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로고 훼손한 환경활동가들…대법 “처벌 불가, 표현의 자유 억누를 위험”

2024. 5. 30.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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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시법·재물손괴 등 혐의
“정당행위” 주장했지만
1·2심 벌금형
대법, “재물손괴 유죄 판단 잘못”
[청년기후행동 제공]

[헤럴드경제=안세연 기자] 석탄발전소 건설을 반대하며 두산그룹 로고 조형물에 녹색 스프레이를 칠한 환경활동가 2명을 “재물손괴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취지의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훼손된 정도가 매우 경미한데, 쉽게 죄를 인정하면 표현의 자유를 억누르게 할 위험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대법원 1부(주심 대법관 김선수)는 30일 오전, 집회시위법 위반 및 재물손괴 등 혐의를 받은 활동가 A씨와 B씨에 대해 이같이 판단했다. 대법원은 A씨와 B씨에게 각각 벌금 300만원, 200만원을 선고한 원심(2심)에 대해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으니 다시 판단하라”며 사건을 돌려보냈다.

A씨와 B씨는 2021년 2월, 성남시 분당구에 있는 두산타워 앞에서 미신고 집회를 열어 “두산중공업이 아시아 각지에 석탄발전소를 개설해 기후재난을 야기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날 이들은 건물 앞에 있는 두산 로고 조형물에 녹생 수성스프레이 4개를 뿌려 훼손한 혐의 등을 받았다.

재판 과정에서 환경가들은 “기업의 환경 파괴 행위를 널리 알리고, 기후위기가 가속화하는 것을 막기 위한 행위였다”며 “정당행위에 해당하므로 무죄가 선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리 형법은 목적이 정당하고 수단이 적합하는 등 사회상규에 위반되지 않는 행동은 예외적으로 처벌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청년기후행동 제공]

하지만 1심과 2심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1심을 맡은 수원지법 성남지원 형사5단독 방일우 판사는 지난해 1월, A씨와 B씨에게 각각 벌금 300만원, 200만원을 선고했다.

1심 재판부는 “활동가들이 공익에 헌신한다고 하더라도, 그 활동은 어디까지나 법질서의 테두리 내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라며 “사전 계획하에 실행한 미신고 옥외집회 주최나, 타인의 재물 손괴 등 범죄는 그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활동가들이 목적의 정당성만을 부르짖을 뿐 이를 실현하고자 선택한 범죄에 대해 반성하거나 죄책감을 느끼는 기색이 전혀 없다”며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2심의 판단도 같았다. 2심을 맡은 수원지법 4형사부(부장 김경진)도 지난해 4월, “활동가들은 합법적인 수단과 방법을 통해 의견을 전달할 수 있었음에도 녹색 스프레이를 뿌려 조형물을 훼손했다”며 “그 행위가 긴급하고 불가피한 수단이었다고 볼 수 없으므로 정당행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도 이들의 정당행위 주장을 받아들이진 않았지만, 재물손괴죄의 구성요건이 충족되지 않는다며 이 부분 유죄 판결은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A씨와 B씨 행위의 동기와 경위, 조형물의 용도와 기능 및 미관을 해친 정도, 원상회복의 난이도와 비용, 조형물 이용자들이 느끼는 불쾌감 등을 종합했을 때 이들이 조형물의 효용을 해쳤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결했다.

이어 “이들은 물로 세척하는 게 쉬운 수성 스프레이를 분사한 직후 미리 준비한 물과 스펀지로 조형물을 세척했다”며 “원상회복이 어려운 상태로 만들어 효용을 해쳤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일부 스프레이가 남은 부분은 대리석 부분 중 극히 제한적인 범위인데, 야외에 설치돼 비, 바람, 오물 등에 의해 자연스럽게 오염되거나 훼손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고 봤다.

아울러 대법원은 “활동가들은 기후위기를 알리는 표현의 수단으로 이번 행위를 했다”며 “여기에 형법상 재물손괴죄를 쉽게 인정하면 표현의 자유를 억누르게 할 위험이 있으므로 민사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결론 내렸다.

대법원 판결에 따라 A씨와 B씨는 다시 4번째 재판을 받게 됐다. 판결 취지에 따라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재물손괴죄에 대해선 무죄, 나머지 집회시위법 위반만 유죄로 인정될 가능성이 크다.

법조계에선 이번 판결을 비슷한 낙서 시위 사건에 대해 일반화할 순 없다고 분석한다. 대법원도 재물손괴죄의 구성요건에 대해 부정했을 뿐 정당행위를 인정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향후 유사 재판에선 낙서에 사용한 도구, 장소 등에 따라 사안마다 유·무죄가 달라질 수 있다.

notstr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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