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일 직전 '대통령 일정유출 기자에 법적조치' 추진 왜?

노지민, 조현호 기자 2023. 3. 16.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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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 방일 전날, 일정 유출 금지하는 기자단 규정 개정 추진
대통령실, 국내 출입기자에 기본일정도 비공개… 유출금지 '엄포' 지적

[미디어오늘 노지민, 조현호 기자]

한일 정상회담 등을 위한 윤석열 대통령의 방일을 앞두고 출입기자가 대통령 일정을 유출하면 법적 조치를 할 수 있다는 취지의 기자단 운영 규정 개정이 추진됐다. 대통령의 방일 일정이 과도하게 보안에 부쳐지고 있다는 불만도 나온다.

대통령실 풀(pool·대표취재)기자단은 15일 간사단을 대상으로 운영 규정 개정에 관한 투표를 진행했다. 복수 출입기자들에 따르면, 대통령 일정을 유출한 경우 법적 조치를 의뢰할 수 있고, 대통령이 참석하는 기자회견에서 품위를 손상한 기자를 징계할 수 있다는 근거 조항을 마련하는 것이 개정안 골자로 알려졌다.

이는 대통령실의 지속적인 민원 결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대통령실은 그간 일정 유출에 민감한 반응을 보여왔다. 지난 1월 윤 대통령의 아랍에미리트(UAE)·스위스 순방 일정이 외부로 유출된 일을 두고 이재명 부대변인이 사의를 밝힌 일이 일례다. 이 부대변인은 한마디 인사 없이 물러났고,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기자단에 제공한 해외 순방 일정 외부 유출로 안보·외교상 결례와 위험이 발생한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는 입장을 냈다. 이 부대변인이 '도의적 책임'을 지게 됐지만, 그 원인과 실질적 책임은 기자단에 있다는 인식을 드러냈던 것이다.

▲ 1박2일 일정으로 일본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16일 오후 일본 도쿄 총리 관저에서 기시다 후미오 총리와 의장대 사열에 앞서 양국 국가를 듣고 있다. ⓒ연합뉴스

그에 앞서 대통령실은 지난해 11월 MBC 출입기자의 질문 태도를 문제 삼아 출근길 문답(도어스테핑)을 중단한 뒤로 해당 기자에 대한 조치를 요구해왔다. 같은 달 대통령실은 기자단 간사단에 징계를 위한 운영위원회 소집 및 의견 송부를 요청했으나 간사단은 “징계를 논할 수 있는 근거 규정 자체가 없는 상태”라며 의견을 내지 않겠다고 했다. 당시 김영태 대외협력비서관이 도의적 책임을 진다며 물러났고, 대통령실은 출근길 문답을 재개하려면 기자단이 재발 방지 조치를 취하라고 주장했다. 이후 4개월 만에 품위유지를 이유로 징계 가능한 운영 규정 개정이 추진되기에 이르렀다.

이번 운영규정 개정안은 투표에 참여하는 간사단 등을 제외한 기자들에게는 공유되지 않았고, 투표 결과 또한 공개되지 않고 있다. 대통령실과 기자들 모두 바삐 움직일 수밖에 없는 순방 직전 투표가 추진되면서 이에 대한 공론화가 이뤄질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는 후문이다. 운영 규정 개정 사실을 알지 못했거나 관련 논의에 참여하지 못했던 기자들은 윤 대통령이 일본에서 돌아온 이후에야 관련 문의가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런 논란 속에 시작된 윤 대통령 방일 일정은 국내 취재 기자들에게 일체 공유되지 않고 있다. 통상 대통령이 해외순방을 가면 구체적 일시·장소는 현지 취재진에게 알리되, 국내에 남은 기자들에게도 일정 시간 보도 유예(엠바고) 등을 전제로 한 대략적 일정을 제공한다. 그러나 이번 윤 대통령 방일에 대해선 전체 출입기자들이 이용하는 단체대화방에 어떠한 일정도 올라오지 않았다. 현지 취재진에겐 자료를 유포하면 법적 책임 등을 물을 수 있다고 고지하면서 기자들 간의 소통도 차단된 실정이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 일정이 아닌 보도 참고용 자료들도 적시에 제공하지 않고 있다. 일례로 산업통상자원부가 16일 오후 3시30분부터 보도할 수 있다며 배포한 수출규제 관련 보도자료의 경우 국내에 남은 대통령실 출입기자들에겐 오후 4시10분이 지나서야 제공됐다. 순방 내용이 이렇게 차단된 전례가 없고, 대통령 일정을 예측하기 어려워 취재에 지장을 받고 있다는 기자들의 지적이 있었지만, 대통령실 측은 국내 기자에 대한 일정 공지는 어렵다며 선을 그은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청사. ⓒ연합뉴스

외신 기자들도 이번 취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 외신 기자는 미디어오늘에 “대통령실 방일 일정이 너무 철통보안이라 내신, 외신 기자들이 애 먹고 있다”며 “내신 쪽은 풀기자조차 어제(15일)까지 일정 공유가 안 돼서 각사의 일정을 짜는 게 힘들었다고 한다”고 당혹스러움을 전했다.

언론계에선 기자단 스스로 불합리한 문제에 강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은용 전국언론노동조합 민주언론실천위원회 위원장은 운영 규정 개정 추진에 관해 “기자단이 언론 자유가 쭈그러든 골방에 들어가 스스로 족쇄를 차는 꼴일 수 있다. 특히 '품위'처럼 바라보는 이에 따라 자의가 섞이게 마련인 걸 두고 징계 운운해선 곤란하다”며 “기자단이 정보원에게 자유로이 다가가고 취재한 걸 제대로 알릴 자유를 갖기 위해 더욱 힘을 모았으면 한다”고 촉구했다. “이른바 '풀 기자단' 안팎에 세워 둔 벽을 무너뜨릴 때가 됐다”며 “벽은 힘이 센 사람이 밀어야 크게 무너질 테고 그 벽을 다 무너뜨려야 언론이 본디 해야 할 일에도 큰 힘이 붙을 것”이라는 당부도 전했다.

그는 대통령실의 언론 대응 문제에 “수준 낮은 언론 인식 때문인 것 같다. 대통령에게 올바른 언론관을 전할 사람이 대통령실 안에 없기 때문인 듯도 하다”며 “이래선 '김치찌개'와 '도어스테핑'은커녕 '땡윤 뉴스'나 반길 성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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