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el터뷰!) 영화 '국보'의 이상일 감독을 만나다

일본 실사 영화 20년 만의 '천만 관객' 금자탑을 쌓은 이상일 감독이 영화 개봉에 맞춰 서울을 찾았다. 영화 '악인', '분노'를 통해 인간 내면의 어두운 심연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던 그가 이번에는 일본 전통 예능 '가부키'의 세계로 관객을 안내한다. 상영시간 3시간, 가부키라는 낯선 소재에도 불구하고 일본 열도를 뒤흔든 힘은 무엇일까. 그를 만나 예술과 핏줄, 그리고 아름다움에 대한 집착에 대해 물었다.
-일본 실사 영화로는 이례적으로 1,200만 관객을 동원했다. 예상했나?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래서 굉장하다는 생각만 할 뿐이다.(웃음) 기획 단계부터 가부키라는 소재와 175분이라는 러닝타임은 흥행에 불리한 조건이었다. 하지만 막상 개봉하니 관객들이 '3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는 평을 남겨주더라. 특히 젊은 층이 SNS로 정보를 공유하고, 노년층이 입소문을 내면서 5주 차까지 관객이 계속 늘어나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아름다운 것에 목마른 시대의 갈증이 반영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가부키'라는 소재가 한국 관객에겐 생소할 수 있는데, 왜 이 세계를 택했나?
요시다 슈이치의 원작 소설을 보며 '온나가타(여성 배역 배우)'라는 존재에 매료됐다. 남자가 여성을 연기하는 것은 단순히 흉내를 내는 것이 아니다. 상상 속의 가장 이상적인 여성미를 예술적으로 형상화하는 과정이다. 그 신비롭고 기괴한 아름다움 뒤에 숨겨진 배우들의 고통과 희열을 보여주고 싶었다. 이 영화는 가부키 입문서가 아니라, 무대 위 빛을 받기 위해 거대한 그림자를 짊어지고 사는 '인간'에 대한 이야기다.

-말씀하신 요시다 슈이치 작가와 악인, 분노, 국보로 인연을 이어나가고 계신다. 그점을 생각해 보면 극 중 두 친구인 기쿠오와 슌스케의 관계를 보는 듯했다. 작가님도 감독님을 가장 신뢰하는 예술인이라 언급하셨는데 감독님의 소감도 궁금하며, 어떻게 국보의 작업을 이어받았는지 비하인드도 궁금하다.
너무나 뛰어난 재능을 지닌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악인'때 함께 작업을 하면서 느꼈던 감정이었다. '국보'는 '악인'이 완성되고 나서 가부키의 온나가타 배우들의 인생을 다루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을 요시다 작가님께 말했는데, 작가님도 재미있을것 같다고 말했다. 이후 나는 나대로 영화를 만들려고 했는데, 가부키 소재 영화의 제작비가 만만치 않아서 결국 뒤로 미루고 있었는데, 요시다 작가님이 이 작품을 완성하셔서 자연스럽게 제작으로 이어질수 있었다.
-재일교포 감독으로서 일본의 전통 예술인 가부키를 다루는 데 부담은 없었나?
한국 언론에 오면 항상 핏줄과 작품의 관계를 질문받는다. (웃음) 내가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이 영화에 직접 투영됐다고 주장하고 싶지는 않지만, 주인공 키쿠오가 가부키 명문가의 '핏줄'이 아닌 '아웃사이더'로서 정점에 오르려 분투하는 구조는 내 삶의 배경과 겹치는 지점이 있다. 주어진 운명(핏줄)은 선택할 수 없지만, 그 안에서 자신이 도달하고 싶은 '풍경'을 위해 삶을 던지는 모습에 깊이 공감했다.

-보는 내내 눈이 즐거운 작품이었다. 그리고 촬영이 이 작품의 핵심이라고 생각했다. 마치 소설의 문체를 읽는 것처럼럼 계속 집중하게 만들어 인물의 심리, 행동과 가부키라는 생소한 문화를 계속 보게 만드는 흡입력을 전해주고 있다. '가장 따뜻한 색 블루'의 촬영감독인 소피안 엘 파니의 역할이 컸던것으로 보이는데, 어떻게 함께 하게 되었고 정확하게 어떤 관점에 맞춰 카메라 촬영을 요구하셨는지 궁금했다.
소피안 엘 파니는 '파친코' 시즌2 자겁때 만난 인연이 있었다. 그때부터 알게 되었다. 신기하게도 '파친코'는 한국어, 일본어가 오가는 작품인데, 외국인 촬영감독이 이해하기에는 정서적으로 어려웠을텐데, 배우의 움직임과 분위기를 정확히 캐치하고 이를 촬영하는 능력이 특별했다. 미술을 맡은 타네다씨도 이번 영상을 만드는게 크게 기여했다. 신인시절 작품인 '69'때 부터 함께한 분이다. 그분이 한 말이 "영화는 그냥 리얼하면 좋은게 아니다. 영화에는 화려함이 필요하다. 화려함이 있으니까 관객들의 마음이 움직인다"라고 한적이 있다. '국보'는 타네다의 철학이 깃든 작품이다. 인간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의상, 미술이 화려한 작품이고 그것이 관객의 마음을 움직였다고 생각한다.
-배우 요시자와 료가 '온나가타'를 연기하며 처절한 모습을 보여준다. 연출 시 중점을 둔 부분은?
가장 신뢰하는 배우지만 이번엔 정말 힘들었을 거다. 나는 관객의 시점, 무대 위 배우의 시점, 그리고 배우의 내면 시점이라는 세 가지 카메라가 필요했다. 특히 클로즈업을 통해 배우가 느끼는 공포와 환희를 담아내려 했다. 키쿠오가 아버지가 눈 위에서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모습을 보며 '아름답다'고 느끼는 장면이 있는데, 그 모순된 감정이 예술의 본질이라 생각한다. 배우들이 실제 가부키 배우처럼 보이기 위해 1년 넘게 훈련을 견뎌준 덕분이다.

-전혀 다른 맥락이지만 작년 한국에서는 '정년이'라는 드라마가 큰 인기를 끌었는데 그 작품은 잠시 잊혀진 한국의 전통예술인 여성 국극을 조명하게 되었고 그 작품의 히트로 국극이 주목을 받게 되었다. 가부키가 일본의 오랜 전통극이지만, 작품을 보면서 침체기가 없었는지 궁금했고 지속적으로 사랑받는 이유도 궁금했다. '국보'의 흥행으로 일본내에서 가부키를 바라보는 특별한 시선과 재조명 되는 사례는 없었는지 궁금하다.
가부키도 사실 침체기가 있었다. 코로나로 사람들이 가부키 극장을 갈수 없었고, 코로나가 끝났어도 사람들이돌아오지 않아 힘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요즘 젊은 세대들이 가부키를 보러오지 않는다. 그런 와중에 이 영화로 약간의 변화를 느끼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 현재는 가부키가 활기를 얻게 되었고 지금은 가부키 티켓도 매진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가부키 배우들도 이 영화 덕분에 보러 온 관객들의 분위기가 달라지게 되었다고 말해준다.(웃음)
-감독님을 알게 된 작품이 2004년 영화 '69'였다. 정말 재미있게 봤고 그때 언론 인터뷰를 읽었는데 무작정 시네콰논 이봉우 대표를 찾아서 영화를 하고 싶다고 말해 작업을 이어 왔다는 일화를 듣고 무모하고 도전적인 감독이라고 생각했고 앞으로도 그렇게 사실것 같다 생각했는데, 그랬던 감독님이 이제 천만 관객 감독이 되실 정도로 베테랑 감독이 되신게 영화팬 입장에서 신기했다. 이제는 일본의 유명 감독이 되신만큼 자신의 데뷔, 신인 감독 시절을 돌아보자면 소감은 어떠신지?
그 당시 나는 너무 젊었다. 영화가 어떤 것인지 정확히 이해하기 전에 감독을 할수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여러 배우, 스태프에게 가르침을 받으면서 연출을 할수 있었다. 사실 지금도 겨우 겨우 감독일을 하고 있다. (웃음) 너무 운이 좋았을 뿐이다. 내일부터 나도 내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 (웃음)

-차기작에 캐스팅 하고 싶은 한국 배우는?
'파친코'에서 함께 작업한 배우들이 정말 좋았다. 현장이 어려웠는데 그들과 같이 했기에 잘 진행할수 있었다. 한국 배우들이 너무 좋은 배우들이 많아서 누굴 캐스팅 할지 어렵다.(웃음) 봉준호 감독님 작품에서 송강호씨도 그렇고 '기생충'의 그의 아들 역할을 한 최우식도 좋아하며, 최근에 봤던 영화 '승부'의 이병헌 연기가 참 좋았다. 기회가 된다면 함께하고 싶다.
-영화 속에서 '국보'란 어떤 의미인가?
"영화 제목이기도 한 '국보'는 단순히 국가가 지정한 문화재를 넘어, 한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예술의 최정점을 뜻한다. 하지만 그 자리는 고독하고 파괴적이다. 타인의 재능을 시기하고, 자신의 일상을 진흙탕 속에 굴리면서도 끝내 무대 위에서 사라져버릴 찰나의 아름다움을 쫓는 것. 그 무모하고도 숭고한 집착이 관객들의 마음을 정화시켰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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