140명에서 170명씩 꾸준히 죽는다고 추정됐어요. 숨진 아이들에게 무슨 일이 어떻게 벌어졌는지를 사회적으로 자세히 살펴보지 않았던 거죠."


※ 다음 기사에서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숨진 아이들의 기록을 연구한 결과 나타난 아동학대의 진실과 아이들에게 일어나는 비극을 막을 대책은 무엇일지 자세히 전해드립니다.

[관련 방송] 시사멘터리 추적 ‘아무도 몰랐던 죽음들…아동사망의 진실’
https://youtu.be/LFF91LEZA-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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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주하 기자 (chask@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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