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사커'와 MLS, 손흥민 통해 30년만의 글로벌화 도전

사진캡쳐=MLS홈페이지

"지금 하는 것이 리얼 풋볼이야. 말 그대로 볼을 발로 차는 스포츠잖아. 손은 전혀 쓰지 않고. 사커가 아니라고."

22년전이다. 국방의 의무를 미군부대에서 했다. 카투사(KATUSA)였다. 경북 왜관에 있는 캠프 캐롤. 당시 헌병, 현재로는 군사 경찰로 근무했다. 비번일 때는 미군들과 함께 축구를 자주 했다.

그 때마다 논쟁이 붙었다. '리얼 풋볼(real football)' 논쟁이었다. 미군들은 사커(soccer)를 하자고 했다. 카투사들은 풋볼이라며 정정했다. 그리 심각한 마찰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결국 미군 대 카투사들의 대결 결과에 따라 이름을 정했다. 대체적으로 카투사팀이 강했다. 승리하면 소대 혹은 중대 내에서 일정 기간 사커라는 단어 대신 리얼 풋볼이라는 말을 쓰곤했다. 다만 히스패닉 계 미군 병사가 많이 나올 때면 다시 사커라는 단어가 소대를 장악했다.

#미국은 왜 사커라고 할까

손흥민이 메이저리그 사커(MLS) LA FC로 이적했다. 이후 미국 축구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가장 큰 궁금증 중 하나는 '사커'에 대한 것이다.

의외로 사커라는 말은 영국에서 나왔다. 축구 출범 초기였던 19세기. 다양한 형태의 축구가 존재했다.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럭비도 풋볼의 종류 중 하나였다.
1863년 영국 런던 프리메이슨 테번에서 런던의 풋볼 클럽과 학교 풋볼 관계자들이 모였다. 축구협회(Thr Football Association)을 설립했다. FA는 풋볼 규칙을 정립했다. 손을 쓰지 않기로 했다. 이로서 럭비가 떨어져나갔다. FA가 정립한 풋볼을 협회 풋볼(Association Football)이라고 불렀다. 이를 줄여 'Assoccer'라 했다. 여기서 또 간단하게 'Soccer'라는 말이 나왔다. 이것이 미국으로 넘어갔다.
럭비 풋볼도 함께 넘어갔다. 미국인들은 이를 자신들의 방식으로 바꿨다. 미식 축구(American Football)을 만들었다. 미식 축구가 인기를 끌면서 이를 '풋볼'이라고 칭했다. 자연스럽게 사커(Soccer)가 축구를 뜻하게 됐다.

베켄바워와 펠레 시절의 뉴욕 코스모스

#미국의 사커, 마이너가 되다

미국은 영국을 비롯해 유럽인 이민자들이 만든 나라다. 축구가 '사커'라는 이름으로 넘어왔다. 19세기 말 미국 축구협회가 창립됐다. 1913년에는 FIFA에도 가입했다. 1921년 '아메리칸 사커 리그(America Soccer League, ASL)도 창설됐다. 동부를 중심으로 이민자들로 꾸려진 팀들이 참가했다. 그러나 일정 및 선수 문제 등으로 인해 내홍을 겪었다. 경제 대공황까지 겹쳤다. 1933년 해체됐다.
이후 미국 축구는 침체를 겪었다. 세계 대전과 경제 공황, 여기에 야구, 미식축구, 농구 등 경쟁 스포츠에게 밀렸다. 선수들 확보도 쉽지 않았다. 미국에서 '사커'는 마이너 스포츠로 전락했다.

발전을 하고자하는 열망도 있었다.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이 TV로 방영됐다. 축구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당시 아마추어와 세미 프로가 혼재되어 있던 미국 축구 리그의 변화가 필요했다. 1968년 흩어져있던 리그를 '북미 사커 리그(North American Soccer League(NASL))'로 통합했다. 1970년대에는 펠레와 프란츠 베켄바워 등을 영입하며 스타 마케팅에 힘쓰기도 했다. 1977년부터 1983년까지 시즌당 평균 관중은 1만 3000명 이상을 유지했다.

그러나 1980년대 초반 경기 불황, 선수 노조와의 분쟁, 미국의 월드컵 유치 실패 등이 겹치면서 1984년 리그가 해체되고 말았다.

브라질은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 우승했다.

#1994년 미국 월드컵 그리고 MLS

1988년 미국은 '1994 월드컵' 유치에 성공했다. FIFA는 월드컵의 확장을 노렸다. 상업적 성공을 위해서 미국을 선택했다. 미국의 방송 자본과의 결합은 필수적이었다. 이미 미국 방송사 NBC와 결합한 올림픽의 성공에 큰 감명을 받았다. 미국 월드컵을 통해 축구도 올림픽 못지 않은 글로벌 스포츠 이벤트로 만들겠다는 뜻을 천명했다.

이를 위해서는 미국 내 축구 붐이 일어야 했다. 미국은 월드컵 유치의 조건으로 축구 프로리그 창설을 약속했다. 1988년 월드컵을 유치했고, 프로리그 창설에 나섰다. 그 결과가 바로 메이저리그 사커(MLS)였다.

1994년 미국월드컵은 성공적이었다. 미국에서도 축구 붐이 일었다. 당초 MLS는 월드컵 다음해인 1995년 출범하려했다. 그러나 내부 사정으로 인해 1년 연기했다. 1996년 10개 팀으로 MLS가 출범했다.

#유럽 축구지만 동시에 미국 스포츠

MLS의 지향점은 독특했다. 축구는 유럽의 스포츠다. 그러나 리그 방식은 철저하게 미국식이었다. MLS는 유한책임회사(LCC)로 시작했다. 클럽들의 협의체가 아닌 스포츠 리그를 운영하는 회사였다.
미식축구, 야구, 농구 등과 같이 '닫힌 리그' 체제였다. 강등과 승격이 없었다. 지역 연고를 바탕으로 프랜차이즈 팀들을 리그로 불러들였다. 시작부터 TV 중계에 집중했다. 출범 당시에는 중계권료는 없었다. 광고 수익을 리그와 방송사가 나눴다. MLS가 각 선수들과 직접 계약했다. 샐러리캡(연봉상한제)도 시행했다. 선수들을 반발했지만 미국 법원은 이를 허용했다.

독특한 로컬룰도 마련했다. 미국인들은 무승부를 싫어한다. 야구인 MLB의 경우 승부가 갈릴 때까지 경기를 이어나간다. 무승부로 경기가 끝나면 승부차기 대신 슈팅 아웃이라는 독특한 룰을 만들어 승부를 가렸다.

그러나 이같은 MLS의 시도는 실패했다. MLS를 보는 이들은 대부분 전통적인 축구를 좋아했다. 로컬룰들을 그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그렇다고 축구에 관심이 없던 미국인들의 눈을 사로잡지 못했다. MLS는 첫 시즌 이후 관중이 줄어들었다. 재정난이 심화됐다. 초창기 5년동안 MLS는 2억 5000만 달러의 손실을 냈다. 204년까지 누적 손실은 3억 5000만 달러에 달했다. 팀은 12개에서 10개로 줄어들었다. 구단주들도 철수했다. MLS는 존폐의 위기에 서게 됐다.

LA갤럭시 시절 데이비드 베컴

#재정비 그리고 베컴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미국 대표팀은 8강에 올랐다. 2003년 여자월드컵이 미국에서 열렸다. 1991년 대회와 1999년 대회에서 미국은 여자 축구 정상에 올랐다. 축구에 대한 붐이 다시 일어나기 시작했다.

MLS는 이를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 준비에 나섰다. 축구 전용 구장 건설에 나섰다. 기존 MLS 팀들은 미식 축구장을 임차해 쓰고 있었다. 필요 이상으로 큰 경기장과 피치 위 그려진 미식축구 라인들은 MLS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있었다. MLS는 각 클럽들과 함께 작지만 알찬 축구 전용 구장을 건설했다. 2003년부터 2008년까지 6개의 축구 전용 경기장이 건설됐다.

그리고 데이비드 베컴이 미국 땅에 도래했다. 2007년 베컴은 LA갤럭시로 이적했다. MLS는 베컴을 위해 지정 선수 제도(Designated Player Rule)를 도입했다. 각 팀만다 샐러리캡에 적용받지 않는 선수 3명을 영입할 수 있는 제도로 일명 베컴룰로 불리게 됐다.

베컴룰은 MLS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베컴 이후 티에리 앙리(2010년),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웨인 루니(이상 2008년), 카카(2014년), 디디에 드로그바(2015년) 등이 MLS로 오면서 인지도와 인기를 높일 수 있게 됐다.

이후 MLS는 팀 수를 꾸준히 늘려나갔다. 그러면서도 질적인 발전도 꾀했다. 견실한 재정 기반을 갖춘 소유주가 있어야 했다. 축구 전용 구장도 갖추고 있어야 했다. 리그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가입비도 있다. 리그 30번째 팀인 샌디에이고FC는 5억 달러를 확정비로 지불했다. 여기에 MLS는 가입 희망 구단 연고 지역의 인구 규모, 경제력, 잠재적 팬층까지 검토한다. 방만하게 양적 성장에만 치중하다 리그 전체가 와해되어 버린 과거의 전철을 따르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동부의 메시, 서부의 손흥민

2025년 MLS는 또 다른 발전 동력을 얻었다. 2025년 여름 손흥민이 LA FC로 이적해왔다. 단순한 한국인 에이스의 합류가 아니었다. 손흥민은 프리미어리그에서 10년간 정상급 스타로 활약했다. 푸스카스상 수상, EPL 골든 부츠(득점왕) 등 최고의 활약을 선보였다. 2025년 5월 팀을 유로파리그 우승으로 이끌면서 서사를 완성했다. 단순히 아시아를 대표하는 선수가 아닌 아시아 출신의 세계 최고 선수가 MLS로 온 것이었다. 흡사 2007년 데이비드 베컴의 MLS 도래와 같은 의미라 할 수 있다.

손흥민의 합류로 MLS는 아시아 시장 확장의 기반을 마련하게 됐다. LA FC의 연고지인 LA에는 약 20만명의 한인들이 살고 있다. 캘리포니아주 전체로 확장하면 50만명의 한인들이 있다. 여기에 일본, 중국 등 손흥민에 열광하는 동아시아인들도 상당히 많다. 야구(LA다저스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때문에)에 열광하는 이들을 MLS 시장으로 끌어들일 수 있게 됐다.

동시에 동부와 서부의 라이벌리도 구축할 수 있게 됐다. 바로 리오넬 메시(인터 마이애미)와 손흥민의 대결 구도이다. 미국을 대표하는 지리적 양 극단 구단의 대결 서사가 최고의 스타들의 대립으로 시작된 것이다. 더욱이 양 팀은 플레이오프 결승전에 올라가지 않는 이상 만날 수 없다. 이에 더욱 그 둘의 대결 서사는 희소성을 가질 수 있게 됐다.

손흥민의 영입은 MLS와 LA FC에 큰 기회를 제공했다.

#MLS는 어떻게 펼쳐지나

MLS의 리그 방식을 빠르게 정리해본다. MLS에는 30개의 팀이 있다. 서부와 동부로 15개팀씩 배치되어 있다. 각 팀은 각자의 지구에서 홈앤드어웨이로 팀당 총 28경기를 치른다. 그리고 서부와 동부가 교차되어 맞붙는 인터리그 6경기를 치른다. 팀당 34경기로 정규리그 지구별 순위를 가린다. 최다 승점을 기록한 팀은 서포터스 실드라고 명명한다. 일종의 정규리그 우승을 의미한다.

다만 정규리그로 최종 순위를 가리지는 않는다. 각 지구별 상위 9개팀이 플레이오프에 나선다. MLS컵 플레이오프라고 명명한다. 우선 각 지구별 8위와 9위팀이 단판으로 승부를 펼친다. 승리팀은 MLS컵에 합류한다. 1위와 8-위 승리팀, 2위와 7위, 3위와 6위, 4위와 5위가 홈앤드어웨이의 1라운드 대결을 펼친다. 승자는 컨퍼런스 4강에서 단판 승부를 가진다. 여기 승자는 컨퍼런스 결승에 나선다. 역시 단판 승부이다. 동부와 서부의 컨퍼런스 챔피언이 MLS컵 결승전(단판, 정규리그 승점 높은 팀 홈)을 치른다. 이를 통해 MLS컵 우승팀을 가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